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오르다 보면 돌아가신 엄마에게 닿는 시간대가 있다. '집밥'이라면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을 지어 식탁 위에 올려놓으시던 엄마의 아침밥이 생각난다. 내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듯 하얀 머리수가 늘어가는 엄마한테 미안해 '있는 대로 먹자'던 말이 나의 입버릇이 될지는 그때는 몰랐었다.
사무실 앞 산에도 가을이 찾아오면서 나뭇잎 색의 빛바랜 모양을 보니 초등학교 가을 소풍이 생각났다.
전날부터 비가 올까 봐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며 맑은 날을 달라고 기도하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한동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엄마와 둘이서만 생활했었다. 엄마가 직장인이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어린 맘에도 소풍 가는데 김밥까지는 사치라고 여기며 살았다.
아주 오래전이라 4학년 때였는지 5학년 때였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소풍을 가면 나는 늘 김밥 대신 '술빵'을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소풍 가기 전날이면 다른 날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는 가게에 가서 막걸리 한 주전자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정신없이 달려가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들고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봐 조심조심 걷지만 집에 도착해 보면 막걸리는 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일 소풍 가서 먹을 빵에 넣을 건대 조금밖에 안 남았네. 이를 어쩌나! 그래도 맛있게 찌는 방법이 있지.>라고 하시고는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셨다.
솥 가까이서 술빵이 익기를 기다리지만 졸린 눈을 비비다 방에 들어와 잠이 들어버리곤 했다.
다음날 예쁜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싸놓으신 '술빵'을 들고 학교로 갔다. 반 친구들과 줄을 지어 인근 공원까지 걷다 보면 길가의 풍경이 예뻐 머뭇거리다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던 거 같다.
점심시간이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저마다 싸온 김밥에 과자들을 펼쳐놓지만 나는 무리 속에서 살짝 빠져나와 언덕에 앉아 보자기를 펼쳐놓고 가장 맛있는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항상 혼자는 아니었다. 친구들이 내 뒤를 쫓아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빵을 너 혼자 먹으려 하느냐'라고 하며 김밥과 술빵을 바꿔 먹자고 했다. 이렇게 예쁘고 따뜻한 맘씨를 가진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다 보면 창피함은 사라지고 즐거웠던 어느 멋진 날의 기억만 간직하게 되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그 친구들이 하늘 아래 어느 동네에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멋진 날의 술빵과 나의 친구들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술빵을 찌던 엄마의 손길과 어려운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