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럭키, 아파트>
개별의 인물이 다중과 차이와 다름으로 공동체 속에서 배제될 때, 그 외면은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선 파괴력을 가진다. 다양한 시선의 무게는 개인을 고립시킬 뿐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가치들마저도 와해 시킨다. 시대의 무관용이 특정의 사람들을 조각내며, 공동체의 본질적 구성원으로부터 탈락하는 과정을 소슬하게 풀어낸 영화를 만나보자.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럭키, 아파트>(2024)는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한숨처럼 흩어지는 이야기다. 낡고 어두운 아파트에서 펼쳐지는 선우와 희서의 삶은 연약하면서도 단단한, 서로에게만 기댈 수밖에 없는 일상이다. 그러나 이웃들의 냉랭한 시선은 이들을 끝없이 고립시키고, 영화는 그 일상을 담담한 카메라에 담아낸다. 아파트는 점차 허물어져 가는 공동체의 얼굴을 닮았다. 그리고 타인에게서 멀어질 때 우리 안에서 사라지는 인간다움과 잃어버린 관용을 고요히 드러낸다.
영화는 선우와 희서가 소박하게 엮어 가는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공동체 안에서 그들이 느끼는 조용한 단절과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을 비춘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 굳건한 연대를 의미하지만, 이웃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그 시선 속에는 묵은 편견과 보이지 않는 억압이 스며있다. 일상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이 냉담한 반응은, 관객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다가오며 우리의 현실을 다시 비춘다.
커플이 지내는 아파트는 그 자체로 숨겨진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낡고 오래된 공간은 어딘지 모르게 잊힌 '차이'의 자리에 서 있다. '럭키, 아파트'라는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위태로운 현실과는 반대로 작동하는 거대한 사회다. 겉으로는 한데 모여 사는 듯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이를 조용히 밀어낸다. 소음과 차가운 눈길로 커플의 자리를 휘저으며 좁게 만든다. 공동체는 이질적인 개인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간다.
영화는 아파트라는 낡은 장소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조용히 짜맞춘다. 좁고 어두운 복도, 벗겨진 벽지, 깜빡이는 조명은 그녀들의 일상에 드리운 소외와 단절을 투영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선우와 희서의 따스한 눈길은 삭막한 공간에서 오히려 반짝이고는 한다. 또한 이들에게 아파트는 안식처이자 답답한 틀, 벗어나고 싶은 고단한 터널이기도 하다. 이중적인 감정은 묵직하게 연결되어, 현실의 칙칙한 여운처럼 관객 마음에 각인된다.
영화에서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들의 관계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된다. 작은 아파트에서 자라나는 불신과 불안, 그리고 서로에게 기대고 싶지만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마음으로 은유된다. 희서는 조용히 지내고 싶고, 선우는 그 진원을 찾아 헤맨다. 이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와 연대를 찾으려 하지만, 과정은 외롭고도 위태롭다.
감독은 절제된 대사와 느린 카메라 워킹으로 감정을 은은하게 드러낸다. 특히, 인물들을 멀리서 잡아내는 롱샷은 그들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또렷하게 만든다. 여기서 비어 있는 공간과 시간이 주는 여백 속에서 관객은 인물들의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보게 된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장면들은 차별과 외면 속에서도 그들이 숨겨둔 아픔을 비춘다. 동시에, 그 안에 억눌린 희망의 작은 불씨를 드러내며 사회적 고립의 무게를 더 짙게 새긴다.
영화는 은유와 상징이 촘촘히 엮인 구성으로 관객에게 시각적인 사유를 제공한다. 낡은 아파트는 현대 사회의 편견과 무관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삭막한 복도에 퍼지는 희미한 빛줄기는 여전히 살아가고자 하는 개인들의 존재를 응원하는 듯하다. 이 공간은 진정한 관용과 연대가 절실한 순간을 일깨운다. 서로 다른 존재를 수용할 때,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가 회복될 수 있음을 반추하게 한다.
<럭키, 아파트>는 우리 사회의 무심함이 만들어낸 균열 속에서 존재의 온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삶의 끝자락에 선 듯한 이들에게 영화는 차가운 외면의 실체를 마주하게 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공동체가 잃어버린 가치와 대면한다. 선우와 희서의 이야기 속에서 잊혀가는 인간다움과 그것에 대한 무거운 반성의 시선을 전해 받는다.
또한, 영화는 나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짙은 용기와 연대가 요구되는지를 상기시킨다. 타인의 냉담 속에서도 희서와 선우가 지켜내는 작은 울림은 우리 사회가 세운 장벽을 올려다보게 한다. 타인을 향한 온기 있는 시선으로 나아갈 때만 진정한 공동체가 완성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일상의 작은 차이마저도 배척하는 무관용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화는 마음 한편을 두드리며 타인을 향한 시선을 새롭게 정비할 힘이 되어준다. 이런 힘이 필요한 현대인의 우리가 봐야 할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