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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피오 Sep 05. 2018

12. 과도한 생각 피하기

이렇게 핵심감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찾았다고 ‘놓아버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사실 감정을 놓아버리는 그 자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전까지는 놓아 버려야 할 감정을 찾는 작업이었을 뿐이다. 이제 감정을 놓아 버리는 데 있어 중요한 것들을 살펴 봐야 한다.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규칙이 놓아 버릴 감정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감정에 저항한다? 도대체 감정에 저항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의 사례를 계속 보자. ‘내가 열심히 한 일을 상사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아’ 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의 노력과 성과가 중요한 것이지, 상사가 나를 알아주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핵심감정인 자부심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에 저항한다’는 것의 의미는 자신의 감정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이성적으로 설득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 ‘네가 나를 알아 줘야 해‘ 라는 감정은 자부심이고 자부심은 부정적 감정이니 나는 그런 감정을 가지면 안돼, 어떻게 해서든 이것을 없애기 위해 나 스스로를 설득해야 해”라는 심리가 바로 감정에 대한 저항이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자신의 감정이 옳지 않은 것임을 스스로에게 설득하려고 한다. 감정을 내려 놓기 위해 이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서는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감정을 잠시 억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 억제되었던 감정은 다른 계기로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저항하지 않고 내려 놓는다’는 것은 일단, 자부심 그 자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런 감정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죄책감이던 분노던 또 자부심이던 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감정이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런 감정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비난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나서 그 감정과 관련된 ‘생각들‘을 피해서 바로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대가 갑자기 실직을 하게 된 가장이라고 가정해보자. ‘내일 당장 직장을 잃는다면’이라는 가정을 하면 온갖 극단적인 상상들이 올라온다. 거리에 내몰린 노숙자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이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이리저리 치여 다닐 것이고, 가장인 나는 무기력하게 그것을 지켜 볼 뿐이다.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들에 대해 모든 대비책을 강구하려고 들면 밤을 꼬박 세워도 모자란다. 그렇다, 감정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응하려고 하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마치 피리 소리를 쫓아 오는 들쥐 떼들 마냥 온갖 생각들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 올 뿐이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감정에 이성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감정을 놓아 버릴 수 없다. 오직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하고 감정으로 인해 생겨나는 수 천 가지의 생각들은 무시해야 한다.  


사실 이 ‘생각’이라는 것이 늘 의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은 연상작용에 의해 저절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잠자리에 들어서 눈을 감으면 아무런 의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생각이 작은 단초에서 시작하여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 10초 뒤에는 전혀 의도치 않았던 생각에 빠져 있는 자신을 자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고 보면 오롯이 자신의 의도 하에 생각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생각은 저절로 증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생각한다‘라는 것은 드문 현상이다.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있으면 그 생각이라는 것이 더욱 요동 친다.   


이런 ‘과도한 생각’들이 오히려 감정을 더 증폭시킨다. 과도한 생각이란 말 그대로, 쓸데 없이, 수동적으로, 끝없이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의미나 원인,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얼마나 불행해질까?’, ‘상무님 말이 무슨 의미였을까? 혹시 나를 승진에서 누락시키겠다는 것 아닐까…… 등등. 있지도 않은 최악의 일들을 상상의 나래를 펴며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들 살면서 작은 죄책감이나 분노, 또는 자부심 등에서 시작된 과도한 생각에 붙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징후들을 보고 마음은 끊임 없이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하다가 종국에는 세상에 종말이 곧 닥칠 것처럼 마음 속에서는 최악의 경우만 떠오르곤 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심리학자들도 과도한 생각은 부정적 감정을 지속시키거나 악화시켜 문제 해결 능력을 손상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매사에 신중 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과도한 생각’에 자주 사로잡힌다. 그러다 보니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그저 암울한 시나리오와 거기에 대한 대응방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속절없이 잠 못 드는 밤이 생기는 것이다.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복합체에서 핵심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면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런 것임을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에 그것이 죄책감이던 분노던 자부심이던 가릴 것 없이 감정 자체를 에너지라고 보고 그 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 놓아 버림의 핵심 비결이다.  다시 말해 감정을 그저 에너지로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마치 감기몸살에 걸렸을 때와 흡사하다.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워 그저 끙끙 앓고 나면 열이 올라왔다가 저절로 내려가듯이 감정도 그저 올라오는 열처럼 다루는 것이다. 열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레 내려 가도록 두듯이 감정도 그저 올라와서 소진될 때까지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심지어 몇 날이라도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감정을 에너지로 보고 집중하게 되면 마치 명치를 중심으로 뭔가 묵직한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그것이 분노일 경우에는 명치 아래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과도한 생각이나 상상들을 곁들이지 말고, 그 묵직하고 뜨거운 기운 자체에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억제하지도 표출하지도 투사하지도 않고 그냥 소진되어 휘발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항상 기회가 되면 명치 아래 어떤 감정에너지가 차 있는지 확인한다. 어제 있었던 일이나 내일 있을 일들로 인해 명치 아래에 부정적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면 우선,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그 다음 그것과 관련된 ‘생각‘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감정 내려 놓기 작업을 시작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만사 제쳐 놓고 산책을 하러 나간다. 산책을 하면서도 절대 감정이 생긴 원인이나 해결책 따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 그러니까 분노나 죄책감 등이 내 안에서 마구 용솟음칠 때, 그 원인이나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적을 미워하면 절대로 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는 동안에는 절대 좋은 해결방안이 떠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그저 부정적 감정을 내려 놓는 것이 먼저다.  


부정적 감정이 꽉 차 있을 때는 우선 감정을 내 속에 꽉 찬 뜨거운 에너지로 보고 그것을 빼는 데 주력하자. 걸으면서 리드미컬한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조금씩 방출시킨다는 상상을 한다. 날숨을 쉴 때 뜨거운 열기들을 조금씩 내뱉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에너지 그 자체에 집중을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명치 아래가 가볍게 느껴진다. 일단 신체 반응도 정상으로 돌아 온다. 그리고 난 다음 부정적 감정의 원인과 해결책을 생각한다. 그러면 한결 객관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사실 그렇게 부정적 감정을 내려 놓으면 그것 자체로 문제가 해소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부정적 감정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부정적 감정을 내려 놓으면 상황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해소되는 것이다. 해소는 문제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고 해결은 문제의 원인을 찾아 조치를 취함으로써 문제를 푸는 것이다. ‘놓아버림‘을 통하면 굳이 해결까지 가지 않고 보다 넓은 맥락에서 문제가 해소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산책은 별 것 아닌 듯 해도 내게는 일상의 삶을 한결 수월하게 해주는 좋은 수단이다.  


이외에도 감정이나 생각을 놓아 버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방송기자 출신의 작가인 김상운은 놓아버림과 비슷한 방법을 제안한다. 그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지그시 들여다 보기만 해도 소위 잡념이라고 하는 과도한 ‘생각들’ 이 저절로 사라지고 텅 빈 공간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생각은 들여다 보면 꺼지는 거품이다.   

“ 모든 생각은 에너지의 물결이다. 장기간 흘려 보내지 않은 채 품고 있으면 마음 속에 틀어 박힌다.  그러나 생각은 나와 분리되는 순간부터 내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한다. 모든 감정 역시 텅 빈 공간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에너지 흐름이다. 내가 그 흐름을 가로막으면 나와 한 덩어리로 뒤엉키고, 가로막지 않으면 나와 분리돼 스스로 

사라진다."

 

그는 이렇게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을 놓아 버리는 방법으로 ‘멍 때리기‘라는 재미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뭔가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어떤 문제에 너무 오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너무 많은 생각이 마음 속에 갇혀 버린다. 그러다 보니 머리가 포화상태가 돼 답답해진다. 그럴 때 창 밖을 내다보며 시야를 넓혀주면 마음의 공간도 넓어진다. 그럼 갇혀 있던 생각들이 풀려나간다. 이처럼 시야를 좁히면 육안으로 바라보게 되고, 시야를 넓히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눈 뜨고 명상하는 원리다. 눈의 힘을 완전히 풀고 시야를 최대한 넓혀 허공을 ‘멍하게’ 바라본다. 시야를 넓히면 육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그럼 생각도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두뇌는 육안이 초점을 맞출 때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산책이 어려울 경우에는 이렇게 눈의 초점을 완전히 풀고 멍하게 창 밖을 바라다 보는 ‘멍 때리기‘ 방법도 부정적 감정을 놓아 버리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한다. 삶에 대해 미리 생각해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세상의 흐름을 뒤쫓느라 그 때 그 때 다급하게 필요한 생각을 강요당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생각이나 감정이 지나치게 많아서 좋을 것이 없다. 어떤 감정을 놓아 버려야 할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놓아 버릴 대상인 핵심 감정에 이성으로 저항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용을 쓰면서 뭔가를 들어 올릴 때 보다 지혜롭게 뭔가를 내려 놓을 때, 우리는 보다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이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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