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눈치, 직감
일을 하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인간의 의심이란,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십 대, 이십 대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경험은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준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건 경험이야. 나중에 분명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이십 대 후반 끝자락에서 삼십 대 초반부터 여러 일을 하고, 다양한 인간들을 겪으면서,
이전의 부정적인 경험은 눈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혹시나 내가 저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일까?
내가 일을 못했나?
이런저런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왜 일을 하면서 눈치를 보기 시작할까?
그것은 내가 느끼는 불길하고도 불편한 직감 때문에 시작되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직감은 거의 믿어도 좋다고 본다.
내가 추측한 일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내 상사가 뭔가가 바뀌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는 것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험적 축적의 징조다.
어릴 때, 어떤 강연자가 나와서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그것이 책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쓸데없는 의심과 걱정은 시간 낭비다.
뭐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왜 그 사람이 그 상황에 대해서,
혹은 그 사람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된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축적해 온 데이터들이 "너 조심해!" 하고, 경고를 날리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일이 잘 풀리고, 인간관계가 좋고, 모든 것이 뜻대로 잘 흘러가면 의심은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뭔가가 삐끗하는 직감이 발생하면, 내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위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고, 어느 순간, 내 직감이 맞는 순간, 의심은 점점 진화하기 시작하며,
그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것은 끊임없이 악순환된다.
나는 애초에 부정적인 사람이다. 의심이 내 전반에 깔려있다.
그렇다고 그런 의심이 나에게 해를 끼친 일은 없다.
오히려, 가끔 나를 도와줄 때까 있다.
한때, 동기부여 영상이 판을 칠 때,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나도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예민하고, 부정적인 사람인데 어떡하랴?
바꾸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벌써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나가떨어졌다.
우연히 대학 때, 어떤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솔직한 분이셨다.
난, 열등감 투성이야. 그런데 그게 평생 힘이 되었어.
잘난 오빠와 언니 밑에 가려져서, 항상 열등감을 가졌지만,
그게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어쩌면 나도 그렇다. 뭔가 의심이 생기면, 그 기류를 빨리 알아채서, 다음 스텝을 준비한다.
최악의 상황까지 모두 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물론, 자기반성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인생에 거의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왜냐?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간에, 짧은 반성을 뒤로하고, 다시 다음 스텝을 밟는 게 좋다.
세상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엔 여전히, 세상은 넓으니까.
내 혐오와 자기반성은 오히려 내 자존감을 떨어트린다.
그냥 이 사람과 내가 안 맞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가장 속 시원하다.
의심이라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 인생을 구해줄 긍정적 신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