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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Sep 02. 2020

젊은 여성 함부로 차지 마라

영화 <그들만의 리그>, 책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


회사를 다니면 비서분들이나

계약직 사무직 분들을 자주 접한다.

그들은 대개 20대 초중반의 여성이고,

평균 이상의 미모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 분들과 친해져 얘기를 들어보면 면접 자리에서부터 

‘술자리에는 꼭 참석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거나,

어쩌다 회사 정직원과 연애라도 하는 날에는

온갖 더러운 추문을 듣게 된다고 한다.


최근 보게 된 영화와 책에서 

이와 비슷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 최초의 여성 야구리그 선수들과, 우리나라 방송사의 기상캐스터들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여성 야구리그가 생긴 이유는 이렇다.

미국에서 남성 야구선수들이 전쟁을 위해

모두 군대로 차출되자,

누군가는 야구를 보고 싶어 할 것이라 판단한 기업들은 여성 야구리그를 만든다.

대신 여성들의 유니폼은 남성들의 것과는 다르다.

나풀거리는 짧은 스커트에 새하얗고 예쁜 깃이 달려있다.


야구선수를 원하는 여성은 많으니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당장 집에 가도 좋다고 웃으며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외에도 음주 금지, 남성 금지, 숙녀 수업받기 등

어처구니없는 규율에 지친 

주인공 도티는 질겁을 하며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도티가 떠나면

여성 야구리그가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선수 중 한 명이 도티에게 소리를 지른다.


자신은 여기서 꼭 야구를 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들은 모든 걸 버텼다.

예쁘기만 한 유니폼과 어울리지 않는 숙녀 수업,

그리고 '니들이 야구나 할 수 있냐'는 관중의 야유까지.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책의 저자인 기자이자 앵커 김지경 님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만큼

왜 기상캐스터들의 옷은 왜 그렇게 

딱 달라붙냐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이유로,

계약직인 기상캐스터 중 한 명만 남긴 채

모두 방송국을 떠난다.

남은 사람은 가장 어린 기상캐스터였다.


여성 야구선수든, 기상캐스터든

그들이 예쁜 옷을 입는 이유는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돈을 주는 기업이, 방송사가 원해서다.


비서나 계약직 여성들이 어리고 이쁜 이유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그런 사람만 뽑기 때문이다.


여성 야구선수가, 기상캐스터가, 계약직 여성이

어떤 생각을 하고 일을 하는지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영화나 책에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한 캐릭터들이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쉽게 비아냥거리는 캐릭터부터,

77 사이즈의 옷을 입는다고 한소리를 듣는 앵커까지.

특정한 타입의 직업군이 아닌 

그냥 흥미로운 한 사람으로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젊거나 어린 비서나 계약직을

굳이 남들처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나도 젊고, 어린 여성 시절을 거쳤기 때문이다.


내 자리를 걸고,

회사에 이런 불평등을 당장 해소하라며 

항의하는 것만 옳은 일은 아니다.


내 자리에서 그들을 

나와 같은 개성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언제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을 준비만 하면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의 케이트 블란쳇처럼

그곳에 거머리처럼 살아남아서 이 판을 뒤집고,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낼

멋진 여성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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