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을 넘어 나를 단련하는 여정
[원문장] <올바름이라는 착각>,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 저
개인의 이기심과 경쟁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남보다 우위에 서서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 것은 자아실현을 위한 순수한 열망이지, 남을 짓누르고자 하는 압제적 탐욕이 아니다.
[나의생각]
책을 읽다, 문장의 틈새에서 나를 보았다.
나의 고민이, 무심한 활자 사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학업이라는 이름의 긴장된 경기장 위에 서 있다.
이곳에는 셀 수 없는 얼굴들이 있다.
밤을 지새우고, 커피로 심장을 채찍질하며, 끝없는 문제를 풀고 또 푸는 사람들. ‘이 정도면 됐지’라고 속삭이며 중간쯤의 안온함에 스스로를 눕히는 이들. 그리고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며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나는 누구의 선택도 옳거나 그르다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장면 속에 묻혀 있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이토록 경쟁하는가?
평등을 꿈꾸는 세상에서, 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가?
어릴 적 우리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 있다고 배웠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으며,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성장하면서 우리는 다른 진실을 배운다.
출발선은 애초에 같지 않았고, 때로는 아무리 달려도 결승선은 남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애써도 소용없다”
이미 정해진 판 위에서, 바둥거리는 노력 따위는 공허하다고. 현실에 순응하고, 차라리 체념하는 것이 덜 아프다고.
하지만 그런 체념이 우리의 본성일까 되묻는다.
인간은 태초부터 평등하지 않았다.
힘의 크기도, 생각의 깊이도, 손끝의 섬세함도 모두 다르다.
사회는 그 차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와 거리의 환경미화원이 받는 임금의 차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모순이다.
그렇다면, 왜 변호사가 되지 않았느냐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불편함에 마주친다.
우리는 진정, 불평등이 불합리하다고 믿는가, 아니면 그저 내가 이긴 싸움에서만 공정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경쟁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분노의 이유가 아니라, 변화의 조건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사회는, 수많은 경쟁의 결과물이다.
학문은 더 날카로워졌고, 기술은 더 정교해졌으며, 복지와 교육, 권리와 인식은 조금씩이나마 나아졌다.
어쩌면 이 모든 진보의 배경에는 ‘더 나은 나’를 갈망하는 누군가의 불면의 밤들이 있었다.
경쟁은 때로 잔인했고, 불공평해 보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넘어서 왔다.
경쟁의 한복판에 서면 나보다 빠른 사람을 보며 속이 타고, 뒤처질까 불안에 잠 못 이룬다.
그러나 그 불안은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나의 신호다.
물론 가끔은 지치고, 나의 노력마저 무력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묻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남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 아닐까?
경쟁은 본디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다.
피하고 싶다고 없어지지 않고, 외면한다고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 안에서 성장했고, 그 안에서 서로를 알아보았으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증명해 왔다.
그러니 경쟁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등을 외치기보다, 불평등한 세계에서 나의 길을 묵묵히 닦는 것. 그것이 진짜 용기 아닐까.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사회는, 결국 더 나은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