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의 회상, 시공간의 레트로적 재현과 뜻밖의 뉴트로를 소환하다
지나간 과거의 기억을 되짚으며 이른바 추억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아쉽고 또 그리운 노스탤지어의 감성에 깊이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기억을 다시 기억하게 된 첫 경험은 아마도 대학 졸업 후, 급격한 인터넷 바람이 불었던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세기말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퍼지고 있었고, PC통신과 초기 인터넷의 커뮤니티는 지금 생각하면 느리고 답답하고 촌스러웠지만, 바로 그 초기의 네트워크 경험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고, 추억의 이야기와 강렬한 동경의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분주한 사회생활 속에서 사랑의 이별과 큰 상실감을 겪으면서, 내 사유의 화살표는 자연스레 과거를 향했다. 헤어진 연인과 걸었던 길, 사랑을 속삭였던 장소들이 떠올랐고, 나는 몇 달 동안 그곳들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풋내기 사랑꾼의 자기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허함은 곧 아이러브스쿨을 비롯한 온라인 동창회 사이트를 통해 옛 친구들과의 재회로 채워졌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함께 걸으며, 소풍을 갔던 장소를 다시 찾으며, 우리는 2~3년 동안 학창시절의 기억만을 나누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 속에서 등장한 아이러브스쿨은 불과 3년 만에 2천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모으며, 대한민국 사회를 추억의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마치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의 눈물겨운 상봉을 연상케 할 만큼,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만남과 회상이 이어졌다. 이 시기 추억의 불량식품이 다시 유행했고, 교복, 운동화, 카세트테이프, LP 레코드판을 파는 가게들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이렇게 기술적 변화의 파도 위에서 첫 번째 거대한 복고의 바람을 경험했다.
그 이후의 복고풍은 아마도 10년 주기로 반복되었던 것 같다. 2010년을 즈음하여 급격한 뉴타운 부동산 정책과 개발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그에 대한 반문화 정서와 '오늘의 것을 지켜내자'는 도시재생의 바람이 불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오래되고 비좁은 삶의 터전들과 급격한 월세 상승에 밀려 들어온 작가나 문화예술인들이 자리를 잡은 해방촌, 문래동 철공소 지역, 성수동 지역, 그리고 부산과 광주, 대전 지역의 여러 오래된 낡은 동네들이 예술가들의 실험 공간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이 복원한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는 문화활동과 예술활동이 나름의 이슈가 되었다. 인터넷 초창기 레트로가 '기억의 소환'이었다면, 당시의 레트로는 '공간의 재현'이었다.
수많은 개인들이 소환한 추억의 경험 기억들이 뚜렷한 맥락과 서사로 나타나기도 했다.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가 그랬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주인공들은 삶이 풍요롭고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자유와 낭만이 있었고, 그들의 옷이나 행동, 데이트는 참으로 아날로그스러우면서도 정겨웠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소품들과 에피소드들은 당시의 주인공 세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 1990년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청소년, 청년 세대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레트로 패션이 대유행했고, 레트로 문화가 어떠한 상실감을 가진 늙어가는 사람의 뒤늦은 추억의 행동이 아니라 즐기고 놀고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그 뒤로 유튜브 알고리즘의 힘은 대단했다. 유튜브 자체적으로 과거의 영상이 추천되기 시작했고, 오래된 오리지널 콘텐츠를 가진 여러 방송사와 콘텐츠 소유자들이 짧게는 십수 년 전, 길게는 수십 년 전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힙하고 참신한 젊은 세대들이 그러한 콘텐츠를 재구성하고 리디자인하면서 거기에 자신들의 취향까지 접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앞서 말한 1차 레트로와 2차 레트로는 3차 레트로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뉴트로였다. 1, 2차 레트로의 주체이자 대상이 각각 당시의 레트로를 경험한 주인공들이었다면, 3차 레트로인 뉴트로는 당시의 경험자가 아니었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경험, 그때 당시에는 전혀 살아본 적이 없는데도 그 당시를 떠올리고 이야기하며, 그것을 굿즈나 디자인 제품으로 만들고,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를 완전히 복고풍으로 만드는 뉴트로 디자인 문화가 확산된 것이다.
나 같은 X세대, 그 윗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레트로가 상실과 추억에서 출발했다면, 그들에게는 빈 감정 영역에 대한 채움의 욕구, 색다른 라이프스타일의 감성이 된 것이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가려질 뿐이다. 감정의 바닥에, 몸의 기억 속에, 시대의 풍경 안에 머물다가 문득 어떤 장면과 마주쳤을 때 불쑥 되살아난다. 이 책은 바로 그 '돌연한 기억의 귀환'에 대한 문화적 탐사다. 인간은 왜 추억을 그리워하는가? 왜 과거의 감정을 반복하며, 복고라는 이름 아래 기억을 다시 소비하는가? 그리고 그런 반복은 단순한 유행인가, 아니면 시대를 견디기 위한 감정의 전략인가?
이 책을 레트로에 대한 단순한 현상 분석이 아니라, 레트로를 매개로 인간의 감정과 기억, 감각이 어떻게 문화로 번역되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삼고자 했다. 산업화 이후 사회는 너무 빨리 달렸고, 디지털 시대는 너무 많은 것을 잊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기 위해 다시 과거를 호출하고 있다. 레트로는 그래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되살아나는 것이다.
책은 크게 여섯 개의 축을 따라 구성되었다. 1부는 기억이 감각과 감정을 통해 어떻게 문화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2부는 유럽의 벨 에포크 시대를 중심으로 레트로 감성의 기원을 탐색한다. 3부는 미국, 일본, 한국이라는 세 지역의 문화사를 따라 레트로가 어떻게 각기 다르게 발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4부는 세대, 공간, 디자인이라는 요소들이 레트로를 어떻게 경험적으로 구성하는지를 분석하며, 5부는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레트로 문화의 특징을 다룬다. 마지막 6부는 레트로가 단지 유행이나 복고의 미학을 넘어서, 감정의 저항이자 시대의 감각적 생존 전략이라는 점을 되짚는다.
책을 쓰며 우리가 '무엇을 그리워하는가'보다 '왜 그리워하는가'에 더 집중했다. 왜냐하면 레트로는 단지 대상이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우는 시대에, 우리는 감정을 지키기 위해 기억을 반복하고, 감각을 고집하며, 오래된 것을 다시 꺼내 본다. 이것은 후퇴가 아니다. 회피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방식이다.
『무경험의 복고, 뉴트로믹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감정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어떤 기억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문화적 언어로 풀어낸 기록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기억 하나를 깨울 것이고, 누군가는 시대의 속도를 잠시 멈추는 사유의 여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