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빛깔을 담아낸 캔버스

김택상 작가론

by 최큐

30년간 같은 작업을 해왔다. 방황하지 않았고, 다른 소재를 탐내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의 방식에 천착하며 자신만의 기법을 연구했다. 김택상 작가의 60평 남짓한 작업실 바닥에는 물 고인 캔버스천이, 벽에는 미완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바닥의 물기를 제거하고 먼지가 생기지 않도록 청소하면서 청결을 유지했다. 작품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본인 보다는 ‘시간’인 듯 보였다. 진행의 경과를 체크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렇게 3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작품 제작했다. 꾸준함의 비결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연애하는 설렘으로 작품을 대한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대상과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고, 더 알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 아침 작업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동반자 삼는 작가는 많다. 그러나 이토록 오랜 시간 변치 않는 모습으로 작가와 작품이 조응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실증나지 않는 연애에 비유한 작품제작의 지속성은 어디서 기인할까? 작업의 면면이 궁금한 이유다.


자연의 빛깔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김택상 작가가 현재와 같은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분화구를 보면서 부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그랜드 프리스매틱 온천(Grand Prismatic Spring)은 화려한 색채로 유명하다. 지름이 90m에 달하며, 온천의 가장자리가 붉은 색부터, 주황색, 노랑색으로 층을 이룬다. 이 층은 수중으로 이어지는데, 50m에 달하는 깊이에 녹색, 에메랄드색, 파란색으로 연결되며 황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지표면에 색을 띠는 원인은 온천에 사는 박테리아가 색층을 이룬 것이고, 수면은 빛의 산란작용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실 바닥 곳곳에 놓인 캔버스천 물웅덩이들은 옐로스톤 공원에 분화구 호수들을 재현한 듯 보였다. 색색의 물웅덩이는 호수처럼 햇빛을 받으며 고요하게 넘실거렸다. 김택상의 작업과 호수는 색채적 감각만을 공통점으로 갖는 것이 아니었다. 작가는 ‘물빛’을 재현할 방식을 고민하였다. 물을 가장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색채가 푸른색이었기에, 초기 작업에는 푸른색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하늘과 바다가 푸른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빛의 산란(散亂)작용 때문이다. 공기와 물 자체에는 색이 없으나 태양광이 공기 중의 질소, 산소 등의 입자와 충돌했을 때 그 밀도가 높고 가시거리가 짧은 청색광 덕분에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태양과 지표면의 거리가 비스듬하게 길어지는 석양은 적색광에 의해 붉은 하늘이 된다. 이러한 특성을 깨달은 이후 색채에 대한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공기의 색을 담아낸 제목 〈Breathing light-Air〉처럼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색은 자연의 빛깔인 것이다.


한국적 풍토성, 칠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은 물론 인내와 섬세함을 요구한다. 그 과정을 보자면 우선 특수하게 제작된 수채화용 캔버스 천을 바닥에 펼친다. 그리고 원하는 색채의 아크릴 물감을 물에 엷게 풀어 캔버스 천위에 붓는다. 이때 캔버스천 아래에는 장판과 스펀지, 벽돌로 장치하여 물이 얕게 고일만큼 경사를 준다. 시간이 흘러 물감의 안료가 침전되고 물과 색이 분리되면 조심스럽게 물을 따라낸다. 자연광을 이용해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최종적으로 침전된 색채가 얇은 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을 수십번 반복한다. 층마다 색의 차이를 주면서 중첩시키기도 한다. 다양한 색층이 누적되어 최종적으로 오묘한 색상을 만든다. (화면의 주변부를 자세히 관찰하면 각각의 층을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의 원류를 과거부터 전해져 온 한국미술의 풍토성(風土性)에서 찾았다. 고려불화에서 활용된 배채법(背彩法)과 조선시대 초상화의 육리문(肉理紋)은 피부의 형태와 색을 담아내는 전통적인 명암법이었다. 안면에 은은한 색감을 쌓고 무수한 붓질을 가해 미세한 음영을 만들었다. 얼굴면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어두운 색을 피부의 결을 따라 그림으로써 인물의 특징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표현했다. 이는 단지 당시 화원들이 구사한 기술적인 특성이 아닌 인물의 인격과 정신을 담기 위한 우리 미술의 전통이었다. 고려청자도 그렇다. 청자의 비색은 회청색의 바탕흙이 어우러져 엷은 녹색과 밝은 회청색이 유약에 의한 빛의 굴절과 만나 오묘한 빛깔을 만든다. 그 청명한 빛깔은 단순한 채색과는 다른 것이었다. 청자를 보며 ‘색이 좋다’기 보다 ‘빛깔이 좋다’고 감탄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김택상 작가 역시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 맥락에 대해 ‘선’보다는 ‘획’의 축적으로, ‘색’보다는 ‘빛깔’의 구현으로 접근하였다. 문화와 예술은 그 나라의 삶과 역사 속에서 발현 될 때 가장 자연스럽다 믿기 때문이다.


색면의 깊이가 주는 숭고미

1960년대를 전후로 활동한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색면을 통해 인간의 정신성을 추구했다. 로스코의 색면추상은 색채로 꽉 차 있지만 색채의 형태와 관계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발현되는 인간 고유의 감정에 더 큰 의도를 두었다. 로스코의 색채 앞에서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거나 종교적 체험을 했다는 일화는 많다. 작가의 사색과 고뇌가 담긴 색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경험을 넘어선 숭고미에 대한 깨달음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김택상의 작업 또한 색채가 갖는 시각적 의미 못지않게 보는 이의 명상적 체험을 중시하고 있다. 수없이 중첩된 시간의 겹, 자연과 빛을 담은 작가의 노력이 숭고함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로스코의 화면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도래하던 혼란의 시대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제거하고 남은 색채인 반면, 김택상의 화면은 자연과 이 땅의 이치를 담아낸 꽉 찬 색면이다. 2019년 웅갤러리에서 열린 《담색물성(潭色物性)》 전시에 참여했을 때 전시의 제목이 엷은 색을 뜻하는 담색(淡色)이 아닌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못 담(潭)자를 쓴 것도 그런 이유다. 각각 색면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시대와 지역이 다를지언정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초월적 체험 그리고 숭고미를 통해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은 로스코와 김상택 회화의 공통점이다.


30년의 시간동안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여 지속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했다. 우리 자연과 전통의 이해, 과정을 즐기는 여유, 작업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다. 작가는 자연의 빛깔을 캔버스에 담아 예술의 본질, 미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또한, 명상과 치유를 예술의 큰 역할중 하나로 보았다. 관람자가 작품에 몰입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택상의 작품은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세밀하게 보아야 한다. 그래야지 작가가 작품을 대할 때의 섬세함, 그리고 연애하는 듯 한 설레는 감정의 집적을 느낄 수 있다. 단지 색면추상의 한 분류로, 단색화 그룹의 일면으로 판단해 넘기지 말자. 김택상의 회화를 보는 방법에 대해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일부를 인용해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Breathing hue-red in the blue, 2015 캔버스에 물, 아크릴릭, 우레탄, 에폭시 59x54.5cm.jpg
Breathing light-orange air 20172, 2017 캔버스에 물, 아크릴릭 57×48cm.jpg
담색물성(潭色物性) (5.16-6.15, 웅갤러리) 설치 전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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