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페이스북을 보다 나와 몇 번의 마주침으로 연을 맺은 어느 사진 기자의 글을 봤다. 40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자 과감히 사표를 내던진다는 내용이었다. 짧은 인연이지만 건승과 함께 안녕의 글을 댓글에 남기고, 담대한 결정을 내린 그와 그의 아내를 축하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그의 글을 읽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기대하며 사표를 낸다.' 읽고 또 읽어봐도 대단한 결정이며, 내심 부러운 결정이다. 나. 그래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나의 지금은 거칠한 한지 같은 표면 위에서 언제 부서지고 찢어질지 몰라하며 뒤뚱뒤뚱 뛰어다니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야 막 조금이나마 '불안정함'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서 옅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편리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가령, 집을 마련하기 위한 저축과 매월 일정한 생활비 그리고 1년에 한 번쯤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는 그런 편리함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삶이 "나"를 위한 삶인가? 고민을 한다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겠다. 그저 먹고살만한 일정한 봉급에, 이제는 어떻게 해야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튀지 않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방법 정도만을 어렴풋하게 알아냈을 뿐이다.
문득, 그의 담대한 결정의 글이 나를 슬프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고민도 방법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나를 위한 삶일까? 그 삶에 대한 결정은 또 얼마나 즐거운 것이며 어느 시점에 하게 되는 것일까? 안정적이라는 현실을 쫒다 보니 현실에 안주해버린 듯한 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더욱 날 씁쓸하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과연, 가능할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 배우고 잘 해온 도둑질로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며, 그들의 원대복귀를 상상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성공도 실패도 없으며 가지고 온 것도 없고 가지고 갈 것도 없는 공수래공수거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을 존경하고 긍정했는데, 나는 담대한 마음의 그릇이나 도전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