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이미지 : Lake George에 만들어진 Ice Castle. 미국 전체를 통틀어 딱 5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겨울이면 호수가 얼어붙는 곳 : Upstate New York
뉴욕 전역엔 크고 작은 호수가 굉장히 많다. 빙하기인 약 2만 년 전엔 뉴욕주 전체가 두께 2,000m가 넘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빙하가 녹으면서 땅이 파인 곳에 물이 고이며 호수가 생겨나게 되었고 한다.
뉴욕에 비하면 한국은 호수가 많지 않고 크기도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뉴욕을 넘어서 미국 전체를 따져보면 호수가 많은 것만이 아니라 그 크기도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호수인 라운드 레이크(Round Lake)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작은 동네 호수다. 관광지도 아닌 동네 호수지만 넓이를 재보면 강릉의 경포호 정도 되는, 한국 기준으로는 큰 호수다.
이런 '동네 꼬마 호수'에 비해, 이름이 알려진 주립공원 급 이상 유명한 호수들은 라운드 레이크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크다. 미국 호수에 크기를 비교할 만한 한국 호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 집에서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호수 중에, 5 대호 외에 뉴욕에서 제일 큰 호수인 레이크 챔플레인(Lake Champlain)이라는 곳이 있는데 서울 전체 면적의 두 배 보다 크다. 이 정도면 바다 아닐까?
호수 얼어붙는 소리
추웠던 어느 날, 집에서 TV 뉴스를 보다가 주변 호수들이 얼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최저기온이 섭씨 -7~8도(15F) 정도이다 보니 저 큰 호수들도 다 얼어버리나 보다.
'엇, 한국에선 못 봤던걸 볼 수 있겠네. 이렇게 큰 호수들이 정말 완전히 얼었을까?'
아침부터 추웠지만 아내와 세은이를 데리고 회사 근처의 사라토가 레이크(Saratoga Lake)로 가 보았다.
이 호수는 오래된 관광도시 사라토가 스프링스(Saratoga Springs) 바로 옆에 있고 집 근처 라운드 레이크의 10배, 이른바 여의도 면적의 3배 정도다. 주차를 하고 내려보니 호수가 완전히 두껍게 얼어있다.
저 멀리에서는 사람들이 호수 한가운데 텐트를 쳐 놓고 낚시를 하고 있다. 오토바이가 옆에 있는 걸 보면 육지에서부터 저 멀리까지 타고 갔나 보다. 낚시꾼들은 무섭지도 않은가? 대단하다.
조심조심 호수 위를 걸어서 안쪽으로 가는데 바닥에서 중저음의 둔탁한 소리가 난다. '떠엉~', '꾸르르륵' 1분에 한 번씩은 나는 것 같다. 뭔가 두꺼운 게 깨지는 소리다. 아내와 세은이가 불안해한다.
소리가 나는 쪽을 따라 호수 바닥을 보니 두꺼운 얼음 안쪽으로 깊고 길게 나 있는 균열이 보인다. 뭔가 대충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이래서 물리 공부가 필요하다.
온도가 내려가면 호수가 여기저기서 동시 다발적으로 얼어붙기 시작한다. 제각각 얼기 시작한 얼음덩이들은 추워짐에 따라 부피가 점점 팽창되고, 결국 인접한 것들끼리 서로 맞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이 균열은 팽창된 얼음들의 경계이거나 팽창 때문에 눌려서 깨진 틈일 것이다. 그러니 소리는 얼음 팽창 때문에 나는 소리다. 쉽게 말해서 호수가 녹는 소리가 아니고 호수가 얼어붙는 소리다.
세은이를 안심시키려 설명해 주었지만... 부피 팽창 같은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세은이는 끝없이 넓은 얼음호수가 마냥 신기한 가 보다. '아빠도 호수 어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어. 신기한 게 많은 곳이야.'
(사진) 회사 근처 Malta에 있는 Saratoga Lake. 저 멀리 얼음 낚시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 눈 내린 Round Lake, 엄마와 눈싸움하는 세은이 뒤로 스케이트를 타는 커플이 있었다. 호수가 얼면 뭐 하고 놀지?
밤사이에 눈이 내렸던 어느 날, 우리는 또다시 얼음 호수를 보러 갔다. 사라토가 레이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면 오늘 찾아온 라운드 레이크는 맘 편한 우리 동네다.
도착해 보니 얼어붙은 호수 위로 밤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호수 저 멀리엔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건너편 마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지 텐트 옆에 세워두고 있다.
우리끼리 호수 안쪽까지 뛰어다니며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누군가 낚시를 하고 떠난 자리를 가보니 작은 물고기 하나가 물 밖으로 나온 채 꽁꽁 얼어 있었다. 세은이가 불쌍하다며 다시 물속에 넣어주려 했지만 이미 구멍이 얼어서 눈 속에 묻어주고 왔다.
어느새 한 커플이 와서 호수 위의 눈을 쓸어내고는 피겨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다. 뭔가 굉장히 그림 같은 장면이다. 너무 부러워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세은이도 스케이팅을 배우면 좋겠다. 여기 와서 타게.'
건너편 마을 쪽에서도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서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다. 퍽(Puck)을 주고받는 소리가 여기까지도 들린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한적하고 넓은 호수가 있고, 매년 꽁꽁 얼기 끼지 한다면 스케이트나 얼음낚시를 즐기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닌 아주 일상적인 것이겠구나. 동네 호수 위의 겨울 스포츠라니, 정말 멋진 것 같다.
세은이가 아직 스케이트를 못 타니까 얼른 배워서, 내년 겨울에 다시 오면 좋을 것 같다. 세은이가 저 커플들처럼 아름답게 탈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예쁠까.
아이들을 위한 뉴욕 Upstate의 겨울 이벤트
뉴욕은 한국 보다 위도가 높아서 겨울이 길고 추운 곳이다. 날이 너무 춥거나 눈이라도 오면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즐길 거리를 찾아서 뭐든 해보고 싶었다.
겨울이 긴 곳이니 만큼 아이와 함께 겨울을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벤트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West Mountain 스키 리조트 : 튜브 타기
뉴욕 동북부는 애디론댁 산맥(Adirondack Mountains)이 있고 눈이 많이 오는 곳이어서 스키를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집에서 50분쯤 떨어진 웨스트 마운틴(West Mountain)이라는 스키 리조트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스키를 타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생각은 없지만, 스키장에 세은이가 좋아하는 튜브 썰매(Tubing, $25, 2시간)가 있다기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튜브 타는 건 나도 좋아하는 편이라 내심 재밌겠다 생각했는데, 세은이는 아빠랑 타면 안 가겠다고 한다.
'내가 돈까지 내주는데 정작 나랑 튜브 타는 건 싫다니. 아이가 커가는 것은 기쁨인가 서운함인가...'
헤이니네 연락해 봤더니 다행히 같이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달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세은이보다 한 살 많은 언니 '유진이'도 섭외가 되었다.
유진이네는 우리랑은 첫 만남이다. 같은 회사 주재원이라 해도 가족끼리 만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뉴욕 사는 한국 아이들 셋을 데리고 웨스트 마운틴으로 출발했다.
도착해 보니 스키 슬로프 3개가 수준별로 나뉘어 있고 튜브용 슬로프 두 개는 제일 안쪽에 따로 있었다. 튜브용 슬로프라기엔 꽤 길고 가팔라 보여서 세은이가 좋아할 것 같다.
간식도 팔고 몸도 녹일 수 있는 오두막이 있고 그 앞 야외엔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있다. 시설도 괜찮고 상당히 잘 꾸며 놓았다.
모닥불 앞에서 눈싸움을 하던 아이들은 예약 시간이 되자 기념사진 한 장을 간신히 찍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튜브를 타러 간다. 사실 튜브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좋은 거겠지.
어른들은 오두막에 자리를 잡고 어른들의 얘기를 나눴다. 모처럼만에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어른들도 어른들의 야이기로 회포를 푸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다 되어 얼굴이 빨개진 어린이들은 엄마들이 가져온 컵라면 한 개씩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이 재미 내년에 또 와서 즐기기로. 오늘 꽤 친해진 유진이는 곧 돌아가야 해서 많이 아쉬웠다.
(왼쪽) 웨스트 마운틴 튜브 슬로프. 오른쪽 슬로프에선 스키 경기를 했다. (오른쪽) 웨스트 마운틴 로지 앞 모닥불 자리. 아이들은 눈싸움을 했다. (사진) MVP Arena에서 했던 Disney on Ice 오프닝 알바니에서도 오리지널 디즈니 쇼를 볼 수 있다고?
화려한 뉴욕시티를 꿈꾸며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알바니는 어쩌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이다. 뉴욕시티에 비하면 어느 곳 인들 비교가 되겠는가. 게다가 한국에선 정보도 부족한 곳이다.
그렇더라도 알바니에서 뭔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여기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래된 도시니까 당연히 뭔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페이스북 광고에 나온 것을 보니 디즈니 아이스쇼(Disney on Ice)가 알바니로 온다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가 대학농구를 보러 갔던 MVP Arena에서 한다. 이건 꼭 가봐야 한다.
몇 년 전에 서울 목동에서도 디즈니 아이스쇼를 했었는데 그때는 가격도 비싸고 예약도 쉽지 않았다. 알바니에선 예약도 비교적 쉽고 심지어 좋은 자리가 한국보다 조금은 저렴하다.
한국에선 몇 년 만에 한번 오는 보기 힘든 공연이지만, 여기 아이들에겐 올해 못 보면 내년에 보면 되는 늘 있는 이벤트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부러운 환경이다.
세은이랑 같이 갈 친구가 있을까 해서 주재원 대화방에 물었더니 답이 없고 반응이 좀 시큰둥하다. 다들 뉴욕시티로 가고 싶어서 그런 걸까? 이번에도 다행히 헤이니네와 시간이 맞아서 예약할 수 있었다.
두어 달 만에 찾은 MVP Arena는 농구장이었던 바닥이 아이스 링크가 되어 있었고, 아이 키우는 집에서는 모두 온 듯 사람이 굉장히 많았는데 겨울 왕국 엘사 옷을 입은 꼬마들이 엄청 눈에 띈다.
공연시간은 두 시간이고 디즈니 이야기 별로 15분 정도씩, 익숙한 노래에 맞춰 영화의 주요 부분을 스케이트를 타면서 연기한다. 중간중간 장내 진행을 맡은 캐릭터가 지루하지 않게 작은 이벤트 같은 것을 한다.
'미키마우스와 친구들', '라푼젤', '미녀와 야수', '코코', '겨울왕국' 그리고 마지막 순서 '모아나'까지, 디즈니 영화 하이라이트를 복습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디즈니 공연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보통 선수출신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렇다. 특히 '코코'의 주인공 미구엘은 프로 수준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보는 것 같은 묘기를 보여주었다.
모아나에 나오는 거대한 집게인 '타마토아'를 실제 크기로 만들어서 아이스 링크에 데려 온 것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재밌는 장면이었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엔 모든 캐릭터가 한꺼번에 나와서 단체 공연으로 마무리를 한다. 여기서도 미구엘은 정말 인기 캐릭터였다.
짧았던 2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다음에도 뭔가 같이 해보기로 약속하고 헤이니네와 헤어졌다. 세은이랑 헤이니랑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 두 아이들이 계속 가깝게 지내는 게 보기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세은이는 스케이팅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호수에서도 타고 싶다고. '그래 내년엔 꼭 해보자'
녹기 전에 가야 해, 아이스 캐슬(Ice Castle)
아무래도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여행 비수기다. 도로의 눈 때문에 멀리 가기도 어렵고 날씨가 추우니 자꾸만 집에 있고 싶다. 그렇다고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주변 즐길거리를 계속 찾아봐야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검색해 볼 수도 있고 뉴욕에서 운영하는 'I Love NY'라고 관광앱도 있다. 이 앱을 보면 지역, 계절에 따라갈 만한 곳이나 이벤트 같은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Capital', 'Saratoga', 'Adirondack' 같은 곳들을 수시로 찾아봤는데, 갑자기 광고가 시작된 이벤트가 있었다. 'Ice Castle' 야외에 만든 얼음 건물 같은 건가 보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레이크 조지 옆 마을에서 한다.
(Lake George 역시 길이만 50km가 넘는 큰 호수이기 때문에 '옆 마을'이라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장소는 가장 남쪽 마을, Fort Willam Henry가 있는 'Town of Lake George'를 의미한다.)
미국 전체에서 5군데에서만 하는 이벤트라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한번 가볼까 싶다. 인기가 꽤 좋아서 인지 예약 사이트에는 주말 자리가 거의 없다. 한 사람당 무려 $25짜리 인데도.
2월 중순 이후에 주말 자리가 있긴 했는데 그때는 날이 따뜻해지니 얼음이 녹지 않고 남아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계속 빈자리를 찾다가 다음 주 금요일 저녁 늦은 시간에 3자리 비어있어서 예약에 성공했다.
(왼쪽) 아이스 캐슬 입구. 높은 얼음벽을 지나서 들어간다. (오른쪽) 아이스캐슬 내부에 있던 거대한 얼음 테이블 (사진) 아이스 캐슬 내부의 대형 얼음벽. 밤이 되면 형형색색의 불이 켜지면서 신비한 느낌을 준다. 레이크 조지는 호수 구경이나 아웃렛에서 쇼핑하러 몇 번 왔던 곳이라서 익숙하다. 한국에서라면 1시간 거리가 먼 곳이지만 뉴욕에선 여기도 우리 동네 같은 기분이다.
아이스 캐슬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차할 곳 찾기가 쉽지 않았았는데, 운 좋게도 입구 근처 노상에 한자리가 빠지고 있어서 냉큼 주차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캐슬'이라고 해서 진짜 성처럼 조각한 것을 상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미로처럼 되어있는 3~5m의 얼음벽으로 되어 있는데 마치 작은 폭포가 겹겹이 얼어있는 것 같다. 무너지지 않게 수직으로 잘도 세웠다.
아마 얼음 위로 물을 여러 번 뿌리면서 위쪽으로 얼음벽이 얼어서 자라도록 한 게 아닐까? 나에겐 상당히 흥미가 있는 곳이었지만, '겨울 왕국'에 나오는 엘사의 성을 기대했던 세은이는 살짝 실망한 눈치다.
김이 빠진듯한 세은이를 데리고, 아내와 나는 재롱을 떨어가며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봤다. 얼음 미로를 지나니 얼음 터널, 얼음 광장, 얼음 미끄럼틀까지 모든 것이 얼음으로 되어있다.
세은이는 미끄럼틀을 몇 번 타고나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하다.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핥아먹지 말라고 되어 있는 굳이 얼음 벽에 혀를 대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어두워지니 여러 가지 색의 조명이 들어와서 신기한 느낌의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소박한 느낌으로 여러 가족들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가 애초에 기대했던 대단한 뭔가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정도는 와 볼만한 것 같다. 뉴욕에 살면서 새로 알게 되고 경험하는 것들은 항상 재미있다.
우리가 다녀온 뒤 2주 정도 지나고는 날씨가 따뜻해져서, 안전 문제로 뉴욕 아이스 캐슬의 이번 시즌은 종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밌게 잘 봤네. 뉴욕 겨울 추억 안녕~!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