언제든 안아줄게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by 춤추는바람

이른 아침잠에서 깬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살며시 방 문을 열었더니 “쉬 마려.” 아이가 투정 부리듯 말했다.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가 변기 위에 앉혔다. 볼일을 마치고 방으로 데려가 눕혔다. 다시 밖으로 나가려 했더니 울먹이며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아이 곁에 다시 누웠다.


한동안 아침에 깨서 엄마를 안 찾더니 다시 퇴행인가. 한숨이 나오려는 걸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건 내가 좋아했던 아침 의식이기도 했으니까. 잠든 아이의 얼굴에 볼을 맞대고 차갑고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며 얕은 잠으로 천천히 빠져드는 일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아이가 잠에서 깨어 나를 찾지 않는 사이 아침잠의 유혹도 사라졌었다.


눈을 감고 아이의 숨소리를 들었다. 몇 번 뒤척이더니 이내 고른 숨을 내쉬며 잠으로 빠져드는 아이. 악몽을 꾸는지 움찔하는 아이를 감싸 안았다. 한 손은 내 귀에 올린 채 잠이 든 아이가 다시 평온해졌다. 그럴 때면 나만이 아는 소중한 세계를 오로지 내 몸 하나로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충만감 때문에 자꾸 아이를 안고 싶다.


작년만 해도 아이는 밤마다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았다. 미용실 놀이를 하느라 그림책도 뒷전이었던 때가 있었다.

"손님 어떻게 해드릴까요?"

잠자리를 펴고 자리 잡고 앉으면 아이는 제법 그럴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쁘게 땋아주세요."

하고 어려운 주문을 하면

"아, 그건 저가 못하는데요."

미용실 주인의 솔직하고 당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 네, 크크크, 그럼 그냥 예쁘게 해 주세요."

모르는 척 다시 주문하면

"네, 그럴게요."

하고 씩씩하게 답하고 머리 손질을 시작했다.


나의 길고 숱 많은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나누어서는 한 갈래, 한 갈래 동그란 고무줄로 묶어주는 게 놀이였다. 크기도 작은 유아용 머리 고무줄은 묵직한 머리카락 뭉치에 두 번이 간신히 감겼다. 아이는 한 번 묶은 자리를 묶고 또 묶어 고무줄 대여섯 개를 감아 주었다. 그러고는 묶은 자리에서 10센티 아래에 다시 고무줄을 묶고 또 간격을 두어 고무줄을 묶었다. 별거 없는 이 놀이를 하는데 어찌나 진지했는지 모른다. "잠깐만, 잠깐만-." 하면서 고무줄을 가지러, 머리핀을 가지러 왔다 갔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기가 해놓고도 "와아- 이거 봐봐. 진짜 예뻐!" 하며 감탄하기 일쑤였다.


“서윤아, 그렇게 재미있어?”하고 물으면 “응!”하며 얼굴 가득 웃음을 담아 답했다. 장난으로 “머리 잘라야지.”하고 말을 흘리면 “안돼!”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이가 놀이에 심취한 사이 머리카락은 한 움큼 씩 빠지고 고무줄 사이로 잘못 끼인 머리카락이 당기면서 두피가 저릿할 정도로 따갑기도 하지만 머리를 내어주고 20-30분 동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어 나 또한 그 놀이를 즐겼다. 아이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손가락의 힘을 길렀고 고무줄 감는 법을 익혔다.


피곤한 날엔 나에게 들러붙어 머리카락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가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머리를 맡기고 있으면 금세 나른한 행복이 밀려왔다. 아이의 작은 손이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사이 스르륵 눈꺼풀이 내려앉을 때도 있었다. 눈을 감고 뒤통수에서 전해지는 감각에 온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머리카락 사이로 작고 보드라운 손이 오갈 때마다 간질간질하면서 찌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머리카락과 손가락이 스치고 맞닿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이토록 간지러운 밤놀이라니.


많은 밤 내 머리를 아이에게 맡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한 시절이었다. 어느새 미용실 놀이는 까맣게 잊혔다. 아이가 몰두하는 놀이는 일정 시간을 두고 계속 바뀌었다. 책으로 집을 짓다가, 의자로 집을 짓다가, 설거지 놀이나 화장실 청소 놀이에 빠졌다가, 병원 놀이를 하다……. 아이의 경험이 바뀌면서 놀이에 대한 흥미와 관심도 끝없이 변했다.


아이는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아이는 엄마만 찾고,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아이가 올라선 계단들이 보인다. 엄마의 체온과 냄새가 느껴지지 않으면 단번에 잠을 깨던 아이가 잠이 들고 나면 엄마가 없어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자기 만의 놀이에 빠져들면 엄마의 존재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엄마보다 친구나 사촌 언니와 노는 게 더 좋은 때가 오기도 한다. 서서히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엄마와의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아이와 나 사이에 생긴 간격이 서운해질 때면 지난 시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더듬어본다. 아이가 더 씩씩하게 이 간격을 늘리고 결국엔 혼자 삶을 꾸릴 수 있게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러니 계속 아이 곁에 붙어 있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등을 떠밀어 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대신 힘들 때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주면 된다. 가끔 퇴행하듯 엄마 품을 찾을 때 더없이 기쁘게 아이를 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