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실전회계다] 잇따르는 모뉴엘식 금융사기
http://news.joins.com/article/21839179
홈씨어터PC 전문기업 모뉴엘은 2013년 매출 1조2700억원, 영업이익 1100억원, 당기순이익 600억원을 기록했다. 설립한 지 10년도 되기 전에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저력을 보였다. 수출입은행은 이 회사를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했고, 정부는 ‘월드클래스 300(글로벌 강소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탄탄대로만 걸을 것 같던 이 회사는 이듬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드러난 실체는 경악스러웠다.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던 수출 실적은 해외 자회사 및 거래선과 짜고 친 가짜였다. 허위 수출채권을 국내 10개 은행에서 현금화(매출채권 팩토링)하고 이른바 돌려막기로 버텨 왔다. 대출 사기액수는 무려 3조2000억원. 아직도 이 회사와 무역보험공사, 금융회사들은 손실책임을 둘러싸고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메이플세미컨덕터, 허위 수출로
6년간 4000억 돌려막기하다 파산
장부상 이익 나는데 현금은 줄고
재고 급증하는 등의 이상징후 놓쳐
지난달 중순, 모뉴엘 판박이 사건이 또 터졌다. 메이플세미컨덕터라는 반도체 전문기업이 6년 동안 허위 수출과 분식회계로 4000억원대 무역금융 사기를 저지른 사실이 발각됐다. 실리콘카바이드전력반도체(SiC) 전문기업이라는 이 회사는 한장당 0.5달러에 불과한 불량 웨이퍼를 부풀린 가격(장당 250~800달러)으로 미리 공모한 중국 거래처에 수출했다. 그리고 국내 5개 은행에 허위 수출채권을 넘겨 현금화했다. 수출채권 만기가 되면 중국업체가 국내 은행에 결제하는 것으로 위장했다. 사전공모한 제3의 국내업체가 중국업체로부터 부품을 고가에 수입하는 것처럼 꾸몄다. 수입대금을 해외송금하는 식으로 수출채권 결제 돌려막기를 되풀이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의 페이퍼컴퍼니까지 동원했다.
━
증권사·운용사·전문사모펀드·투자전문회사·은행 등 난다 긴다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이 회사에 투자했다가 감쪽같이 속았다. 회사가 돌려막기에 한계를 느끼고 올해 2월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까지도 기관투자자들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가 주장하는 기술력과 성장성만 믿었을 뿐, 가장 기본적인 재무제표 분석을 게을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메이플세미컨덕터가 공시한 2016년도 감사보고서 재무제표를 한번 보자. 매출은 714억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42억5000만원, 19억5000만원이다. 전년 대비 매출은 늘고 이익은 줄었지만 흑자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금흐름표를 보면 영업활동현금흐름이 79억원 적자로, 이익수치와의 미스매치 규모가 아주 크다. 왼쪽 표는 이 회사의 2016년 현금흐름표 중 영업활동현금흐름 부분의 주요항목을 재편집한 것이다.
감가상각비·무형자산손상차손·대손상각비 등은 손익계산시 비용으로 처리됐으나 현금유출이 없는 항목이다. 따라서 영업활동현금흐름을 계산할 때는 플러스로 작용한다. 이런 수치들이 94억여원에 이르는데도 왜 손익계산서 이익규모와 영업현금흐름에 큰 격차가 발생했을까. 그것은 영업활동에 따른 자산부채의 증감 때문이다. 매출채권이 전년 말 대비 무려 162억4000만원이나 증가했다. 재고자산도 22억3000만원 늘어났다. 한마디로 재고에 돈이 묶이고, 매출채권 회수가 제대로 안됐다는 이야기다. 영업자산과 부채의 증감을 따져볼 때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친 숫자가 178억4000만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현금흐름표는 보여 주고 있다. 매출이 전년보다 20%나 늘었는데도 이익은 줄고 재고자산은 증가했다. 게다가 매출채권회전기간은 두 배나 늘어났다. 결국 영업현금흐름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분명 정상적인 경영상태는 아니었다.
현금흐름표의 영업활동현금흐름과 손익계산서의 당기순이익(영업이익)을 비교해 보면 이익의 질을 판단할 수 있다. 이익의 질은 이익의 지속 가능성, 이익의 신뢰성, 이익의 성장가능성으로 측정된다. 당기순이익(영업이익)과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상관관계가 높을수록 이익의 질은 높다고 볼 수 있다. 모뉴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3년도의 당기순이익은 600억원이었다. 하지만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15억원에 불과했다. 이익의 신뢰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이플세미컨덕터의 2016년 감사보고서와 재무제표가 공시된 시점이 법정관리 신청(올해 1월) 이후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2016년도 재무제표를 분석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2014년도와 2015년도의 당기순이익이 각각 32억원과 40억원이었고, 영업활동현금흐름이 46억원과 53억원이었기 때문에 이익의 질 측면에서 의심할 만한 정황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주요 투자자들은 개인이 아니다. 기업 심사와 분석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기관들이다. 이들이 1년에 딱 한 번만 재무제표를 받아볼 리 없다. 분기 단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반기 단위로는 투자한 회사의 결산재무제표를 받아 분석하고 회사측 설명을 들어야 한다. 메이플세미컨덕터는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 많은 문제를 드러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지난해 하반기에는 상반기의 재무제표를 입수하여 문제점을 파악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 회사에는 이미 2014년도와 2015년도에 이상징후가 있었다. 당시 재고자산이 각각 61억원과 77억원이었는데, 평가손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재고자산 실사와 평가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회사가 보유한 전력반도체 기술과 관련하여 무형자산(개발비) 부분도 의심스러웠다. 메이플세미컨덕터가 2014년과 2015년도에 자산으로 계상한 개발비는 45억9000만원과 34억7000만원이었다. 회사가 당기순이익으로 보고한 금액은 31억8000만원과 40억원이었다. 따라서 당시 개발비를 비용처리했다면 2014년도에는 14억원 적자, 2015년도에는 겨우 5억원 흑자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당기순이익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올해 4월 공시된 2016년도 재무제표를 보면 개발비에서 20억원을 손상 처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법정관리 신청 후 공시한 재무제표에서 개발비가 손상처리 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애초 개발비의 자산성 검토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회사 매출처가 소수 중국업체에 몰려 있고, 매입처 또한 정체불명의 중국업체로 구성돼 한때 거래실적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고 한다. 메이플세미컨덕터는 가공매출 허위실적으로 기관투자자를 유치하고, 은행의 금융지원도 받았다. 회사의 최종목표는 증권시장 상장이었다고 한다. 상장된 상태에서 사기행각이 드러났다면 많은 일반투자자가 금전 손실을 입고, 상장사에 대한 시장 신뢰가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이 회사와 매출채권 팩토링(매출채권 현금화)거래를 해 온 은행 가운데 일부는 이상한 낌새를 채고 거래를 중단해 화를 면했다. 팩토링은 거래처에서 대금을 지급하기 전 은행이 미리 현금을 지급, 회사 운전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무역보험공사에서 매출채권에 대한 보증을 서 주니 은행 심사단계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허점도 있었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모뉴엘과 메이플세미컨덕터 같은 비상장회사 대부분은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는데, 매출채권을 금융회사에서 할인해 현금화할 때 매각한 것으로 회계처리한다. 즉 매출채권을 장부에서 삭제하고 현금이 유입된 것으로 처리한다는 이야기다. 반면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적용 기업들은 매출채권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자금을 차입한 것으로 처리한다.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 측면에서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는 비상장사들이 더 좋아 보일 여지가 있다. 일반기업회계기준에서도 매출채권 팩토링에 대해 보수적인 회계처리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