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업데이트 콘텐츠시대

넷플릭스의 AI전략과 ‘왕과 사는 남자 case

by 신승호

오늘 본 영화는 내일 다른 영화가 된다


9324_16340_614.png SBS 뉴스 헌터스 방송장면


영화는 언제 완성되는가.


20세기 영화 산업에서 이 질문의 답은 단순했다. 개봉일이 곧 완성일이었다. 필름이 극장의 영사기에 걸리고 관객이 자리를 뜨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작품이 된다. 감독판이 나오거나 리마스터 버전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이벤트였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한 번 만들어지고 끝나는 콘텐츠였다.


그러나 지금 영화 산업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이 전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는 배우 벤 애플렉이 만든 AI 영화 기술 기업을 인수했다.




이 회사는 촬영된 영상의 구도를 다시 잡거나 조명을 보정하고, 와이어를 제거하는 등 포스트프로덕션 공정을 AI로 자동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같은 시기 넷플릭스는 드라마 The Eternaut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이용해 건물 붕괴 장면을 구현했는데, 이 장면은 기존 VFX 방식보다 약 10배 빠른 속도로 완성되었다고 알려졌다.


이 사건들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다.


영화가 더 이상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업데이트 가능한 콘텐츠’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한국 영화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했던 CG 호랑이 장면을 완성도를 높여 다시 제작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장면은 일부 관객들로부터 다소 어색하게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제작진은 이러한 반응을 반영해 IPTV 출시 시점에 맞춰 최신 CG 기술로 장면을 다시 구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선된 버전이 적용되면 보다 자연스럽고 현실감 있는 장면으로 재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9324_16341_617.jpeg tvN유퀴즈 방송장면


호랑이 정도야 다시 만든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관객의 반응에 따라 이미 완성된 영화의 장면을 다시 만든다면, 그 영화는 여전히 같은 영화일까. 이 질문은 영화 산업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과거 영화는 필름 기반 매체였다. 필름은 한 번 인화되면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는 대부분 디지털 파일로 유통된다.


OTT 플랫폼에서 스트리밍되고, 극장에서도 디지털 프로젝터로 송출된다. 이 말은 곧 영화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데이터가 되었다는 뜻이다.


만약 영화가 데이터라면, 그것은 소프트웨어처럼 업데이트될 수 있다. 앞으로의 영화는 개봉 이후에도 계속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OTT 플랫폼에서 공개된 영화가 관객 반응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부 장면의 편집을 바꾼다. 극장에서는 첫 주에 상영된 버전과 두 달 뒤 상영되는 버전이 조금 다르다. AI가 배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면서 특정 장면의 완성도를 업데이트한다. 즉 영화는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버전(version)을 가진 콘텐츠가 된다.


이 변화는 영화 산업을 점점 소프트웨어 산업과 닮게 만들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출시 이후에도 계속 업데이트된다. 버그가 수정되고 기능이 추가되고 그래픽이 개선된다.


영화 역시 비슷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CG 장면이 다시 만들어지고 AI가 장면을 보정하고 기술 발전에 맞게 콘텐츠가 계속 업데이트된다. 그 결과 영화는 점점 서비스(Service)에 가까워진다. 과거 영화는 작품(artifact)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영화는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플랫폼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변화의 핵심은 후반편집(Post-production)이다.


20세기 영화 산업의 중심은 카메라였다. 좋은 카메라와 좋은 촬영 기술이 영화의 품질을 결정했다. 그러나 21세기 영화 산업의 중심은 점점 컴퓨팅으로 이동하고 있다.


렌더팜(Render Farm), VFX 스튜디오, 그리고 AI 영상 생성 모델. 영화는 이제 두 번 만들어진다. 한 번은 촬영 현장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편집실의 알고리즘 안에서다.


결국 미래의 영화는 더 이상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끊임없이 개선되는 ‘영원한 베타 버전’으로 존재할 것이다. 오늘 극장에서 본 영화와 6개월 뒤 OTT에서 보는 영화가 완전히 같은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영화의 역사는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는 역사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영화는 끊임없이 수정되는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래의 감독은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업데이트하는 편집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는 더 이상 “개봉되는 작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경험이 된다. 영화의 종말은 어쩌면 영화의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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