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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l 26. 2024

일?



첫 번째 글을 쓰며 '일한다'라는 동사를 몇 차례나 썼다. 글을 마무리 짓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게 일인가? 일은 무엇인가? 금전적 보상을 얻기 위해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로 '내키지 않는'이란 수식이 생략된다. 직업을 설명하는 대표적 한 마디는 -먹고살려고 개 같아도 하는 거지-다. 내가 일이라 지칭하는 행위에 이것이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다.





내게 일은,



사람을 만나 커피를 곁들인 식사 

사람을 만나 농담 따먹기를 섞은 사업 얘기

맥주 마시며 잡담하며 투자제안서 수정

가게 돈 정리

독서

블로그에 글쓰기

매주 1회 나이트마켓 부스 설치 및 하역




나이트마켓 노동을 제외하곤 대외적 '일'의 개념과 부합하는 내용이 없다. 금전적 보상은 정해지지 않았고, 어떤 업무도 정해진 게 없다. 밖에서 사람 만나 커피 마시고 마라탕, 브런치, 자장면, 돈까스 먹는 것이 과연 내키지 않은 일인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은 좋고, 친구 만나는 것도 좋다. 그들과 사업 아이디어를 수정하며 농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고, 컨버터블 뚜껑 열고 운전하고, 맥주 마시고, 잡담하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 개 같아도 해는 일이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행동임에도 '일'이란 명칭을 붙인다. 




일? 이건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휴일 루틴이 아닌가. 쉴 틈이 없다고 징징대는 것이 콩트처럼 느껴졌다. 기만이 아닌가. 집에 있어도 되는데 굳이 나오는 것은 나의 의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한다.




하루 느긋하게 침대 생활을 하려는 계획이 어긋났다. 무슨 과격한 노동과 스트레스를 받는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재밌어서, 해결사 된 기분을 느끼기 위해 굳이 나왔다. 한 시간 매장 일 깔짝이고, 전문가가 맛있게 내린 드립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어디가 일이고 어디가 힘든 것인가? 쉬지 않고 논다. 잠깐의 노동과 풀 유희가 뒤따른다. 친구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술 한잔하고, 블로그에 글을 쓴다. 데이비드 게타의 I'm good을 듣는다. 진짜 내 삶은 굿이다. 한국말로 개쩐다. 




일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약은 없지만 수익 창출을 위한 활동이다. 사업을 구상하고 투자를 유치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업에 필요하다. 만남은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하지만,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이다. 둘째로 평판을 위함이다. 집에서 놀고먹기만 하면 좋은 소리 못 듣는다. 노동이 숭고한 시대다. 노동하지 않은 이에 높은 평가를 주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 셋째는 리스크 관리다. 사업을 가동하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자는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돈은 누구에게나 귀하다. 그 귀한 돈을 주는 일이 투자다. 매일 놀고먹는 사람에게 줄 것인가? 매일 출근해서 사업 디테일 짜는 사람에게 줄 것인가? 돈 주기 적합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기 위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음을 어필한다. 넷째론 자기만족이다. 인간은 의미를 구하며 살아간다. 삶에 의미가 있길 바란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 보는 것에서 큰 의미를 창출하기 어렵다. 일단 밖에 나와서 하는 행동 전반에 '일'이란 포장지를 씌우면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단 자각을 강하게 얻는다. 하루가 만족스럽다. 




나는 노동을 호도하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나름 떳떳하다. 이런 일상을 '일'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새로운 음식이나 즐길 거리 경험해 보고, 사업하는 동료들과 잡담 나누는 모든 일이 돈벌이와 연결된다. 아, 이게 돈이 되는구나! 이런 요소가 수익창출에 영향을 주는구나! 이 사람이 이러 강점이 있구나! 이 사람은 이런 관심사가 있구나!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시킨다. 





놀고먹는 걸 일이라 부르는 게 송구스럽다. 그렇지만 사업가의 시선으로 놀고먹는다. 그 경험을 곧잘 돈 버는 일에 적용한다. 수익창출의 영역으로만 볼 때는 가장 합리적인 활동이다. 노동의 목적이 돈이라면 나의 놀고먹음은 훌륭한 노동이다. 




송구스러움과 더불어 감사하다. 이런 환경에 이르게 된 것에. 주위에 능력 있는 동료들, 함께 즐거운 시간 나눌 친구들, 외국인을 영주하게 허락해 준 호주, 모든 사업을 가능케 만들어준 투자소득, 그나마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책과 팟캐스트, 독서모임. 온전히 내 힘으로 올 수 없다. 운이 따라줬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내 삶을 지탱하는 불로소득은 투자를 통해 구성됐다. 내가 만든 사업체가 아니다. 친구가 만든 사업체에 투자를 했고, 투자가 성공해서 소득을 거둔다. 경험으로 돈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투자자로서 번 것이다. 사업가로서 번 것이 아니다. 놀고먹는 것을 돈으로 바꾸는 연금술은 사업가의 특수 기술이다. 기술이 성공해야 제대로 된 사업가 칭호를 얻는다. 




사업의 정수는 남의 돈으로 사업을 만드는 것이다. 사업가로서 성공은 아직이다. 레퍼런스를 쌓고, 사업계획서를 촘촘히 짜서 사업이 설득력을 지닌다면 나는 1원도 쓰지 않고 거대한 사업체를 가질 수 있다. 이때는 고꾸라져도 무너지지 않는 단계다. 지금 막바지에 접어든 사업이 그렇다. 남의 돈으로 사업하는 시스템을 만든 이력이 생기면 그다음은 쉽다. 설계자로서 리스크 없는 사업이 가능하다. 그 위치에 이르기 위해 마지막 한 걸음 남았다. 한 걸음 더 내디디면 놀고먹는 게 일이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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