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은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갈등이 중심이 되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 한 장의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이야기다. 분명 지나간 시간인데도 그때의 공기와 표정, 함께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처럼 조용히 마음에 남는다.
이 작품은 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때 가족이었던 네 사람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기하, 술주정뱅이 아버지와의 이혼 이후 엄마와 단둘이 살던 재하. 두 아이의 부모가 재혼하면서, 네 사람은 한 집에서 가족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가족의 시작은 아이들의 선택이라기보다 어른들의 결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애쓴다. 재하의 어머니는 직접 낳지 않은 기하의 눈치를 살피며 무엇이든 챙겨주려 하고, 기하의 아버지는 친아들이 아닌 재하에게 더 다정하게 손을 내민다. 서로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관계를 이어가려는 모습이다.
재하 역시 이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여름마다 먹던 중국 냉면이다.
“그 여름 재하는 꼭 땅콩 소스가 듬뿍 들어간 중국 냉면을 먹었다. 그애는 국물이 탁해질 때까지 소스를 듬뿍 풀어 먹는 걸 좋아했다.” (25p)
겉으로 보면 재하는 중국 냉면을 특히 좋아하는 아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이 장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재하는 사실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큼한 국물이 입에 맞지 않아 땅콩 소스를 듬뿍 풀어야 겨우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그 메뉴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형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형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서, 형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억지로라도 좋아하는 척하며 먹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중국 냉면은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형에게 다가가려 했던 재하의 방식이자, 어색하고 서툴지만 어떻게든 관계를 만들어보려 했던 노력으로 읽힌다.
재하는 형에게 먼저 말을 걸며 이런 질문도 던진다.
“형. 토마토는 과일이게, 채소게.”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인데 법적으로는 채소래. 웃기지?” (25p)
이 대화 역시 이 소설 속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지만 법적으로는 채소가 되는 토마토처럼, 네 사람의 관계 역시 어디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이였다. 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관계.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하는 이 관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에게 이 가족은 스스로 선택한 관계가 아니라, 어른들에 의해 갑자기 만들어진 관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둘이 살아가던 익숙한 삶 속으로 낯선 사람들이 들어왔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받아들이기를 요구받는다.
그래서 기하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다정하게 다가오는 새엄마에게도, 먼저 말을 건네는 재하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억지로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태도에 가깝다.
이 소설 속 네 사람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이 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 노력만으로는 관계를 온전히 이어가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그들은 흩어지고, 함께 살았던 시간은 끝난다. 네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이후의 시간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된 기하와 재하는 과거를 떠올린다. 함께 살았던 공간과 기억을 따라가며, 그 시절을 조용히 되짚는다.
이미 끝난 관계이고, 지금은 더 이상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이. 하지만 그 시간 자체는 분명 존재했다. 함께 살았던 집, 사진관, 여름마다 먹던 중국 냉면 같은 기억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작품에서 ‘사진’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하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진관은 네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낸 공간이자, 그들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다. 가족사진, 나들이에서 찍은 사진, 누군가의 뒷모습을 담은 장면까지. 이 소설 속 기억들은 대부분 사진과 카메라를 통해 떠오른다.
사진은 순간을 붙잡지만, 동시에 그 순간이 이미 지나갔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기억들은 하나의 서사로 길게 이어지기보다, 사진첩 속 장면처럼 남는다. 그때의 공기, 냄새,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의 표정이 한 장면씩 떠오른다.
슬픔을 표현하는 문장도 인상 깊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38p)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74p)
슬픔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묽어진다. 이 문장은 이 가족이 겪는 감정의 방식과도 닮아 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어긋나고, 그렇다고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두고 온 여름』은 가족이 되는 이야기라기보다, 한때 가족이 되려고 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결국 그들은 ‘진짜 가족’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남이 된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기하는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왜 어른들이 그렇게 조심스러웠는지, 왜 재하가 그렇게 다가오려 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그 관계를 밀어내려 했는지.
그래서 이 소설의 여운은 화해라기보다 ‘이해’에 가깝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 자체를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되고, 어떤 관계는 끝난 뒤에야 비로소 추억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두고 오는 것은 특정한 계절이나 장소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여름은 지나가도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오래된 사진 한 장처럼,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