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치고 있는 소소한 기쁨들
행복이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아침마다 마주 앉아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 달에 수천만 원의 매출이 찍혀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는 순간이 된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고, 그 기준을 세운 이 역시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한 번 정해놓은 행복의 문턱은 쉽게 낮추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은 그 기준에 매달리며 자신을 옭아맨다.
어떤 이는 스스로의 삶을 과도한 기대치로 무겁게 짓누르고, 또 다른 이는 그 기준을 낮추는 순간 실패했다고 여긴다.
물론 인생의 큰 전환점이나 깊은 깨달음을 통해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드문 일이다. 대부분은 ‘이 정도는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금을 그어놓고, 그 금 안에서 숨 가쁘게 살아간다.
행복은 사실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다.
삶은 찬란한 몇 번의 순간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기쁨들이 하루하루 쌓이며 우리를 지탱한다.
작은 빛이 모여 별자리를 이루듯, 미세한 모래알들이 모여 단단한 성을 이루듯, 사소한 행복들이 모여 인생을 환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 작은 행복조차 종종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늘 거대한 행복을 꿈꾸며 산다.
누구나 언젠가 찾아올 큰 성공, 압도적인 성취, 타인의 부러움 속에서 웃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하지만 정작 오늘의 저녁에 담긴 소박한 맛, 책장을 넘기며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길가에 핀 계절꽃의 향기를 행복으로 여기지 못한다.
행복을 멀리 두고 쫓아가느라 지금 눈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놓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만든 기준에 눈이 멀어, 행복할 수 있는 수많은 순간들을 흘려보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을 묻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타인의 기대를 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할 때 미소가 지어지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
행복을 말하기 이전에, 나 자신이 어디에서 기쁨을 느끼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것이 행복의 출발점이다.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철학이나 커다란 목표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신기해 멈춰 서서 바라보던 순간,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툭툭 털어내며 칠판을 닦던 교실의 저녁 풍경 같은 것.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순간들이 바로 행복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의 재발견이 아닐까.
이미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소소한 기쁨을 다시 알아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행복을 가까이 불러들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외면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커피잔에 맺힌 따뜻한 김 속에도, 퇴근길 들려오는 새소리 속에도, 잠들기 전 들여다보는 책 한 장에도 행복은 숨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작은 순간들을 붙잡아내는 눈이다.
아무도 대신 정해줄 수 없는 그 눈을, 결국은 내가 길러내야 한다.
나는 당신이 남이 그어놓은 기준에 스스로를 얽매지 않기를 바란다.
또 당신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에 미소가 번지는지 찾아내기를 바란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을 찾는 순간,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삶의 곳곳에서, 매일의 틈새마다, 당신은 이미 행복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