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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Feb 13. 2024

감당이 안 될 때

(조금은 더 감당이 되는 세계를 향하여)

감당이 안 되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다가, [어허, 감당이 안 되는 것은 마음뿐 아니라 몸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빠른 속도로 스치듯 지나가길래 그냥 감당이 안 될 때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감당이 안 될 때]라는 제목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저는 몸과 마음 둘 다 빈번하게 감당이 안 됩니다. 그래서 깨달은 바는 결국 [몸과 마음은 하나구나!]입니다. 이상하게도 민족의 고유 명절이 오면 제 몸은 평소보다 더욱 감당이 안 됩니다. 평소보다 움직임이 줄어들어서인지, 아니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몸에 새겨진 기억 때문인지 몸은 더욱 삐거덕댑니다.


뒷 목 당겨, 왼쪽 어깨 결려. 왼쪽 허리 결려. 소화는 잘 안돼. 가스 차는 느낌, 감당이 안 되네!의 결정판입니다. 이렇게 감당이 안 되는 몸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요? 몸과 마음은 하나니까, 마음을 잘 돌보면 될까요? 몸이 아픈 사람에게 마음을 잘 돌보라는 말은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몸을 단련시키면 도움이 된다는 말과 결이 비슷하게 들립니다. 완전 어불성설은 또 아닌 것도 같습니다.


몸과 마음은 지그재그처럼 서로에게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울하면, 몸이 추욱 쳐지고, 쳐지다 보면, 안 움직이게 되고, 안 움직이면 더욱 무기력해지고, 더욱 무기력해지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워지는 것처럼요. 계속 누워있던 사람이 조금 기분이 나아져서 자리에 앉게 되고, 앉아서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다 보니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고, 커피가 마시고 싶다 보니 부엌으로 나가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카페인의 섭취로 기분이 좀 더 업 되어서 다이어리를 펼치고, 다이어리를 펼쳐서 지나간 기록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다시 기록하게 되고, 기록하다 보니 기분이 좀 더 올라와서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은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루기가 어렵다면, 몸을 다뤄주는 것도 도움이 되죠. 몸을 다루기 어렵다면 반대로 마음을 좀 알아주고, 다독여주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불안할 때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하고, 머리가 아플 때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머리가 덜 아프게 되는 것처럼요.


제 몸은 제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죠. 이미 새겨진 흔적들은 지울 수는 없고, 새로운 흔적들을 새기고 싶네요. 새로운 흔적이라 하면, 당당하게 열린 가슴, 곧게 세워진 척추, 팽팽하게 벌어졌다가 멋지게 수축되면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등, 조금만 더 길어진 목, 조금 더 길고 튼튼해진 팔, 단단한 허벅지, 더 넓어진 어깨, 새롭게 등장한 허리라인, 사라진 지방, 자잘하고 탄탄한 근육들이 되시겠습니다. 그러면 좀 감당이 되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겁습니다. 안 할 수 없으니, 또 어떻게든 겨우겨우 해나갑니다. 기를 쓰고 해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축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burn out이라 부를 수 있는 그것이 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안 해도 되는 것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또 기를 쓰고 있습니다. 적당히 하면 참 좋을 텐데, <적당히>의 지점은 예술의 경지라 그런지 아직은 어렵네요. 감당이 안 될 때 왜 숨을 안 내쉬고, 상체의 근육(목, 어깨, 가슴, 등, 배, 팔)을 다 붙들고 있었을까요? 그냥 천천히 해도 되고, 때로는 미뤄도 되고, 아니면 좀 더 숨을 내쉬고, 척추를 더 곧게 펴고, 가슴을 당당하게 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뭐, 지난 일 생각하고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 안 되니 그건 그랬었고, "지금부터"에 방점을 둡시다.


저는 몸이 심하게 아팠던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상한 신체 증상들이 나타났던 적이 있었는데 단순한 신체증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던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네요. 그야말로 인체의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천천히 제 경험들을 나눠드릴게요. 정말 감당이 안 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넘어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대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감당이 안 될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호흡을 길게 내쉬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감당이 안 되는 순간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호흡을 길게 내쉬기가 왜 안되냐고요? 사람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 땐 힘이 빠질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죠. 힘이 안 들어가는 상태, 힘을 줄 수 없는 상태도 있습니다. 안 겪어보신 분은 모르겠지만요. 안 되면 되는 거 하면 됩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과학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약이 개발되고 있겠지요. 우리에겐 약이 있습니다. 정신과 약도 도움이 됩니다.


이게 안 되면, 저거 해보고, 저게 안 되면, 또 다른 거 해보고, 계속하면 됩니다. 오늘은 분명히 감당이 안 되었는데 내일 조금 감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일 안 되면 내년에 다시 감당해 보는 것으로 조금씩 텀(term)을 늘려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반박하겠죠. 그러다가 평생 걸리겠다고, 평생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어쩌면 평생 걸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매 순간, 제 자신이 감당이 안 되던 시절이 꽤 많았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고 그때의 경험이 심리치료사로 살아가는데 그 무엇보다 큰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필라테스를 할 때면 제 자신이 감당이 안 되지만, 가끔 감당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하지만요. 감당이 안 되는 몸뚱아리를 데리고, 감당 안 되는 순간을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모여서 저를 조금은 더 감당이 되는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답답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안 되고, 버겁고, 미칠 것 같이 속상한 그 순간들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저는 어느 날 밤에는 미칠 것 같은 분노와 숨 막히는 불안에 힘겨워하지만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게임을 하며, 게임을 깼을 때 환호성을 외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못 넘어가던 게임의 한 단계를 넘어가면서 "와, 깼다, 깼어"라고요!


게임도 너무 해대고, 밤새우고 해대는 게 짜증 나서 지웠다가 다시 깔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시간 날 때마다 기분 더러워질 때마다 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하니까 시작할 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높은 단계로 올라와 있네요. 게임이라서 단계가 숫자로 쉽고 명료하게 보여서 [내가 이만큼 왔네], 가 쉽게 인지되지만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은 그렇게 간단한 수치로 표기할 수 없기에 좀 더 세밀하게 시간을 들여서 살펴봐야 할 것 같네요.


내가 못하는 것, 답답한 부분, 안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 되었다가 아주 조금 되는 것을 발견하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브런치 초창기에는 제 생각을 글로 촘촘하게 표현하는게 좀 힘들었거든요. 느슨하게 운문으로 글을 쓰거나, 그렇지 않으면 글 한 편 쓰는 게 다소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또 이렇게 호흡이 다시 길어진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거든요. 신기하지 않으세요?


창피한 말이지만, 저는 매사에 기복이 있는 편이라서 어떤 날은 글이 잘 써지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가 수시로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매일매일 조금씩의 힘을 믿고 해보니 또 이전보다 낙차가 줄어듭디다. 어느 정도까지 낙폭이 줄어들지는 저도 한 번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것도 또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해 보려 합니다.


퉁쳐서 생각하면 여전히 나는 못하는 것 같고, 답 없는 인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브런치 글쓰기에 있어서는 이렇게 발전한 인간이 되었네요. 이러다가 정말 제가 쓰고 싶은 소설까지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인생은 알 수 없으니까요. 쓰다 보니 글이 계속 이어져 나와서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해 볼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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