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는 왜 항상 기분 나쁜 걸까?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눈꺼풀을 들지 못해 알람을 설정해야 하는 나 자신을 원망해본다. 어느 날, 10년 넘게 귀를 찢겨가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처량함이 가여워 깊은 숲 속 쉬리가 살만한 1 급수 맑은 시냇물 소리로 알람을 바꿨다.
오늘 아침. 그렇게 싱그러운 시냇물 소리와 함께 눈 위에 얹어진 돌덩이를 치우고 살며시 눈을 떴다. 이불 밖은 위험한 겨울 날씨니까 다시 눈을 감았다. 살짝 선 잠이 들길 바랐지만 오늘의 일과가 컴컴한 눈꺼풀 앞에 펼쳐졌다. '고객사들의 모니터링과 트렌드 분석을 해놓고,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 공간 디자인을 어떻게 가져갈지.. 음.. 이건 대행사 분들과 다시 논의를.. 그리고 점심에는 업무차 알게 된 지인과 식사를 하고 새롭게 작성 중인 제안서 작업을 하며.. 야근을 하겠지?' 갑자기 눈의 번뜩 뜨였다. 그래,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가자. 돈 벌러 가자.
출근을 준비하며 대충 씻고 머리를 후들들 말리고 오늘 입을 옷을 생각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싸하게 차갑게 느껴지는 요즘이라 옷 입기가 매우 신경 거슬린다. 올해 초 신혼여행으로 간 바르셀로나의 어반아웃피터스에서 구입한 코치 재킷을 입기로 했다. 코치 재킷은 말 그대로 그라운드에서 코치들이 자주 입는 형태의 재킷을 이야기한다. 여느 유니폼이 그렇듯 가슴이나 등에 큼지막한 팀 로고가 박혀있고, 나일론 소재의 홑겹으로 봄, 가을철에 입기 좋다. 나의 코치 재킷은 나일론 외피에 보슬보슬한 플리스 안감으로 추운 겨울 싱숭한 바람 한 점도 용서치 않아 좋다. 큼지막한 팀 로고가 어디에도 없는 정갈한 네이비 컬러라 더 좋다.
재킷을 꺼내 입는 순간 그곳의 향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향기라는 것을 글로 표현해보자면, 묵직한 오크향 중간중간 살짝 매움이 느껴지는 아릿한 향이라고 하면 맞을까? 유럽의 가장 아래쪽을 차지한 이베리아 반도를 닮은 향이라면 설명될 것 같다.
사실은 바르셀로나에서 12일이나 묵었던 호텔방의 옷장 냄새였다. 옷을 입는 순간 금세 눈 앞에 바르셀로나의 정취가 펼쳐졌다. 좁은 신혼여행 호텔 방의 풍경과 그 앞으로 나가 바로 보이는 넓은 에스퍄뇰 광장의 웅장함과 바르셀로나 해변의 코랄 빛 파도 그리고 가우디의 여러 건축들이 눈 앞으로 순서 없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잠시였지만 바르셀로나 한 복판으로 나를 이끌었다. 옷 한 번 입었을 뿐인데 스페인 여행을 하는 호강을 누렸다. 감사한 코치 재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