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움직이는 동굴 속으로. 1. 진화의 흔적
이빨이 들려주는 진화의 연대기
입은 움직이는 동굴이다. 음식이 들어오고, 부서지고, 삼켜지고, 소리가 울리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동굴 안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처럼 남아 있는 것이 이빨이다. 이 하얗고 단단한 구조물은 단순히 음식을 씹는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수억 년 전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단단함의 역사와, 인류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변해왔는지가 함께 새겨져 있다.
1. 갑옷에서 이빨로
치아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는 그것의 시작을 피부에서 찾는다. 고대 어류의 몸을 덮고 있던 단단한 비늘, 곧 외부의 공격을 막아내던 방어용 구조가 입 안으로 들어와 이빨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바깥을 지키던 갑옷이라는 비늘이 안으로 옮겨와, 먹이를 붙잡고 부수는 이빨로서의 도구로 역할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다. 피터 S. 엉거가 말해주듯, 단순한 저작 기관이 아니라 그 생명체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으며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진화의 표면이기도 하다.
아가미 활의 앞부분이 점차 먹이를 다루는 턱으로 변형되면서, 그 주변의 단단한 조직들도 새로운 기능을 맡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를 방어하던 단단함이 내부로 이동해 생존의 무기가 되었다는 상상은 그래서 단순한 비유를 넘어, 치아를 바라보는 오래된 해석의 한 축이 된다.
이에 대한 강력한 증거는 비늘의 구성 요소에서 발견된다. 고대 어류나 오늘날 상어의 비늘(방패비늘)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우리 치아의 구조와 거의 일치한다. 비늘의 가장 겉면은 치아의 법랑질(Enamel)과 같은 성분으로 덮여 있고, 그 안쪽은 상아질(Dentin)과 신경이 지나는 수강(Pulp cavity)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우리는 과거 몸을 감싸던 피부 갑옷의 일부를 입안으로 들여와 음식을 씹는 데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2. 안에서 밀려 나온 돌기
반대로 이빨의 시작을 몸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찾는 시선도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빨이 피부보다 먼저 목구멍 안쪽, 곧 인두 부근에서 발달했을 가능성을 말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이빨은 처음부터 먹이를 붙잡고 걸러내기 위한 내부 장치였고, 이후 점차 입 쪽으로 이동하며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빨은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자라기보다, 안쪽에서 자라나 바깥으로 밀고 나온 원주민에 가깝다. 이 때문에 오늘날 이빨의 기원은 하나의 정설로 정리되기보다, 여러 단단한 구조들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환경에 맞게 이빨의 기능을 시험해 본 결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만약 이빨이 바깥의 비늘 같은 구조에서 안으로 들어오며 생겨난 것이든, 혹은 인두 안쪽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든, 그렇다면 원래 있던 이빨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특히 상어처럼 오래전부터 이빨을 지닌 어류를 떠올리면, 기존의 이빨 위에 또 다른 조직이 덧붙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이빨이 들어오며 예전의 것은 사라진 것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의 핵심은 기존의 이빨이 사라졌는가가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치아와 비늘처럼 서로 닮은 치아형 구조가 왜 어떤 자리에서는 입안의 치아가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피부의 구조로 남았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하나가 없어지고 다른 하나가 대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비슷한 뿌리를 지닌 구조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 다른 기능으로 분화해 왔을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상어는 바로 그 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다. 상어의 입안에는 이빨이 있고, 피부에는 비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아와 닮은 미세한 돌기들이 덮여 있다. 이것을 denticle, 곧 ‘피부 이빨’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상어를 보며 ‘원래 이빨이 어디로 갔는가’를 묻기보다, 왜 같은 계열의 구조가 입안에서는 먹이를 물고 자르는 도구가 되고, 피부에서는 몸을 보호하고 물의 저항을 줄이는 구조가 되었는가를 묻는 편이 더 정확하다. 결국 이빨의 진화는 사라짐의 역사가 아니라 분화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분화의 방향에 가장 현실적으로 작용한 것은 먹이였을 것이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씹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는가에 따라 이빨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역할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다음 장에서 소개할 사람의 치아를 닮은 물고기의 존재는 단순한 호기심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빨의 진화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유연한 과정이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치아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이 이토록 집요하고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늘과 이빨의 닮음은 분명하지만, 그 시작을 하나의 출발선으로 단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거울을 보며 닦아내는 이 하얗고 단단한 구조물은, 수억 년 전 두 갈래의 진화가 소리 없이 충돌하고 합쳐지며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3. 닮음의 신비, 수렴진화
뿌리가 전혀 다른 생명체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닮은 꼴의 신체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을 우리는 수렴진화라고 부른다. 전혀 다른 종인 상어와 돌고래가 바다라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똑같이 매끄러운 유선형 몸매를 갖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놀랍게도 바다와 강, 서로 다른 물속 세상에는 인간의 치열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은 길을 걸어온 존재들이 있다. 북미 연안의 쉽스헤드(Sheepshead)와 아마존 강의 파쿠(Pacu)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인류와 유전적으로 아무런 접점이 없지만, 각자의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류의 하악 전치부와 어금니를 연상시키는 정교한 치아 구조를 구현해 냈다.
누가 누구를 본뜬 것이 아니다. 그저 단단한 것을 부수고 갈아내야 한다는 동일한 생존의 숙제를 풀다 보니, 서로 다른 종이 수억 년의 시차를 두고 동일한 설계도에 도달한 것뿐이다. 쉽스헤드가 바다에서 조개나 게 같은 딱딱한 껍데기를 부수기 위해 강력한 어금니를 가졌다면, 민물의 파쿠는 물 위에서 떨어진 단단한 나무 열매나 씨앗을 으깨기 위해 이 효율적인 치열을 발달시켰다.
특히 파쿠는 피라냐와 친척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찢는 날카로운 이빨 대신 열매를 빻기 적합한 뭉툭하고 평평한 어금니를 가졌다. 초식 혹은 잡식성 식단에 맞춰 진화한 이들의 이빨은, 육식의 무기보다는 인류가 곡물을 갈아내기 위해 발달시킨 '절구'의 기능에 훨씬 더 가깝다.
분명 겉모습은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인데, 왜 이들에게 인간의 턱과 흡사한 강력한 힘과 정교한 분쇄 기능이 필요했을까. 이 기묘한 닮은 꼴은 우리로 하여금 입의 형태보다 더 본질적인 것, 즉 무엇을 먹고살아야 했는가라는 생존의 조건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게 만든다.
4. 가장 단단한 표면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이빨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이빨 전체가 아니라 그 겉면을 감싸는 법랑질이다. 몸을 지탱하는 뼈가 어느 정도의 유연성과 탄성을 지녀야 하는 조직임에 반해, 법랑질은 단단함 쪽으로 발달한 물질이다. 그렇게까지 단단해야 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이 구조는 평생 무언가를 부수고, 갈고, 그 기능을 할 때 발생되는 힘에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입이 단지 부드러운 것을 머금는 공간에 불과했다면, 이렇게까지 강인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질기고 단단한 것을 부숴야만 했고, 반복되는 압력과 마찰을 견딜 낼 강력한 표면이 절실했다. 입 안의 작은 구조물은 그렇게 동굴 속의 파쇄기가 되었다.
5. 종마다 다른 특징
이빨은 모두 단단하지만, 그 단단함을 사용하는 방식은 종마다 달랐다. 상어 류의 물고기는 이빨이 빠르게 교체되는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는 거친 사냥 환경에서 무기를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소모품 전략이다. 상어는 턱뼈 대신 유연한 연골 조직 위에 이빨이 층층이 대기하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 구조를 가졌기에, 사냥 중 이빨이 빠져도 뒤에서 새 이빨이 즉각 밀려 올라온다.
앞서 언급한 쉽스헤드나 파쿠처럼 단단한 먹이를 깨야 하는 물고기는 인간의 저작 시스템과 유사한 형태를 발달시켰다. 쉽게 말해 이빨은 한 가지 완성형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먹이가 무엇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을 내놓았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포유류는 또 다른 길을 택했다. 이빨의 수는 제한적이지만, 한 번 자리 잡으면 더 정교하게 맞물리며 기능한다. 육식동물의 치아는 찢고 끊는 데 적합한 날을 만들었고, 초식동물의 치아는 질긴 섬유질을 갈아내기 위한 넓은 면을 발달시켰다. 먹이의 성질이 곧 치아의 모양과 턱의 움직임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인류와 유인원의 차이는 여기서 더욱 흥미롭다. 많은 유인원은 경쟁과 위협을 위해 큰 송곳니를 유지했지만, 인류는 송곳니를 상대적으로 낮추고 치열 전체의 조화를 택했다. 특히 인류는 유인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Y-5형 대구치'라는 정교한 설계도를 유지해 왔다. 이는 어금니 씹는 면에 다섯 개의 볼록한 산(교두)과 그 사이로 알파벳 'Y'자 모양의 깊은 골짜기가 형성된 구조를 말한다. 이 세밀한 홈들은 맷돌처럼 음식물을 갈아내는 효율을 극대화하며, 인류의 조상이 거친 식물성 먹이를 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저작 기능에 공을 들여왔는지를 증명한다.
6. 왜 두 번만 교체할까
만일 인간도 상어처럼 평생 끊임없이 새 이빨이 돋아난다면 어떨까. 충치가 생기거나 사고로 이가 빠져도 곧 새로운 치아가 잇몸을 뚫고 올라올 테니, 우리 삶에서 치과라는 곳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이 과거 파충류나 어류 시절에 가졌던 무한 재생 능력을 진화의 과정에서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기능을 상실한 퇴화로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인류는 무한히 솟아나는 이빨 대신 정교함과 소통이라는 가치를 택했다. 어쩌면 우리는 더 정밀한 언어와 삶의 질을 위해, 평생의 무기를 단 두 번으로 압축하는 진화적 승부수를 던진 종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교체 대신 평생 단 두 번의 치열만을 허락받음으로써, 포유류는 위아래 치아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리는 정밀한 교합을 얻어냈다. 수시로 빠지고 새로 나는 불안정한 치열을 포기하는 대신, 한 번 자리 잡은 이빨을 견고하게 유지하여 음식을 더 잘게 갈아내고 영양 섭취를 극대화하는 길을 택한 셈이다.
인간에게 치열은 먹는 기능만의 문제이다. 혀의 위치, 공기의 흐름, 입술의 움직임과 함께 치아의 배열은 소리를 다듬는 구강 환경의 일부가 된다. 발음은 치아 하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치열이 만들어내는 경계와 간격은 분명 그 섬세한 조정에 참여한다. 결국 인류는 양적인 무한 재생보다, 삶의 질을 결정짓는 정교함과 소통의 도구를 위해 스스로 기회를 제한하는 전략적 선택을 내린 종이라 할 수 있다.
7. 뒤집힌 절구
절구는 아주 오래된 도구다. 곡식이나 약재처럼 질기고 단단한 것을 부수고 빻기 위해 사람은 오랜 세월 절구를 사용해 왔다. 바닥에 놓이는 절구통은 움직이지 않게 고정을 시키고, 공이를 이용해서 반복해 내려친다. 단단한 것은 그렇게 부서진다.
인간의 입은 어쩌면 이 절구를 뒤집어 놓은 구조에 가깝다. 위턱이 비교적 고정된 절구통의 역할을 하고 아래턱이 움직이는 공이의 역할을 맡는다. 치아는 그 안쪽 표면에 촘촘히 박힌 돌기처럼 실제로 음식에 닿아 그것을 자르고 갈아낸다. 앞니는 잘라내는 칼날에 가깝고, 송곳니는 먹이를 붙잡아 찢는 갈고리를 닮았다. 그리고 어금니는 절구 바닥의 넓은 면처럼 음식물을 눌러 부수고 정교하게 갈아낸다. 입이라는 동굴 안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도구들이 하나의 완벽한 절구 공정을 완성하는 셈이다.
사람의 턱의 움직임은 근육이 담당한다. 아무리 좋은 치아가 있어도 턱이 열리고 닫히고 밀고 비틀지 않으면 저작은 완성되지 않는다. 뺨 안쪽의 근육인 교근은 우리 몸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강력한 힘을 내는 근육이다. 평생 쉼 없이 뛰는 심장보다도 순간적으로 내는 압력이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어금니가 맞물릴 때 가해지는 힘은 수십 킬로그램에 달한다. 결국 치아는 부수는 면이고, 턱은 근육에 의해 그 면을 작동시키는 힘이다. 하나는 표면이고, 하나는 운동이다. 이 둘이 맞물릴 때 입은 단지 음식물을 깨부수는 기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절구가 된다.
8. 골수와 뇌, 줄어드는 턱
인류가 도구와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진화의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돌도구로 뼈를 깨고 그 안의 부드럽고 고열량인 골수를 섭취하면서, 질긴 음식을 오래 씹지 않고도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육식의 확대와 불을 이용한 조리법이 더해지자 진화는 더욱 가속되었다. 이전처럼 턱과 치아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상희 교수가 저서에서 강조했듯, 인류의 진화는 무엇을 먹고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질긴 음식을 씹던 입이 부담을 던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뇌는 그 자리를 넓혀가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결국 우리가 가진 지금의 얼굴은 도구의 사용과 불의 발견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거대한 턱과 강한 저작근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섭취하게 되면서 인류는 비로소 생존을 위한 씹기 대신 생각을 위한 뇌에 더 많은 공간과 자원을 할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얼굴은 조금씩 납작해지고 턱은 짧아졌으며, 치아가 놓일 공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9. 마지막 어금니의 퇴장
좁아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치아는 가장 늦게 올라오는 제3대구치, 곧 사랑니다. 턱이 충분히 넓고 길던 시절, 사랑니는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던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러나 현대 인류의 얼굴은 눈에 띄게 작아졌고, 턱은 그만큼의 영토를 잃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랑니는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누워버리거나, 일부만 겨우 고개를 내밀고, 심지어 아예 형성되지 않는 경우까지 빈번하다. 실제로 많은 인류학자와 치의학자들은 제3대구치가 인류의 입안에서 조용히 퇴장 순서를 밟고 있는 흔적 기관이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마지막 어금니가 현대인에게 점점 불편한 침입자가 되어간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가장 늦게 도착한 치아가 가장 먼저 자신의 쓸모를 잃어가는 풍경. 이것은 진화가 이미 완성되어 멈춰버린 설계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잇몸 사이에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신호다.
10. 동굴의 울림
먹기 위한 생존을 위한 도구로 시작된 이빨은 인류에 이르러 소리를 다듬는 구조의 일부도 되었다. 바다의 생존 경쟁 속에서 시작된 작은 경조직은 긴 진화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음식뿐 아니라 말과 표정, 문화의 일부를 떠받치고 있다.
입 안의 이 작고 단단한 역사의 기록자들은 오늘도 두 가지 사건을 함께 품고 있다. 하나는 고대 바다로부터의 생존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소리의 사건이다. 이빨은 여전히 음식물을 부수고 있지만, 동시에 언어를 전달하고 있다. 생존의 파쇄기에서 소리의 악기로. 그 긴 변신의 연대기가 오늘도 우리 입 안에서 조용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