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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pr 19. 2022

27 일본에서 이직 준비

새로운 가능성

가끔 넘어져 봐야
평상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 캘리 최 -




계속 나의 신경을 거스르는 외국인 동료의 무책임함에 짜증이 나는 어느 날이었다. 밤 근무하는 나이트 분, 히토미상이 말씀하신다.



"행아, 너는 이 곳 말고 더 큰 곳에 가서 배워봐. '호시노' 라는 곳이 있어. 호시노라는 사람이 만든 건데 그 사람의 경영이 대단해."



이미 정이 많이 든 히토미상에게 다른 곳에서 일하라는 추천을 받으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한편, 처음 들어본 곳이라 별생각 없이 검색해 보았다.



미디어에 나온 호시노 사장의 진보적인 경영철학이 근사하다. 숙박, 웨딩, 부동산 관련 업을 하고 있다. 범상치 않은 곳이다. 마침 우리 도시에 채용 세미나가 있어서 신청했다. 그냥 어떤 곳인지 궁금할 뿐이다.




세상에나. 이런 기업이 있구나. 수평조직, 직원들에게 PT를 한 후에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가능한 승진, 손님에게 한 직원이 담당이 되어 모든 서비스를 제공, 서비스뿐만 아니라 이벤트 기획도 하는 등,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시스템이다.



서비스뿐만 아니라, 직접 이벤트 '기획'도 한다고? 내가 원하는 일의 키워드는 네 가지이다.


첫째는 자연과 가까운 일이며, 둘째는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글로벌한 일, 나머지는 즐거운 서비스와 기획하는 일이다.



그동안 네 가지를 모두 충족하기란 어려웠다. 웨딩 기획 일을 할 때는 이 중에 한 가지 글로벌하지 못해 아쉬웠다. 여기서도 한 가지. '기획'이 아닌, 서비스 일이 주라서 아쉬웠다. 그래서 외국인 예약 사무일을 보며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도 하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짱구를 돌리곤 한다.




호기심이 많이 생기는 기업이지만, 현재 일하는 것도 만족스럽게 때문에 정보만 입수하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얼마 후...






미운 동료는 계속 나의 의욕을 저하시킨다. 여기는 더 이상 배울 곳이 없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결국 '호시노'에 이력서를 넣기로 마음먹었다.



서류 합격 통지가 왔고, 면접일에 맞춰 휴무를 조정했다. 면접 보는 곳, 도쿄까지 가려면 신칸센을 타고 두 시간 반을 가야 하고 왕복 금액이 약 30만 원이다. 큰 지출이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절실했다.



고급 건물들 사이로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이런 떨림은 참 오랜만이다.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들이 오갔고, 역시나 지금 직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행아씨는 왜 이직을 하려는 건가요?"



라는 면접관의 말을 시작으로 몇 가지를 더 물어왔고 나는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지금 있는 곳이 봉급이나 복지도 꽤 괜찮고 일도 좋은 것 같은데..."



스스로 놀랐다. 내가 이곳 자랑을 했나 보다. 당황스러워 얼른 대답을 했다.


"여기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아마 눈에는 힘이 가득했을 것 같다. 미운 동료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1차 면접이 끝났다. 사무실을 나와 낯선 거리를 걸으며 생각한다.



'나 정말 우리 료칸을 좋아하는구나.'





저녁 약속이 있어, 정처 없이 걷다가 카페에 앉아 퇴근시간이 될 때를 기다린다. 처음 일본 왔을 때 썸을 탔던 오라버니와 몇 년 만에 만나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학원에 다닐 때 취업특강에서 취업선배로 만나 인연을 맺게 됐다. '역시나 취업선배는 여전히 멋지게 일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오라버니는 도쿄역에서 도쿄 바나나빵 두 박스나 사서 쥐여 주었다. 아리가또. 그런데 크고 무겁다. 그렇게 내일 출근을 위해 몸도 마음도 무겁게 신칸센에 몸을 싣고 곯아떨어졌다.




'바나나빵을 동료들한테 나눠주면 도쿄 왜 갔냐고 물어볼텐데...우짜지.'






2차 면접일 통보

1차가 합격이 되고 2차 일정이 나와서 휴무일을 맞춘다. 또다시 지출이 커졌지만, 흑. 그래도 별일 아니다. 다른 소비는 신중히 따져보지만, 배움에 대한 투자만큼은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저번보다 좀 더 무거운 마음으로 도쿄로 가는 신칸센에 오른다.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아침, 점심 모두 거를 판이다. 편의점에서 산 오니기리를 풀러 배를 채운다. 오차(녹차)를 마시며 답답한 속을 달래본다.



1차 면접 때는 눈치 못 챘지만, 면접을 보고 나오는 사람의 복장이 꽤 클래식하다. 한국의 80-90년대 같은 어벙한 검은 복장은 줘도 못 입을 것 같다. 자신감이 떨어져서 면접을 못 볼 것이다.



2차 면접은 조금 더 디테일하게 포지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숙박시설과 함께 웨딩 채플(교회식 예식이 진행되는 곳)을 운영한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웨딩 쪽에 한국인 채용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한국인 결혼식은 없어요. 중국인들이 결혼을 많이 하는 편이라 통역 겸 중국인 직원은 있지요."



그럼 호시노의 1호점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행아씨, 아직 더 경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다른 분점에서 먼저 일해보고 이동도 가능해요."


'흐음...'



더 딥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내가 정말 이직하는 이유를 말해버렸다. 미운 감정이 배움에 대한 갈망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감정이 복받쳤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곳은 단지 1호점 뿐이라, 답답한 마음도 한몫한 것 같다.



호시노 1호점에 가고 싶은 이유는 도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가루이자와에 있다. 호시노 사장이 경영에 있어서 제일 신경을 쓸 곳이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만나고 싶었다.



면접이라기 보다, 대화를 한 듯한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사장님이 한말이 떠오른다.


"하하, 내가 면접을 본 것 같네."


내 질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뷰이가 아닌 인터뷰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면접은 서로 알아가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코가 빨간 채로, 2차 인터뷰가 끝이 났다.



마음이 무거워 다른 약속은 잡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 때문인지 평소에 관심 없던 도쿄타워에 올라가 야경이 보고 싶어졌다. 가다 보니 날도 어둑해졌고 허기져서 도쿄타워 앞에 있는 아주 유명하고 오래된 장어덮밥집에 갔다. 다행히 자리가 있었고 꼭꼭 씹어먹으며 먼 길 갈 체력을 보강했다.



도쿄타워의 높은 곳에 올라가도 속은 시원하게 뚫리지 않았고 크게 감흥이 없었다. 불빛이 있는 도시설계도를 구경한 기분이다. 역시 마음이 문제이다.







며칠 뒤 나이트 근무일,

나의 이러한 사정들을 다 알고 있는 나이트 상인 '히토미 상과 콘노상' 에게 의논한다.



"저, 1호점 가루이자와 아니면 입사할 마음이 없는데, 통보나기 전에 이메일을 보내는 편이 낫겠죠?"



이메일을 보냈고, 이내 아쉬운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생각만큼 큰 충격은 없었다. '불합격'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최종 통보를 받자 단념을 하게 되니,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서류전형-1차 면접-2차 면접' 과정 동안 이곳에서 일하는 마음도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에 대한 집착도 없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고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자연스럽게 그 동료는 퇴사를 했고 다시 배움이 넘치는 즐거운 일터가 되었다.



가끔 넘어져 봐야 평상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즉 실패를 해봐야 겸손한 마음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 캘리 최




그러나 호시노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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