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김유나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낱낱의 조각들: 일곱 빛깔의 불투명성

by 가다은


■ 저마다의 사연에서 위로하기


1. <이름 없는 마음>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해소되지 않는 ‘부채감’과 ‘거리감’을 다룬다. 주인공은 떨어져 사는 남동생 현권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미안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현권이 어린 시절 비를 맞으며 자신을 기다려 준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당시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인색함을 대면한다. 작가는 현권의 굽은 어깨와 처마 아래에서의 기다림을 통해,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를 오갔을 그 복잡하고 이름붙일 수 없는 마음의 영토를 세밀하게 복원해 낸다.


2. <랫풀다운>

상실과 단절을 겪은 이가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을 운동 기구인 ‘랫풀다운’에 비유했다. 직장과 연인을 잃은 석용은 바를 쇄골 쪽으로 당기는 광배근 운동에 매달린다. 타인에게 ‘바위 같은 새끼’라 불릴 만큼 무뚝뚝하게 버텨온 그는, 제주 바닷속으로 내려가며 비로소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운다. 깊은 물 속에서 느끼는 생경한 해방감은 고립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무른 몸’으로나마 받아들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은유다.


3. <너 하는 그 일>

노동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계급적 시선과 자기혐오, 그리고 연민을 다룬다.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회계사)수험생 태은은 주변인들을 ‘나태한 막장 인생’이라 멸시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 애쓴다. 그러나 폭력적인 환경을 견뎌온 엄마가 함께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태은의 날 선 시선은 무너진다. 무거운 쌀가마를 옮기며 “도망가자”라고 말하는 엄마의 팔짱에서 태은은 비로소 타인을 비웃음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던 비겁함을 용서받고, 삶의 내리막을 함께 달려 내려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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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으름 씨 뱉기>

관계의 효율성과 미래의 가치를 따지는 현대인의 건조한 내면을 포착한다. 성묘를 가서 ‘애먼 무덤’에 절을 하는 해프닝은 소통이 부재한 관계의 단면을 드러낸다. 특히 영재 지능을 가진 딸 지수와의 대화는 인상적이다. 언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논리체계이자 문화적 배경임을 말하는 지수의 성숙함 앞에서, 부모의 세속적인 계산은 길을 잃는다. 으름의 달콤한 살 속에 숨겨진 딱딱한 씨앗처럼, 관계에는 반드시 뱉어내야 할 불편함이 있음을 작가는 서늘하게 일깨운다.


5. <부부생활>

‘은행 강도’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통해 사랑의 결속력을 시험한다. 이들에게 은행을 터는 행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사랑의 연장선이자 영원한 결속”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던 영수가 진희의 광기 어린 목적에 동참하며 느끼는 묘한 해방감은 사랑의 비논리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의 부부는 남편이 도둑질해 온 물건을 여편네가 갖다 파는 부부”라는 어머니의 말처럼, 이들은 세상의 윤리 대신 둘만의 밀담을 선택함으로써 그들만의 견고한 왕국을 건설한다.


6. <물이 가는 곳>

보험 영업이라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느끼는 모멸감과 그 극복을 다룬다. 실적과 유지라는 파이프라인에 갇힌 주인공은 타인의 불행이나 필요를 이용해 보험을 팔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잔바리 회사원’이라 자조한다. 타인의 경멸 어린 눈빛을 견디며 손바닥에 땀을 고이게 하는 삶. 그러나 작가는 ‘물이 가는 곳’이라는 제목처럼, 삶의 고통 또한 어떤 흐름 속 일부이며, 그 모멸감에서도 결국 ‘진실’은 하다 만 말 속에 숨어 있음을 암시한다.


7.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

어린 시절 겪은 기묘한 밤의 기억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편집되고 왜곡되는지를 추적한다. 헛간에 누운 소, 엄마와 함께 꾸몄던 비밀스러운 공간, 그리고 그 비밀을 빼앗아 버린 어른들. 주인공은 어른이 되어 “믿기 좋은 만큼의 진실만 말해야 피곤해지지 않는다”라는 처세의 기술을 터득한다. 이는 진실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진실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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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속의 진실, 그 위태로운 아름다움

김유나의 소설 세계는 한마디로 ‘불완전한 기억의 연대’라 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각자의 필요와 상처에 의해 보정된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조각’들임을 폭로한다. 하지만 그 폭로는 냉소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장악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는 ‘빈틈’이라고 말한다.


첫째, ‘침묵과 행위’의 서사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랫풀다운 바를 당기고, 시금치 밑동을 열십자로 가르고, 땀 억제제를 이마에 롤링하고, 으름 씨를 뱉어낸다. 작가는 인물의 내면을 직접 서술하는 대신 일상의 구체적인 ‘동작’을 통해 감정의 파동을 전달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문장 사이의 여백에 자기 경험을 투사하게 만드는 리터러시의 힘을 발휘한다.


둘째, ‘거리두기’를 통한 이해다.

김유나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을 경계한다. <부부생활>에서처럼 한 공간에 있어도 마음의 목적지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름 없는 마음>에서처럼 가족 간에도 넘지 못할 선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단절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성숙한 배려일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서로를 다 알지 못하기에 비로소 서로를 궁금해할 수 있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셋째, ‘기억의 재구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에서 보여주듯, 인간은 생존을 위해 진실을 편집한다. 작가는 이를 거짓말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둘만의 밀담”처럼, 우리가 공유하는 비밀과 믿음이 삶을 지탱하는 동력이 됨을 강조한다. 진실보다 소중한 것은 그 진실을 함께 견디기로 약속한 ‘진심’이기 때문이다.


김유나의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선명한 정답을 제시하는 지도가 아니라, 안개 낀 길을 함께 걷는 동행의 손길과 같다. “빨랫줄이 너무 높다”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내려주면 될 일이라고 직감한다. 비루한 일상의 무게를 견디는 평범한 이들을 향한 깊은 긍정이다. 독자는 이 소설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이름 없는 마음’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며, 그 이름 없음조차 삶의 소중한 일부임을 또한 깨닫게 되리라.



"(창비)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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