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기술은 추억을 저장하지 않는다

by NAHDAN

Chapter 4

기술은 추억을 저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기억을 저장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믿는다.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 클라우드에 보관된 비디오, SNS에 기록된 순간들—이 모든 것이 우리의 추억을 완벽히 보존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술은 이미지와 소리를 저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순간의 감정과 맥락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우리가 경험한 감정의 결은 이진법으로 변환되지 않는다. 이 장에서는 기술이 어떻게 추억을 저장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것을 재구성하고 연출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기억이 어떻게 변형되고, 때로는 왜곡되는지를 탐색한다.


2023년, 세계적인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 업체 드롭박스(Dropbox)는 "당신의 기억을 영원히 보존하세요"라는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취약하고 불완전한지를 강조하며, 디지털 저장이 얼마나 안전하고 영구적인지 설득했다. 이 광고는 현대인의 불안을 정확히 짚어냈다. 우리는 망각을 두려워하고, 중요한 순간들이 흘러가 버리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약속의 이면에는 근본적인 오해가 있다. 기억은 단지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감정과 맥락이 얽힌 복잡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저장과 감정의 상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를 찍고, 저장하고, 공유한다. 스마트폰은 하루 일과를 자동으로 정리해주고, SNS는 수년 전의 오늘을 '추억'이라며 다시 보여준다. 구글 포토는 얼굴을 인식해 '2020년 여름'이라는 앨범을 만들어주고, 페이스북은 '7년 전 오늘'이라는 타임캡슐을 열어 보라고 유혹한다.


지난 봄, 나는 10년 전 찍은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진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찍은 것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메타데이터는 2015년 5월 18일이라고 알려주지만, 내 기억 속엔 그날의 감정이 사라져버렸다. 반면,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숨바꼭질 하던 순간은 사진 한 장 없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냄새, 소리, 그때의 두근거림까지.


이것이 바로 기억과 데이터의 본질적 차이다. 기억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한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맥락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렇기에 기술은 추억을 저장하지 못한다. 다만, 연출할 뿐이다.

인간의 기억은 신경과학적 관점에서도 기술적 저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컴퓨터가 정보를 정확하게 저장하고 그대로 불러오는 반면, 인간의 기억은 매번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뇌 과학자들은 이를 '기억의 가소성(memory 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마다 그 기억은 약간씩 변형되고, 현재의 맥락에 맞게 재해석된다. 이런 유연성이 인간 기억의 본질이며, 기술적 저장과의 핵심적 차이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사건도 반복적으로 상상하면 진짜 기억처럼 느낄 수 있다. 또한 기억은 사회적 맥락과 주변의 암시에 크게 영향받는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은 객관적 사실의 저장고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관적 경험의 네트워크다. 기술은 이러한 복잡성을 포착하지 못한다.


더구나 인간의 기억은 멀티모달(multimodal)하다.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경험을 기억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묘사했듯, 때로는 작은 마들렌 과자의 맛이 수십 년 전의 기억을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은 주로 시각과 청각 정보만을 저장할 뿐, 다른 감각을 포착하지 못한다. 이는 기술적 기억의 또 다른 한계다.



디지털 레트로: 감정의 자동화와 회상의 기획


'디지털 레트로'라는 말은 이 모순의 핵심을 꿰뚫는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은 감정의 자동화, 회상의 기획화를 초래했다. 우리는 점점 더 기술이 알려주는 대로 추억하고, 기술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소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러브스쿨'이다. 2000년대 초반, 동창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이 서비스는 사실상 집단 회상의 시뮬레이터였다. 사용자들은 졸업앨범 속 얼굴과 닉네임, 게시판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했지만, 그것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재연출이 일어나는 무대였다.


"야, 너 그때 그랬잖아!" "맞아, 그 선생님 수업시간에..."


이런 대화들은 실제 기억의 복원이 아니라, 사회적 의례로서의 회상이었다. 아이러브스쿨의 성공은 결국 디지털 공간에서 '집단적 노스탤지어'가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었다.

2000년대 초반, '아이러브스쿨'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운 감정을 경험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초등학교 동창, 졸업사진, 교실 이름, 학급 게시판, 별명들이 디지털 화면 위에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한 재회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잊힌 과거가 기술을 통해 다시 호출되는 순간'에 느껴지는 전율이었다. 동시에, 그 과거는 온전한 과거가 아니었다. '아이러브스쿨'은 실제 과거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방식대로 재편집된 정서적 무대를 제공했다.


디지털 레트로의 핵심은 '큐레이션된 향수(curated nostalgia)'다. 기술은 우리의 과거를 무작위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따라 선별하고 재구성한다. 페이스북의 '추억' 기능은 '좋아요'를 많이 받았거나 댓글이 활발했던 게시물을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어떤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기술이 결정하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순간이 아니라, '공유할 만한' 순간들만이 선택적으로 회상된다.


더구나 이런 디지털 레트로는 상업적 논리에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사용자의 감정적 반응과 체류 시간을 높이기 위해 노스탤지어를 활용한다.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는 '당신의 10대 시절 히트곡' 플레이리스트를 제안하고, 유튜브는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가 어릴 적 보았을 법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이런 서비스들은 단순한 기억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상품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사회학자 빈센트 모스코(Vincent Mosco)는 이를 '디지털 기억의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에는 기억 자체가 상품이 되며, 기업들은 이 기억을 어떻게 구성하고 활용할지 경쟁한다. 우리의 추억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플랫폼 자본주의의 중요한 자원이 된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감정의 큐레이션


마찬가지로 <응답하라> 시리즈는 한국형 디지털 복고의 정점이었다. 이 드라마는 시대적 정서를 정확히 고증하며, 실제로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세대에게까지도 강력한 감정이입을 유도했다. 이는 '기억의 재연출'이라는 문화적 현상의 전형이다.


드라마의 내러티브, 음악, 의상, 공간 세팅은 모두 특정한 시대를 감각적으로 재조립하여 감정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과거는 이처럼 '느껴지게끔' 연출되었고, 그 감정은 실제 기억처럼 소비되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절'의 물리적 재현을 넘어, 정서적 공명을 정교하게 설계했다. 드라마 속 골목, 라디오, 패션, 말투, 전화기 소리, 가족 식사 장면 등은 단지 과거의 디테일을 고증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하기 위한 '감정의 큐레이션'이었다. 사람들은 드라마 속 장면을 보며 자기 경험을 소환했고, 감정은 서로 감염되듯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감정은 실재인가, 연출인가? 실제로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조차 "실제로는 저렇지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하곤 했다. 이 간극이 바로 '디지털 복고'의 정체다.


미디어 연구자 앨리슨 랜즈버그(Alison Landsberg)는 이를 '보철 기억(prosthetic memory)'이라고 불렀다. 이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형성되는 기억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본 2000년대생들은 실제로 80-90년대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 시대에 대한 감정적 연결을 느낀다. 이 보철 기억은 실제 경험만큼 강력한 감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 이후, 한국 방송계에는 수많은 복고풍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토토가>, <더글로리>,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상품화했다. 이런 콘텐츠들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미학적 감각과 문화적 코드에 맞게 과거를 재해석한다. 그것은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기억되기를 원하는 과거'의 모습이다.


영화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이런 현상을 '노스탤지어 모드(nostalgia mode)'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과거는 더 이상 역사적 실재가 아니라 스타일과 이미지의 집합으로 소비된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보여주는 80-90년대는 실제 역사적 맥락(민주화 운동, 경제 위기 등)보다는 패션, 음악, 유행어와 같은 표면적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과거의 정치적, 사회적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소비하기 쉬운 감성적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디지털 필터: 가짜 과거의 미학


기술은 이러한 연출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인스타그램의 필터는 현실의 색을 바꾸고, VHS 앱은 영상에 노이즈와 왜곡을 추가한다. 유튜브에는 '디지털 캠코더 효과'로 촬영한 브이로그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가짜 과거'를 만들어낸다.


2023년 출시된 앱 '1999 카메라'는 출시 첫 달에만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 앱의 핵심 기능은 무엇일까? 바로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효과를 현대 스마트폰에 구현하는 것이다. 화면 속 날짜 워터마크, 과장된 플래시 효과, 그리고 의도적으로 낮춘 해상도까지. 이 앱의 유저들은 대부분 2000년대에 디지털카메라를 써본 적도 없는 10대, 20대들이다. 그들은 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기술적 결함을 미학으로 소비하는 것일까?


최근에는 SNS 속 디지털 필터가 레트로 감정을 촉발하는 중요한 장치로 자리 잡고 있다. 필름카메라의 거친 입자감, VHS 특유의 흔들림, 오래된 TV 화면 효과, 카세트테이프 모양의 음악 플레이어 디자인 — 이 모든 것은 사실 과거의 기술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은 감정의 스타일로 소비된다. 사람들은 기술의 불완전성을 '감성'으로 전환하며, 그 감정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 공유는 실제 체험이 아니라, '감정의 시뮬레이션'이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한 매체의 내용은 항상 다른 매체"라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필터가 재현하는 아날로그 미학은 과거 미디어의 특성을 새로운 미디어의 내용으로 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초고화질 카메라와 정교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그 기술로 과거의 불완전함을 더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한다.


이러한 '의도적 불완전성(deliberate imperfection)'은 단순한 미학적 선택을 넘어, 현대 기술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반영한다.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완벽함과 효율성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결함과 우연성을 그리워한다. 필름 사진의 예측 불가능한 색감, VHS 테이프의 불안정한 화질, 비닐 레코드의 잡음—이런 '결함'들은 역설적으로 인간적 따뜻함과 진정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이를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기술이 더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더 단순하고 촉각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 지향이 아니라, 과도하게 매끄러운 디지털 경험에 대한 저항이다. 디지털 필터는 이런 갈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실제 아날로그 경험의 불편함은 제거한 '안전한 노스탤지어'를 제공한다.


더불어, 디지털 필터는 '기억의 미학화(aestheticization of memory)'를 촉진한다. 과거는 더 이상 역사적 사실이나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특정한 색조, 질감, 분위기를 가진 시각적 스타일로 환원된다. 이는 기억을 깊이 있는 경험이 아니라 표면적 미학으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레트로'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나오는 수백만 장의 이미지들은 과거에 대한 역사적 이해보다는 특정한 색감과 구도를 공유하는 시각적 트렌드에 가깝다.




시뮬라크르: 복제가 원본을 대체할 때


이러한 디지털 복고의 확산은 진짜 기억과 시뮬레이션된 기억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진짜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조차, 어느 순간 자신이 경험했던 기억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다시 각색된 '재연출된 기억'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게 된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a) 개념과도 연결된다. 현실을 복제한 이미지가 점점 더 실제보다 강한 감정적 효과를 지니게 되며, 결국 복제가 원본을 대체해버리는 상태. 디지털 레트로는 바로 이 문화적 시뮬라크르의 대표적 현상이다.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Simulacra and Simulation)'에서 시뮬라크르의 발전 단계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이미지가 실재를 반영하지만, 점차 이미지가 실재를 왜곡하고, 마침내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이미지가 자체적인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를 구성하게 된다. 디지털 레트로는 이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그것은 실제 과거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이미지의 이미지, 기억의 기억이다.


X세대 중년이 <응답하라 1988>을 보며 "아, 그때가 정말 그랬지"라고 회상할 때, 그가 정확히 무엇을 회상하는 것인가? 실제 그가 경험한 1988년인가, 아니면 드라마가 재구성한 1988년인가? 그의 기억은 이미 미디어가 제공한 이미지들과 뒤섞여, 더 이상 '순수한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현상은 '경험하지 않은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 for non-experienced era)'다. Z세대가 90년대나 80년대, 심지어 70년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관심을 넘어선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구성된 과거의 이미지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실제 경험 없이도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을 형성한다. 문화연구학자 캐서린 니하(Katharina Niemeyer)는 이를 '후기 기억(postmemory)' 개념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원래 후기 기억은 트라우마적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후속 세대의 기억을 설명하는 개념이지만, 이제 그 개념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모든 종류의 '간접 기억'으로 확장되었다.


더구나 디지털 시대에는 과거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접근 가능하다. 유튜브에서는 50-60년대 TV 프로그램부터 90년대 광고까지 모든 시대의 미디어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스포티파이에서는 모든 시대의 음악을 즉시 스트리밍할 수 있다.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서는 다양한 시대의 패션과 디자인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브'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경계를 허물며, 모든 시대의 문화적 산물을 동시적으로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는, 특정 시대에 대한 감정적 연결이 실제 경험보다는 미학적 선호에 기반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포스트모던 노스탤지어'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실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과거의 이미지와 재현에 대한 향수다. 그것은 역사적 실재와의 연결보다는, 특정한 미학적 스타일과 감각적 경험을 추구한다. 이런 포스트모던 노스탤지어는 역설적으로 과거보다는 현재 지향적이다.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과거의 요소들을 현재의 맥락에서 재조합하고 재해석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기억의 재편집과 인간의 해석


그러나 이런 연출된 감정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기억을 재구성해왔다. 사진 앨범을 넘기며 회상을 덧붙이고, 일기장을 다시 읽으며 감정을 조율한다. 문제는, 지금의 디지털 기술이 이러한 재구성의 과정을 너무도 자동화시켜, 감정마저도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소비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기술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기록하며, 대화를 텍스트로 남긴다. 하지만 기술은 감정을 저장하지 않는다. 감정은 맥락과 관계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것이며, 기억은 항상 해석과 함께 작동한다. 디지털 기술이 하는 일은 오히려 감정의 맥락을 지우고, 경험을 납작한 정보로 편집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진 속에 '그날의 기분'이 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사진은 단지 빛의 기록일 뿐이다. 진짜 기억은 사진이 찍히기 전의 대화, 사진 밖에 있던 분위기, 손끝에 닿던 온기, 카메라 너머의 망설임 속에 있다. 기술은 그것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공백을 채워 넣음으로써 비로소 기억을 완성한다. 기술은 편집하고, 인간은 해석한다.


기억심리학자 다니엘 L. 섀터(Daniel L. Schacter)는 인간의 기억을 '구성적(constructive)'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의 모든 세부사항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핵심 요소들만 저장한 뒤 회상 시에 그 빈 공간을 '재구성'한다. 이 재구성 과정에서 현재의 지식, 신념,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통한 창조적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디지털 기술의 문제는 그것이 이러한 창조적 재구성의 과정을 방해하거나 대체한다는 데 있다. 구글 포토의 자동 정리 기능, 페이스북의 '추억' 알고리즘, 인스타그램의 '그 해 오늘' 기능은 우리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기억할지 결정한다. 이는 기억의 주체성을 기술에 양도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베서 밴 데르 콜크(Bessel van der Kolk)는 자신의 저서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에서, 진정한 기억은 전체적(holistic)이며 신체화된(embodied) 경험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사건을 단지 정보로서가 아니라, 감각, 감정, 신체적 반응이 통합된 전체로서 기억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록은 이런 통합적 경험을 파편화하고 탈신체화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기록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적게 '기억'하게 될 위험이 있다.


미디어 이론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인지 과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끊임없는 외부 저장 장치에 대한 의존은 우리의 내적 기억 능력을 약화시킨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 때, 뇌는 그것을 장기 기억에 저장하지 않는다. 이는 '구글 효과(Google Effect)'라고도 불리는 현상으로, 우리는 정보 자체보다 그 정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만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외부 저장에 대한 의존이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감정적 기억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점점 더 '그때 어떻게 느꼈는지'까지도 디지털 기록에 의존하게 된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과 글, 페이스북에 남긴 감정 상태 업데이트, 스포티파이의 '그때 들었던 음악' 플레이리스트—이런 디지털 흔적들이 우리의 감정적 자서전을 구성한다.


하지만 이런 외부화된 감정 기록은 깊이 있는 감정적 회고를 방해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을 스크롤하며 과거를 '둘러보는' 행위는, 눈을 감고 천천히 과거의 감각과 감정을 되살리는 내적 회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수동적 소비에 가깝고, 후자는 능동적 재구성에 가깝다. 우리가 점점 더 전자에 의존할수록, 후자의 능력은 약화될 수 있다.




인공지능과 기억의 창조


2024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AI 메모리 리컨스트럭션' 서비스가 유행했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제공하는 몇 장의 사진과 텍스트 설명을 바탕으로, 존재하지 않는 추억의 사진을 생성해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방문했던 장소에 부모님과 함께 찍은 '가상의 사진'을 만들어내고, SNS에 진짜 추억인 양 공유했다. 기억의 복원이 아니라 창조가 일어난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기억과 기술의 관계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AI는 단순히 기억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것을 넘어, 기억을 '생성'하고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억의 주체성과 진정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의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스타일 전이(style transfer) 알고리즘은 흑백사진에 색을 입히고, 저해상도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든다. '인페인팅(inpainting)' 기술은 사진 속 빈 공간을 채워넣거나 원치 않는 요소를 제거한다. 이런 기술들은 모두 기억의 '수정'과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AI 연구자 케이트 크로포드(Kate Crawford)는 이런 기술이 '기억의 정치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녀에 따르면, AI 기반 기억 재구성 기술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이해를 형성하고 조작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전적 기억의 경계를 흐리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역사적 서사를 재구성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가짜 기억 증후군(false memory syndrome)'의 디지털 버전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상상한 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게 될 수 있다. AI가 생성한 '가짜 추억'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이 이런 가짜 기억의 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가소성이 높아, 이러한 영향에 더 취약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AI 기반 기억 기술은 긍정적 가능성도 제시한다. 치매 환자의 기억 재활,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기억의 재구성, 역사적 사건의 시각화 등에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이런 기술은 기억의 본질과 구성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촉진할 수도 있다.


레트로 콘텐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감정의 복원을 돕는 장치가 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의 연출을 강요하는 틀로 작동한다. 디지털 필터 하나로 감정을 연기하고, 옛 음악을 배경으로 단편적인 감정마저 촬영 가능한 시대. 우리는 기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하고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AI와 같은 첨단 기술이 기억을 재구성하고 창조할 때, 우리는 여전히 그 기억의 주체일 수 있는가? 기억이 더 이상 우리의 내적 경험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데이터베이스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인가?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주체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이다.




기억의 미래: 기술과 인간의 공존


기억은 저장되지 않는다. 기억은 감정 안에서만 살아있다. 기술은 감정을 연출할 수는 있지만, 대신 기억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기술과 구분된다. 기술은 추억을 저장하지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감정을 통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기억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 기술과 인간 기억의 관계는 어떻게 재정립될 수 있을까?


첫째, '의식적 기억 실천(mindful memory practices)'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이는 기술에 의존하면서도 그 한계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내적 기억 능력을 함양하는 접근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사진을 찍되 그 경험을 내면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시간을 갖는 것, 소셜미디어의 '추억' 기능을 사용하되 그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과 맥락을 더하는 것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철학자 버나드 스티글러(Bernard Stiegler)는 이를 '기술적 약국학(pharmacology of technology)'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기술은 약(pharmakon)과 같아서 사용 방식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 디지털 기억 기술도 마찬가지로, 그것이 인간의 기억 능력을 대체하는지 아니면 보완하는지는 우리가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둘째, '하이브리드 기억(hybrid memory)' 형태가 등장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내적 기억과 외부 디지털 기록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억이다. 디지털 기술이 사실적 정보와 맥락을 제공하고, 인간은 그에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의 발전은 이런 하이브리드 기억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킬 것이다.


인지과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와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가 제안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은 이런 하이브리드 기억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는 두뇌 안에 국한되지 않고 외부 도구와 환경으로 확장된다. 디지털 기억 장치도 이런 확장된 인지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외부 장치들이 인간의 주체성과 의도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감정 보존 기술(emotion preservation technology)'의 발전이 예상된다. 현재의 디지털 기술은 주로 시청각 정보만을 저장하지만, 미래 기술은 더 다양한 감각과 감정적 맥락을 포착하려 할 것이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생체신호 모니터링, 몰입형 미디어 등은 경험의 감정적 차원을 더 풍부하게 기록하고 재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본질적 특성—그것의 주관성, 맥락 의존성, 해석적 특성—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은 기억의 재료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 재료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기억 윤리(digital memory ethics)'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기술이 우리의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개인적·집단적 기억의 진정성과 주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윤리적 틀이 필요하다. 누가 우리의 기억을 소유하고, 어떤 알고리즘이 그것을 구성하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투명성과 통제권이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놀라운 질문에 직면해 있다. 누가 기억의 주인인가? 매일 스마트폰으로 남기는 수백 장의 사진들, 클라우드에 저장되는 우리의 대화와 활동 데이터, SNS에 남긴 흔적들... 이것들이 우리의 기억을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 우리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기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과거의 이미지를 그저 소비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의 발전 방향만큼이나, 우리가 그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이 우리의 기억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능력을 확장하고 풍부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인간과 기술은 기억의 공동 창조자로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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