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휴학하고 극단에서 1년 동안 조연출, 기획팀장 등을 경험하며 순수예술의 경험치를 밀도 있게 쌓아 올린 뒤 복한한 3학년 1학기. 스스로 정한 cc 금지 기간을 거쳐 3학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cc 한번 하고 졸업해야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돌입한 학기였다. 마침 국문학 전공이었던 내가 선택한 복수전공인 영상학과의 첫 수업에서 눈에 띄는 남자를 만났다. 컬이 있는 머리에 카키색 야상을 입은 남자.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좋아하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인 그 남자와 같은 조가 되었다. 영상학 특성상 조끼리 하는 과제가 많았고, 그 남자는 저스원 원 먼스. 그가 내 것이 되는 시간은 한 달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그 남자가 내 오래된 연인이 된 지 벌써 6년 차. 그동안의 시간을 생각해봤다. 별것 아닌 졸업논문, 졸작을 무겁게 생각하며 애쓰고 힘들어했던 시간들. 서로를 다독이며 빛나는 졸업장을 얻고, 취업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 입사와 퇴사하기를 여러 번. 그렇게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제 각자의 커리어를 쌓는 으른이 되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언제쯤 결혼하면 좋을까.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연인과 하고 싶은데'. 29, 30. 괜스레 이런 생각들이 고민스러워지는 숫자에 임박했고, 자칭 프로 계획러이니 이제 슬슬 무언가를 계획할 때가 됐다 싶었다.
마침 여자 보는 눈이 발바닥에 붙은 친구와 그에게 찰떡인 내 친구의 소개팅을 주선하던 때였다. 여러모로 내가 아끼던 친구들끼리 잘 맞을 포인트들을 찾았고, 몇 번을 고사하던 여자는 남자와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한 6월 9일. 6을 거꾸로 돌리면 9, 왠지 이상한 토템이 통할 것만 같은 날짜가 아닌가. 벌써 잘됐다 싶었다. 그렇게 웃으며 동료 k에게 소개팅을 주선했다며 토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k가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은 디데이가 6월 9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주선한 소개팅도 잘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6월 9일 소개팅 1호 부부의 응원을 받아 소개팅이 시작됐고 한 달이 되지 않아 좋은 소식이 들렸다. 왠지 소개팅이 결혼으로 이어지면 부상으로 주어지는 원피스를 입고 소개팅 친구들의 결혼을 축하해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결혼을 해야 한다면 의미 있는 저 날에 하리라는 이상한 다짐이 생겼다. 6월 9일 매직이 내게도 통한 것이다. 그날 밤, 남자 친구에게 이소라의 목소리로 이소라의 청혼을 부르며 6월 9일에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를 했다. "말할 거예요~ 이제 우리 겨론해요~" 결혼이 4년 후인 이유는 간단하다. 최대한 빨리 오는 6월 9일의 공휴일이 4년 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때는 만난 지 10년이 되는 해. 의미부여충인 내게 딱인 날짜였다. 무엇보다도 아직 결혼이 어려운 우리에게 4년의 준비기간이 있다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고 회사의 동료들, 친구들에게 순차적으로 공지했다. 다들 웃으며 4년 뒤에도 참석하겠노라며 각자의 아이폰 캘린더에 '지선이 결혼식', '지선 씨 결혼' 등과 같은 이벤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4년 후에 결혼하기로 결심한 '결혼 준비 프로젝트'를 돌입하며 그 과정을 일기를 쓰기로 했다. 과연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4년이 어떻게 흘러갈지 많은 것이 예측하기 어렵지만, 내게 결혼 인사이트를 동료 k 부부와 숭송 커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