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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Jul 09. 2020

대한민국 체육,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

2020년 7월 9일, 故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국회 긴급토론회 발표글


대한민국 스포츠 정책의 공위기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한민국 체육, 익숙한 것과의 결별


2019년 1월 16일, 바로 이곳에서 열렸던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 토론회’에서 제가 했던 발표의 제목입니다. 당시에 저는 국위선양과 성과중심주의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지향, 선수의 보호 및 관리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대한체육회, 제 기능을 못하고 처리과정도 불투명한 대한체육회의 각종 위원회와 스포츠인권센터의 무용론을 지적, 비판했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적이고 오래된 방식 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시도해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혹독한 실험을 거치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사건의 충격, 엄중함, 그리고 사회 전반의 스포츠 혁신에 대한 요구와 열망은 새로운 시도를 이행하게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가 변화할 줄 알았습니다. 스포츠 혁신의 마지막 기회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같은 사안에 대한 발제자로 또 이 자리에 있습니다. 참담함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다리를 푹푹 잡아끄는 진흙탕 늪을 힘겹게 애를 쓰며 건너고 있는 중이었고 절반은 건넜겠지 생각했는데 바위에 걸려 넘어져 보니 제자리였습니다.


2019년 1월, 조재범 코치의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이 보도된 후 문재인대통령은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성폭력은 근본적으로 근절되어야 한다”며 “스포츠분야의 성적지상주의, 엘리트체육 위주의 육성방식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19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기획재정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차관과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체육, 인권, 장애인, 여성, 법조계,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합동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체육계의 폭력과 성폭력의 근본적 근절과 스포츠분야의 구조 혁신을 위한 과제를 발굴하여 총 7차에 이르는 권고안을 도출, 발표하였습니다. 지난 7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체육계의 낡고 후진적인 관행에서 탈피한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은 2019년 1월에 주문한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주문에 대한 응답, 즉 대책은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


선술한 바와 같이,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는 총 7차로 구성되어 있고 매 권고마다 수 십가지의 정책권고와 세부과제를 제시했습니다. 또한 관련 부처의 단계별·시기별 이행계획까지 첨부했습니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만큼 1차로는 피해자의 보호 및 지원 체계 확립과 정부 및 체육계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의 전면 혁신을 권고하였습니다. 특히, 실효성 있는 구제조치와 예방시스템을 이행할 것과 독립성, 전문성, 신뢰성을 갖춘 스포츠인권 기관을 신설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1차 권고를 위해서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스포츠 성폭력 사례의 구조적 환경의 분석, 진단과 기존의 스포츠 분야 인권 보호 대책을 분석, 평가하여 스포츠 인권침해 예방 대책과 한계를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는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을 제안하였 습니다. 스포츠 혁신위원회는 이행점검에서도 신설될 스포츠인권기구가 실효성을 갖도록 권고의 취지를 잘 살려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할 것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2차로는 학교스포츠 정상화 방안을 권고하였습니다. 선수들, 특히 어린 학생선수들이 폭력 및 성폭력에 노출되고 피해를 입어도 침묵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선수육성 시스템 및 이를 뒷받침하는 학교스포츠 시스템의 비정상성 때문입니다. 2차 권고에서는 모든 학생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학교운동부 운영, 대회개최, 입시정책(체육특기자 제도) 등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재편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3차 권고에서는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인 한국의 스포츠 패러다임으로부터 민주주의, 인권, 공정, 평등, 다양성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 하여 모든 사람의 스포츠 참여 및 향유권을 보장하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Sports fo All)’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스포츠인권 증진 및 모든 사람의 스포츠와 신체활동을 참여 확대를 위한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4차와 5차는 ‘스포츠기본법 제정’과 ‘스포츠클럽 활성화’를 권고하였습니다. 이 두 권고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실행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으로 모든 사람의 기본권으로서 스포츠권을 보장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추진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6차와 7차에서는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개선 및 선수육성체계 선진화와 체육단체 구조 개편을 권고하였습니다. 선수들이 안전하고 과학적인 조건에서 훈련하고 성취를 낼 수 있도록 선수촌의 인권친화적 운영을 제안하고 지도자의 처우개선, 스포츠 과학지원 시스템의 효율화, 선수육성체계 및 선수등록 시스템의 개편 등을 요청하였습니다. 아울러 6차까지의 권고를 효율적으로 이행하며 체육단체의 공공 성을 확보, 대한체육회와 KOC가 각각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분리가 바람직하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이처럼 7차에 걸친 스포츠 혁신위원회의 권고는 폭력,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을 혁신하는 인권 보호 차원(1차)을 넘어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 근절하며 스포츠 분야에서 인권의 보호 뿐 아니라 스포츠 인권을 증진할 수 있도록 근본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교스포츠 정상화(2차)와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의 국가 스포츠 패러다임 전환(3차), 새로운 스포츠 패러다임의 실현을 위한 추진체계로서 스포츠기본법 제정(4차)과 스포츠클럽 활성화(5차), 엘리트스포츠 시스템 개선 및 선수육성체계 선진화(6차)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7차 대한체육회와 KOC의 조직 분리 권고는 이 모든 권고를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바람직한 조직 구조를 제안한 것입니다.




이 모든 권고에도 불구하고 왜 우린 제 자리일까?


지난 7월 7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스포츠인권을 위한 법과 제도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권고도 이행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따져 볼 수 없고 변화를 기대 할 수 없습니다. 이행여부만으로 권고의 효과를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이행과정에서 권고의 취지와 목적이 왜곡되진 않았는지, 이행기관의 관성대로 이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모니터링 할 수 있었습니까? 거버넌스 등이 이행의 진행정도와 과정, 절차 등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까? 언론과 국회는 권고 발표 이후 이행여부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습니까?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지켜 볼 수 없는, 그리고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공백기, 즉 공위기간 중에 우린 또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이행의지가 있었습니까? 이전의 사건을 통해 성찰하고 각성했습니까? 선수들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민감성이 있습니까?


故 최숙현 선수의 발인 다음날, 행사에 참석하여 골프를 친 대한체육회장을 보면 선수들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하여 준엄하게 다루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한 체육회는 선수들의 안전한 훈련 및 경기 참가를 보장할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폭력이나 성폭력 등 선수 인권 침해가 발생했음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 방조하는 것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배임 행위입니다.


“당신에겐 책임이 있습니다. 내서(국가대표 체조 팀닥터)씨에게 성학대를 당한 젊은 여성들과 아이들보다 메달을 우선시한 조직의 일원이잖습니까?”


미국 국가대표 체조팀 팀닥터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린 영원히 어리지 않다(원제; Athlete A)에서 청문회 중 미 상원의원이 스티브 페니 전미체조협회장에게 한 질문입니다. 이 청문회로부터 5개월 후, 스티브 페니 전미 체조협회장은 래리 내서 관련 사건 증거 조작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미 법무부는 선수 성 학대 혐의를 감추려 한 혐의로 전미체조협회, 미국 올림픽위 원회를 수사 중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체육계는 선수들이 성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렀는데도 이를 방조하고 침묵으로 은폐하기도 합니다. 선수를 보호해야 할 책임 있는 기관, 조직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스포츠 조직에서 안심하고 스포츠 할 수 있을까요? 인권침해사안이 발생했을 때 신고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체육회는 선수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장은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편, 대한체육회를 통해 폭력이나 비리와 같은 사안으로 징계 받은 지도자의 활동 현황 파악도 못하고 관련 자료도 받지 못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체육회를 관리, 감독할 수 있습니까? 혁신위원회의 많은 권고를 이행해야 할 기관이 대한체육회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를 관리, 감독하고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까? 문화체육 관광부 역시 대한체육회의 부실한 관리, 감독 및 스포츠 혁신 권고에 대한 소극적 이행, 이번 사건에 대한 미온적 대처 등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스포츠폭력 근절과 구조개혁을 위한 대책은 이미 오래 전에 나와 있었습니다. 조속히, 세심하고 적극적으로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이 다루어지고 이행되기를 요구합니다. 동시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의 관리감독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며, 대한체육회장은 책임 있는, 책임을 지는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함은주

스포츠인권연구소 연구원 · 문화연대 집행위원 · 전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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