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의 ‘두 번째 문장’이 시작되다
오케이레코즈(OOAK Records)는 아직 데뷔한 아티스트도, 완공된 사옥도 없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이 미완의 공간을 향해 유례없는 긴장감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스타 기획자 한 명이 새로운 회사를 차렸기 때문이 아니다. 오케이레코즈는 기존 K팝 산업이 공고히 다져온 ‘자본과 시스템의 독재’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이자, 민희진이라는 장르가 써 내려가는 ‘두 번째 문장’이기 때문이다.
2025년 말 설립 이후 2026년 2월 공식 채널을 오픈한 이 회사는, 탄생과 동시에 ‘세계관이 있는 회사’로 포지셔닝되었다. 보통 아티스트가 세계관을 갖는 것이 K-팝의 상식이라면, 오케이레코즈는 회사가 먼저 철학적 세계관을 선언하고 그 안에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비즈니스 모델의 전면적인 역전이다.
시각적 선언: ‘OOAK’가 설계한 미학적 여백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네이밍과 로고 브랜딩이다. ‘오케이레코즈(OOAK Records)’는 발음상 긍정의 의미인 ‘Okay’를 연상시키지만, 시각적으로는 ‘Only One Always Known(내가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라는 강력한 배타적 선언을 담고 있다.
로고 속의 동그라미 두 개(OO)는 무엇이든 채워질 수 있는 ‘비워진 캔버스’를 상징한다. 이는 과잉 장식과 화려함으로 자본력을 과시하던 기존 대형 기획사들의 문법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민희진은 디자인을 통해 규모를 뽐내는 대신, ‘감각의 결’을 암시한다. 여기서 로고는 단순한 심볼이 아니라, 이 레이블이 지향하는 미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다. 이 회사는 아티스트를 양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정교하게 큐레이션된 ‘예술적 레이블’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미디어 주권의 탈환: PR 조직 없는 미디어 믹스
오케이레코즈의 가장 파격적인 지점은 조직 구조에 있다. 특히 “전통적인 방식의 언론 홍보(PR) 조직을 두지 않겠다”는 선언은 미디어 시장의 질서를 흔든다. 이는 미디어를 통제하거나 구걸하지 않고, 브랜드 자체가 미디어가 되겠다는 ‘미디어 주권(Media Sovereignty)’의 확보 전략이다.
과거에는 대형 기획사의 PR 팀이 기자들을 관리하며 뉴스를 ‘만들어’ 냈다면, 민희진은 자사 채널(홈페이지, X,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미지를 ‘직접 발화’한다. 뉴스는 타인이 쓰지만, 이미지는 본인이 결정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소비자와의 1:1 소통을 강화하고, 정보의 왜곡을 최소화하며, 팬덤이 스스로 콘텐츠를 해석하고 놀이하게 만드는 ‘분절적 콘텐츠 전략’으로 이어진다. 브랜드가 스스로 미디어 권력을 회수할 때, 마케팅은 광고가 아닌 ‘사건’이 된다.
계약의 재설계와 파트너십 프레임
민희진 대표가 언급한 ‘표준 계약 기간(7년)의 단축’은 산업의 근간을 건드리는 문제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조정이 아니라, 아이돌을 기업의 ‘자산’으로 보던 시각에서 탈출하여 동등한 ‘창작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이다.
물론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엔터 산업에서 투자금 회수(ROI) 기간을 줄이는 것은 재무적 리스크를 동반한다. 그러나 이 담론 자체가 오케이레코즈를 ‘가장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레이블’이라는 서사로 묶어준다. 지원자가 폭주하는 비공개 오디션 현상은 이미 민희진이라는 개인 IP가 회사의 시스템을 선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재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규모’에서 ‘철학’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IP의 기업화’가 마주할 과제
오케이레코즈는 ‘창작자 중심 거버넌스(Creator-centric Governance)’의 실험대다. 민희진은 ADOR 시절 ‘레트로의 재해석’과 ‘일상적 고급화’를 통해 K팝의 시각적 기준을 바꿨다. 이제 그녀가 준비 중인 보이그룹은 기존의 ‘강렬함과 군무’ 중심 문법에서 벗어나, 섬세한 감정선과 정제된 서사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첫째, ‘개인 브랜드의 과의존’이다. 민희진의 감각이 곧 회사의 자산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판단이 흔들릴 때 대안이 부재하다. 둘째, ‘시스템으로의 전이’다. 민희진의 개인적 천재성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경영 시스템으로 안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셋째, ‘숫자의 증명’이다. 감각은 기대를 만들지만, 시장은 결국 숫자로 성패를 가른다. 거대 플랫폼(HYBE)의 인프라 없이 독립된 환경에서 전작만큼의 글로벌 파급력을 낼 수 있느냐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세계를 건설하는 ‘편집의 미학’
결국 오케이레코즈는 단순한 기획사가 아니라, 민희진이 설계한 ‘세계를 편집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그녀는 늘 이미지로 말해왔고, 이번 로고의 여백은 그 어떤 보도자료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K-팝 산업이 유사한 콘셉트의 무한 반복으로 피로에 빠진 지금, 오케이레코즈는 ‘더 세게’가 아니라 ‘더 섬세하게’, ‘더 화려하게’가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이 선언이 산업을 흔들 실체로 이어질지는 결국 그녀가 내놓을 첫 번째 ‘결과물’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녀는 이미 데뷔 전부터 우리 시대의 내러티브를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브랜드는 말이 아니라 반복으로 완성된다. 오케이레코즈의 진짜 서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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