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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방 Feb 20. 2024

암튼 다 엄마아빠 때문임

괴물 일기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 혹은 엄마와 나


카프카가 말하길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허겁지겁 책을 읽던 어린 시절의 내 내면은 늘 얼어붙어 있었던 걸까?


나는 아동폭력을 당했고, 공황을 겪었고, 가출했고, 그 후 10년이 지나 친구네 집에 성인 입양을 신청했다. 오늘 아침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부터 판결문을 받았다. 아빠의 거부를 무시하고 내 성인 입양을 인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눈물이 나게 기뻤다.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서 축하하고, 내 방에서 문을 닫은 채로 울었다.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내가 미성년자일 때 죽었다. 암이었다. 엄마는 나를 학대했다. 나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지금 엄마가 살아 있다면 엄마 앞에서 내 몸에 불을 지르고 죽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처럼 고통 받고, 우울증과 공황에 시달리고, 내 생각을 하며 오열했으면 좋겠다. 후회했으면 한다. 엄마가 살아 있다 한들 얼굴을 볼 자신은 없다. 엄마가 무섭다. 상담 센터에서 엄마 얘기를 한 날, 집에 와서 공황 증세 때문에 쓰러진 채로 산소캔을 썼다.


바닥에 누워 울면서 생각했다. 오늘 내가 한 말을 엄마가 들으면 화를 낼 텐데.


아직도 엄마가 무섭다.


최근에 깨달았다. 나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사귀어 본 사람인데, 내가 사귄 여자 친구들은 모두 엄마와 닮았다. 외모가 닮았다는 소리가 아니다. 엄마는 언제나 자기 비위를 맞추게 하고, 그러지 않으면 나를 버리겠다고 위협하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기분이 좋을 때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기분이 들쑥날쑥하고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다. 내 여자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족들하고 비슷하다. IMF가 시작됐고, 아빠는 회사를 나왔다. 우리 오빠는 백혈병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백혈병은 불치병이었다. 오빠의 투병과 IMF가 겹치면서 우리 집은 급속도로 추락했다. '기생충' 속의 가족들은 서로 응원하며 화합한다. 현실의 우리 가족은 어땠는가 하면, 아빠는 도박을 하며 빚을 졌고 우리 엄마는 나를 끌고 친척 집에 들어가 돈을 빌려 달라고 소리 쳤다. 아빠는 절연당했다. 나는 어렸고 극도로 소심하고 수줍은 아이였다. 엄마의 말을 빌자면 정말이지 피곤한, 유난한, 예민한 여자 아이였다. 엄마가 말하길 내 위에는 두 명의 여자 아이가 있었고 엄마는 내 언니들을 모두 선별 낙태했다. 난 실수로 태어났다. 엄마는 내게 나를 낳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해 주며 내가 엄마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거듭해서 말했다. 더 감사해야 한다고. 왜냐면 난 감사할 줄을 모르는 애니까.


프랑켄슈타인에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Frankenstein's creature)이 이런 말을 한다.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으로 저를 빚어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애원했습니까, 절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그러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었다.


이건 괴물의 삶 이야기다. 늘 부단히 인간이 되기 위하여 애써 왔던 이야기.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약속했다. 엄마, 내가 작가가 돼서 엄마 이야기를 꼭 소설로 써 줄게. 사람들이 엄마 얘기를 알게 해 줄게.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꾸던 꿈중 유일하게 그 일만을 허락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내 기억의 시작은 친할머니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다. 난 어릴 때 거의 친척 집에 맡겨져 자랐다. 오빠가 아팠고, 엄마와 아빠는 바빴기 때문이다. 거기부터 시작하자. 그래. 처음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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