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모범생들>
외고 혹은 강남8학군을 졸업하고 특정 대학교를 들어간 남학우들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이 있다. 내 편견과는 정반대인 외고 출신 친구들을 수없이 만나도 이는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머리 속으로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들겨대며 남을 평가하고 야생의 짐승들처럼 우열을 가린 후, 자기와의 친밀도를 규정하는 그들에게 치를 떨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연극 <모범생들>에 나오는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은 사회에 나가면 아마도 내가 싫어하는 바로 그 부류가 될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작고 속물적인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결국 몸 밖으로 뚫고 나온 그 이기심. 그것을 <모범생들>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지난 공연에서 사용된 <모범생들>의 포스터 속 학생은 한껏 쓸쓸해 보인다. 쭈구리고 구석에 앉아있는 모습에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들이 그 작은 세상에서는 얼마나 별것이었는지. 또래의 아이들의 성적을 1등부터 꼴찌까지 알게된다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는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십번의 평가와 모의고사 속에서 우리는 정육점에 거꾸로 매달린 돼지고기처럼 선명하게 등급이 매겨진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못바꾸잖아요
그 나이 때에는 알지 못한다. 세상 밖의 어른들은 서울대에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하는데, 어른으로 살아보지 않은 나는 달리 믿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연극 <모범생들> 속에서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사건은 사실 어느 비평준화 고등학교에서 있을법한 일이다. 나는 그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들도 들은 적이 있다. 입시 한번에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 생각하면, 그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는 그 마음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궁지로 몰리는 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단 한명이라도 SKY에 간다고 해서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SKY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줬더라면. 인생의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을 해줬더라면 우리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지는 않았을텐데.
고등학교 때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문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학원 선생님의 이야기에, '중요하다구요! 문제를 틀리잖아요!'라고 떼쓰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연극을 볼수록 더욱 선명해졌다.연극 <모범생들>, 진지한 주제에 종종 섞인 위트와, 그것을 정확히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호연에 더욱 특별한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