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 너와 나의 무용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무용담이 존재한다.
18대 1로 싸워 이겨보기는 커녕 껌도 제대로 못 씹어본 나지만, 내 인생에도 나만의 무용담은 존재한다.
어쩌면 내 아이의 무용담.
너란 아이의 시작.
나는 예정일이 같은 여자들 중에 가장 먼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일 것 같다. 시험관 시술을 받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한 첫 번째 피검사를 통해 (아무런 변화도 느끼기 힘든) 내 배속에 아이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첫 테스트기의 두줄은 희미하기 짝이 없었으나, 이틀 뒤에 한 검사에서는 조금 더 임신선이 선명해져 있었다.
생에 처음으로 임신에 성공했다.
아이를 어떻게 낳을지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조심스럽게 친구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니, 모두 입을 모아 한 산부인과를 추천했다. 예정일이 몇 달 빨랐던 친구는 그 병원에 예약을 하고 싶었으나 실패했다고 하였다. 이름하여 '자연주의 출산'을 지향하는 병원이었다. 선생님이 한분 계신 작은 병원이었는데, 예약을 하고 찾아간 병원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모든 유행의 출발점은 한 방송국에서 방영한 '어떻게 나을까-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방송이었다. 의료진의 시점이 아니라 세상에 첫 발을 딛는 아이의 시점에서, 출산의 주도자인 산모의 시점으로 출산 과정을 진행하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출산 이야기.
제법 설득력이 있었고, 아름다웠다.
자연주의 출산의 철학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며, 아이를 낳는 것 또한 시스템화 되었다고 한다. 산모는 의료진이 힘을 쓰기 편한 높이의 바퀴가 있는 수술 침대에 누워 미리 체모를 밀고, 관장을 하고, 신속한 출산을 위해 자궁 수축을 약으로 유도하고, 이에 따른 고통은 무통 주사로 해결한다. 체모를 미는 것은 아마도 출산 시에 나오는 분비물로 인한 감염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 같다. 그리고 산모님 힘을 주세요. 할 때 그 느낌이 화장실에서 힘을 주는 그것과 다르지 않아, 미리 관장을 해서 나올 것이 없게 만든다. 물론 그전에 더 이상 나올 것이 없게 하기 위한 금식은 관장과 세트이다. 그나마 낮처럼 밝은 조명으로 산모의 산도를 비추는 일 등은 이제(2013년 시점)는 덜 한다고 한다. 자연주의 출산은 '아이가 준비되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 호흡과 몸의 이완,을 활용하여 천천히 아이를 낳는 방법이라 했다.
한창 그렇고 그런 게 궁금할 나이.
중학생 때에 생물 선생님께서 임신과 출산을 겪으셨는데, 복귀를 하고 나서 우리에게 슬쩍 이야기해 주신 출산 과정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아이가 산도를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길이 커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산도의 입구를 십자로 절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 게 너무 아파서 생살을 가위로 자르는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으셨다나. 모든 출산 과정이 끝나고 나면 절개한 부분을 의사 선생님께서 꼬매 주시는데, 예쁘게 꼬매는 것이 중요하다나. 여중생 입장에서는 막연하게 거기가 몸의 어떤 부분인지 알 것 같으면서 상상이 구체적으로 되지 않는 가운데 너무너무 무서웠던 기억이다. 그러니까 유도분만이나 무통 주사 없이 생살을 자르지도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얼핏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렸고.
나는 망설임도 없이 이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였다.
다행히 서초동에 위치한 병원은 회사와 한 정거장 차이였다.
병원에서 그렇게 자주 우리를 불러댈 줄 몰랐는데, 회사와 집, 그리고 병원이 가까운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우리는 여느 산부인과와 마찬가지로 산모 검진은 차곡차곡 다녔으며, 주말에는 수회에 걸쳐 진행되는 부모 교육도 받으러 가야 했다. 특이한 것은 산모 검진에서 늘 식단표를 선생님께서 검사하신다는 거였다. 이번 주에는 피자를 드셨네요. 라면도 드시고. 밀가루 너무 많이 드시면 산모와 아이의 체중이 늘어나서 나중에 힘들어요. 다행히 고기와 과일주스를 즐겨 먹던 나의 임신기이기에 나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적당히 들으며 임신 기간 내내 기분 좋은 정도의 관리를 받았더랬다. 산모의 건강과 아기의 크기는 자연주의 출산의 핵심이었다.
매주 진행되던 부모 교육은 꼭 부부가 함께 참석해야 했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출산의 전후 과정에서 아빠의 역할이 제법 컸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거의 10년 만에 찾아낸 '출산 리허설' 자료에는 남편의 메모가 빼곡하다. 남편은 출산 과정에서 산모와 긍정적인 대화를 하고, 이완을 돕기 위한 가벼운 마사지와 지압을 해주고 산모가 이완을 할 수 있도록 산모를 웃겨야 한단다. 그 와중에 남편이 추가로 써 놓은 메모에는 '상처받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는 글이 비장하게 쓰여 있네... 이때만 해도 남편이 이 가벼운 소일거리(?)들을 꼬박 4일 동안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회음부 마사지 항목에서 서로가 부끄러워져서 니가 그냥 해라, 내가 그냥 할까 설왕설래가 이뤄졌을 뿐이다. 응급 상황에서의 대처 부분에서는 그저 아이고 당황스럽겠네. 남일처럼 생각했었다.
*회음부 마사지 : 앞서 생물 선생님이 이야기한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1.그냥 아기가 쑥 잘 나온다. 2.아기의 머리가 회음부를 사방으로 찢어내며 나온다. 둘 중에 하나이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아기가 그냥 쑥 잘 나오게 하기 위해서 임신 기간 내내 회음부 주변을 셀프 마사지하여 그 부분의 근육을 미리 이완시켜 준다. 이마저도 배가 불러오면 스스로 신발끈을 고쳐 매지 못하듯 마사지도 스스로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후는 상상에 맡깁니다...)
예정일은 식목일이었다.
평화로운 가운데 3월의 마지막 날 새벽이었다. 만삭의 배를 침대에서 이쪽저쪽 굴리며 긴 베개를 안고 그럭저럭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래쪽이 따땃해졌다. 어렸을 때, 꿈속에서 쉬를 하면 이불이 따듯해지며 잠이 확 깨던 그 느낌이랑 똑 닮은 느낌으로 잠이 확 달아났다. 원체도 임신 막달에는 잠을 푹 자기가 힘든 법이니까. (만약에 이어지는 수개월 동안 좀비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대추차 마시고 더 자둘 것을ㅎㅎ)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 불을 켜니,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손목을 휙 잡혀서 온 느낌이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침대 시트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양수가 먼저 터져도 당황하지 말라고 했던 교육 강사의 말을 흐릿하게 기억하며 출산 자료를 찾아보았다. 물을 많이 마시고 고양이 자세로 머리를 내리고 15분간 유지, 옆으로 누워서 15분간 유지. 남편과 매뉴얼을 그대로 실행하며 달뜬 표정으로 '우주나루'가 우리 곁으로 오려나보다 이야기했다. 그리고 출산 가방을 체크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허리 아래 수건을 두껍게 깔고 그렇게 차분히 아침을 기다렸다.
이제 끝이 나나보다. 생각했지만 무용담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 후편에서 계속
[ 표지 사진 출처 ] https://www.healthpartners.com/blog/giving-birth-during-covid-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