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교향곡 4번: 거장이 쌓아 올릴 웅장한 가을의 성벽, 그 너머의
봄의 기운이 완연해질 4월 초입, 서울의 밤을 가득 채울 선율은 역설적이게도 묵직하고 거대한 서사를 예고하고 있다. 2026년 4월 2일과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 공연은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조합이다.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 그리고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바이올린 여제 시모네 람스마가 만났다. 프로그램은 존 애덤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낭만적’이다. 이 공연은 단순히 흘러가는 연주회 중 하나가 아니라, 시대와 형식을 초월한 ‘건축적 음악’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상징적인 무대가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프로그램 구성의 묘미에 있다. 20세기 미니멀리즘의 대가 존 애덤스와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거인 안톤 브루크너. 겉보기에 이 둘은 공통점이 전무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소개 글이 짚어내듯, 두 작곡가는 ‘동기(Motif)’라는 음악적 씨앗을 다루는 방식에서 기묘하게 닮았다. 아주 작고 간명한 주제를 던져놓고, 그것을 집요하게 반복하거나 확장하여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 내는 방식 말이다. 1부와 2부를 관통하는 이 ‘설계의 미학’을 인지하고 공연장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마치 정교한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듯한 지적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부를 장식할 시모네 람스마는 2016년 이후 무려 10년 만에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춘다. 그녀가 선택한 곡은 존 애덤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알반 베르크의 서정성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맥박이 살아있는 이 작품은 독주 바이올린에게 쉴 틈 없는 에너지를 요구한다. 특히 2악장의 부제 ‘꿈이 흐르는 몸(Body through which the dream flows)’처럼, 람스마의 170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오로라 엑스-플리스’가 롯데콘서트홀의 공기를 어떻게 가르고 나아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돋는다. 현대음악 특유의 지성 속에 숨겨진 람스마 특유의 뜨거운 서정성이 융합될 때, 청중은 난해함 대신 ‘흐름’ 그 자체에 매료될 것이 분명하다.
2부의 주인공은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4번 ‘낭만적’이다. 흔히 브루크너라고 하면 그 거대한 길이와 육중한 사운드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청자도 많지만, 4번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품고 있다. 하지만 얍 판 츠베덴 감독이 해석하는 브루크너는 결코 단순한 감상주의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뉴욕 필하모닉과 홍콩 필하모닉을 이끌며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로서 입지를 굳힌 그는 브루크너 음악에 내재한 질서와 웅장한 기상을 끄집어내는데 탁월하다. ‘낭만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가진 기사도적 영웅성과 대자연의 숭고함을 츠베덴이 어떤 속도감과 밀도로 조형해 낼지가 관전 포인트다. 특히 1악장 시작을 알리는 호른의 신비로운 울림과 3악장의 역동적인 사냥 테마는 츠베덴 특유의 명징한 비트와 만나 서울시향의 사운드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다.
클래식을 깊이 모르는 이들에게도 이번 공연은 ‘소리의 향연’ 그 자체로 다가갈 것이다. 롯데콘서트홀 특유의 빈야드(Vineyard) 구조는 브루크너의 거대한 음향 덩어리를 온몸으로 체감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소리가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압도적인 음량, 그리고 그 속에 흐르는 섬세한 악기들의 대화는 일상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번 무대는 서울시향과 얍 판 츠베덴이라는 ‘현재진행형 거장’의 합이 정점에 달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귀한 기회다. 말러와 브루크너 연주에 커리어 내내 공을 들여온 지휘자가, 이제는 자기 손발이 된 서울시향 단원들과 함께 만들어 낼 ‘브루크너의 우주’는 과연 어떤 빛깔일까.
존 애덤스의 정교한 미니멀리즘으로 시작해 브루크너의 웅장한 낭만으로 끝을 맺는 약 120분의 시간. 이 공연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소리가 공간을 어떻게 채우고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고양하는지를 보여줄 증거가 될 것이다. 시모네 람스마의 바이올린이 긋는 첫 번째 활에서부터 츠베덴의 지휘봉이 멈추고 정적이 찾아오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2026년 봄의 가장 찬란한 음악적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레면서도 경건하다. 거장이 설계한 촘촘한 음악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낭만이라는 이름의 웅장한 성벽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그 성벽 너머에서 들려올 승리의 선율을, 우리는 4월의 그날 밤에 기꺼이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공연 정보]
지휘: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
바이올린: 시모네 람스마 (Simone Lamsma)
연주곡: 존 애덤스, 바이올린 협주곡
브루크너, 교향곡 제4번 ‘낭만적’
일시: 2026. 4. 2(목) & 4. 3(금) 7:30 PM
장소: 롯데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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