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주는 대신 책을 읽는 엄마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by 춤추는바람

아이와 같이 있을 때는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잠시 혼자 놀이에 빠졌다가도 금세 엄마를 찾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다른 일에 몰두하면 아이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평소보다 더 칭얼댄다.'날 좀 봐 달라'라고. 그런 아이를 달래며 뭘 하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알기에 되도록 아이가 어린이 집에 가 있는 시간에 할 일을 마치려 애쓴다. 아이의 하원과 동시에 나만의 시간은 끝난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렸던 작년 여름과 겨울엔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곁에 두고 할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온라인으로 '365일 글쓰기'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다. 매일 A4 1장 분량의 글을 써서 카페에 공유하는 수업이다. 아이가 자는 시간을 이용해 과제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한 날도 많았다. 글이라는 게 ‘지금부터 쓰는 거야, 요잇 땅!’ 한다고 써지는 게 아니니까. 그러면 어떻게든 아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했다.







그때 주로 사용했던 방법은 내가 앉은 책상 맞은편에 아이를 앉혀 두고 아끼는 48색 오일 파스텔(크레파스)이나 36가지 색연필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엄마가 숨겨놓았던 걸 꺼내 주면 아이는 색연필을 쏟아 자기 방식대로 다시 통에 넣어보거나 잠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그것도 몇 번 써먹고 나면 효력이 시들었다. 책장과 서랍을 뒤져 아이가 처음 보는 물건들을 보여주었다. 스테이플러나 새 연필, 쓰지 않고 넣어둔 수첩이나 그림이 예쁜 엽서들.


한 번은 크로키 북을 준 적이 있다. B5 만 한 크기의 도톰한 종이가 스프링에 묶여 있었다. 아까워서 쓰지 않고 모셔두었던 거다. 노트북을 펼치고 빠르게 글자를 적어 나가는 사이 아이는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네모난 판 안에 동그란 덩어리를 몇 개 그리더니 덩어리 두 개에는 깨알 같은 점을 찍었다. 그림 밑에는 두 줄의 칸을 만들더니 특수문자에 있는 돼지 꼬리 같은 기호를 주르륵 적었다. 그리고 노트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밥과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여러 가지 반찬도 많이 먹었습니다….”


초고를 쓰고 나면 소리 내어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이 없는지 검토하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과 오타를 수정한다. 아이가 그걸 따라 하는 것 같았다. 노트에 지렁이처럼 생긴 꼬부랑 표시를 잔뜩 그려놓고 글자라며 이야기를 지어내 읽는 것이다. 내용은 대부분 ‘오늘은 무얼 먹었습니다’, 혹은 ‘누구랑 무얼 하고 놀았습니다’ 하는 식이었다. 지어낸 문장이 서너 줄이 넘고 그걸 야무지게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 웃음이 나다가도 기특해졌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쓴답시고 아이를 혼자 놀게 두어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아이는 그 사이에도 재미나면서도 교육적(?)인 놀이를 만들어냈다.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으려고 집안 곳곳에 책을 늘어둔다. 침대 옆, 부엌 식탁 위, 거실 커피 테이블 위에 늘 책이 있다. 잠깐이라도 아이가 놀이에 빠져들면 그 틈에 책을 펼친다.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에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가 그림책 두어 권과 색연필을 들고 곁에 와서 앉는다. 자기도 책에 밑줄을 긋고 싶다며 책을 펼쳐 이곳저곳에 줄을 긋는다. 때로는 글자가 많은 책이 보고 싶다며 내 책꽂이에서 책을 빼 들고 오기도 한다. 엄마의 생활이 글쓰기와 책 읽기에 가까워지자 아이도 글과 책으로 놀기 시작했다.







아이는 모방을 통해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고 놀이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중요한 모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의 경우 주양육자인 내가 그 대상이 되었고 내 습관이 아이에게 옮아가는 걸 목격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가치를 두는 일을 아이도 좋아해 준다면 그만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엄마가 아끼고 좋아하는 게 아이에게도 갖고 싶고 좋아하는 물건이 되기도 했다. 연필이나 색연필, 공책, 예쁜 그림이 있는 엽서, 그림책 같은 것이 그렇다. 주문한 책꾸러미가 도착하면 자기 책도 있는지 늘 확인하고 행여 자기 것이 엄마 책 보다 적으면 입을 삐죽거리는 아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절로 책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아이가 반드시 내가 원하는 걸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아이가 내가 선망하는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엄마와 전혀 다른 나름의 취향 또한 아이는 가지고 있다. 반짝이는 구두나 엘사 팬티를 좋아하고 금색 은색 색종이를 보면 감탄한다. 집에 오면 노래를 틀고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거나 보석이 박힌 구두를 꺼내 신어보는 것은 순전히 아이 취향이다. 그건 참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나름대로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은연중에 함께 사는 어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좋은 취향과 습관이 배어들게 해주고 싶다. ‘좋다’는 기준 역시 엄마의 잣대라는 한계 속에 있지만 엄마가 즐거운 가운데 아이도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그보다 훌륭한 육아 환경도 없을 것이다. 아이와 마주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을 늘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는 사이 아이의 일기가 서너 줄에서 대여섯 줄이 되고 더 길고 무궁한 이야기로 나아갈지 누가 알겠는가.


요즘도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쓰고 있노라면 곁에 와서 자기도 한 번만 써보고 싶다고 사정한다. 그러면 워드나 메모장에 하얀 종이를 펼쳐준다. 아이는 자판을 보며 자기가 아는 몇 개의 단어를 조립해서 써낸다. 그냥 마구 두드리다 우연히 단어가 완성되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는 뿌듯한 얼굴로 씩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가도 계속 무릎에 앉아 있겠다고 떼를 부리면 그 상태로 그냥 글을 쓴다. 수전 손택도 그랬다지 않던가. 무릎에 아들 데이비드를 올려 두고 글을 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