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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May 13. 2023

공무원이 뭐라고_(30)

역량평가를 받으려는데...

내가 있었던 조직에는 5급으로 승진하기 위한 두 가지 길이 존재했다. 하나는 심사승진이고 다른 하나는 역량평가이다. 심사승진은 쉽지만 어렵고, 역량평가는 어렵지만 쉽다. 심사승진은 인사위원회에서 승진대상에 든 사람들을 모아서 심사 후에 승진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당해 성과가 눈에 뜨이게 좋거나 승진이 마땅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이 승진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느 정도 연공서열도 참작되기 때문에 시험을 치르지 않고 심사만으로 승진가능성이 높다. 역령평가는 그에 비해서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업무가 바쁘면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시험을 치러도 잘된다는 보장이 반반이다. 그러나 좋은 점수를 얻으면 우선권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승진이 가능하다. 역량평가에 2번 응시할 수 있는데 2번 시험결과 중 높은 점수를 선택할 수 있다. 역량평가에 떨어지면 심사승진에 기대볼 수 있다.  6급 주무관이 역량평가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쉬운 방법은 갓 승진한 사람에게서 공부한 자료를 얻거나 경험적 조언을 듣는 것이다. 조금 돈이 드는 방법도 있다고 하던데 내가 듣기로는 과외를 받는 것이다. 과외를 그룹으로 받는지 개인으로 받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실전과 다름없이 훈련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니...


고시출신이거나 역량평가를 잘 받아서 승진한 분들은 "공부할 필요 없다. 현업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현업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은 기획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많거나 윗분들에게 보고를 자주 가야하는 위치인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에 상황이 그렇지 못한 경우는 불만이 있기도 하다.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 추진계획을 작성하려면 기본적으로 그 내용에 추진배경, 필요성, 목적, 세부적 추진계획, 장애요인, 장애요인의 해결방안, 기대효과 등등이 포함된다. 간략하게 1-2페이지 정도로 정리해서 윗분에게 보고하러 가는데, 만약 윗분들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거나 설명을 요구한다면 윗분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주무관 위치에 있다면 팀장, 과장, 국장을 설득해야만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책의 방향성과 과장, 국장이 생각하는 방향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통계나 유사사례와 같은 근거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현업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한 것이다. 기획과와 같이 어떤 대책에 대한 보고를 할 일이 많은 부서에서는 정말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매일 연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기획을 많이 자주 하는 부서에서 역량평가로 승진하는 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아주 가끔이지만 평소에 업무는 뒷전이면서 역량평가 준비한다고 바쁜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도 역량평가 결과가 좋을 수 있다. 역량평가 시험 준비를 잘 했기 때문이다. 아주 아주 옛날에는 승진시험 기간이 오면 조직차원에서 업무를 덜어주는 배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요즘 그랬다간 사내 게시판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글이 올라오지 않을까. 어떻게 역량평가를 준비하던간데 승진서열에 가까울 수록 역량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역량평가는 승진에 적합한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다.


'역량 평가'는 승진대상자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상사로서 조직을 이끌 능력이 있는지, 조직내외 갈등에 직면했을 때 잘 소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시키는 일만 잘 하는 사람이 있고 긴급한 상황에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직원간 다툼을 잘 조정해주는 사람이 있고, 민원 대응이 신속한 사람이 있다. 정말 이 사람이 윗 계급으로 올라갔을 때 그 자리에서 책임감 있게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를 평가하는 것이 역량평가이다. 물론 한두번의 시험으로 다 알수는 없다. 다만 정한 시간내에 보고서를 기획하고 면접관들과 질문답변을 할 때에 순발력, 설득력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급하면 평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다. 역량평가는 (심사위원) 한 명의  판단이 아닌 여러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모아서 결정하는 데 대부분 평가가 비슷하게 나온다. 신규채용시 면접위원으로 여러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역시 사람보는 눈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나는 매우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말이 맞다. 사람들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측면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역량평가 후 시험을 잘 봤다는 사람은 떨어지고 어떤 부분에서 말을 잘 못한 것 같다고 걱정한 사람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았다.


보고서 기획(작성)과 보고는 한 세트


역량평가는 일반적으로 보고서 프리젠테이션(PT), 그룹토의, 역할연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점을 제시하는 것이 첫번째이고, 그룹토의할 때 튀지 않으면서 적절히 의견을 제시하며 토론에 적정하게 역할을 하는 것이 두번째이며, 상사를 설득하거나 부하직원이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 세번째이다. 신문기사, 상사의 메모(지시), 기타 자료 등이 제공되며 한정된 시간안에 보고서를 작성해서 면접관을 설득해야 하는데, 한글(HWP) 작성은 기본이다. 가끔 타자가 안되거나 느려서 손으로 필기하는 경우도 보기는 하였으나 요즘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쓰기와 말하기가 한 세트이므로 말하기 또한 중요하다. 평소에 어떤 말투인지는 시험을 볼 때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긍정적 단어의 사용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해도 '그건 아니구요.' 라는 말보다는 '제 생각에는'으로 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건 아니구요.' 라는 말은 상대방을 부정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역량평가를 잘 보고 싶다면, 게시판에 올라오는 우수보고서를 찾아보고 평소에 업무에 참고하라고 하고 싶다. 내가 남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글로 써보라고 하고 싶다. 일기를 쓰라고 하고 싶다. 두괄식 문장을 사용하고 반드시 통계나 사례를 근거로 써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작성한 글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글을 읽고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 모든 것을 미루지 말고 당장 오늘부터 실천하라고 하고 싶다.


내가 그 조직에 있을 때 역량평가로 승진한 직원들을 자주 보았는데, 평소에 보고서 작성 속도도 빠르고 보고도 간결하였다. 보고할 때에는 안된다 어렵다는 말보다는 잘 추진하려면, 해결하려면 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러한 직원들은 승진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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