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해법의 철학: 완벽주의에서 실행주의로 전환하는 마인드셋
집에서 가끔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산수를 빨리 푸는 법을 알려줘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객관식 문제로 “597 × 307 = ?"이 나왔다면 나는 이렇게 조언한다. “그냥 600 × 300으로 잡고, 대략 180,000 정도 되는 답을 고르면 돼.”
완벽하진 않지만 꽤 괜찮은 답을 찾는 경험. 사실, 인생에서 우리가 대부분 마주치는 정답이 그렇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늘 완벽한 해답을 요구한다. 문제는 그거다. 일은 수학 문제가 아니라는 것. 광고 카피엔 정답이 없고, 조직 전략은 매일 바뀌고, 회의는 참석자가 많을수록 덜 완벽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같은 질문을 습관처럼 던진다. 그러다 보면 최선을 찾느라 퇴근 시간을 놓친다. 가끔은 저녁도.
심리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이럴 때 필요한 전략을 ‘만족화(Satisficing)’라고 불렀다. 완벽한 해답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실행 가능한 ‘충분히 괜찮은’ 선택을 빨리 내리는 방식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적당히 괜찮으면 그냥 질러”와 비슷하다.
이건 비단 인간만의 전략이 아니다. 자연도, 인생도 ‘완벽’을 고르지 않았다. 우리 몸만 봐도 그렇다. 허리는 구조상 영 불안정하고, 눈은 어두운 곳에선 잘 안 보이고, 무릎은 오래 쓰면 삐걱댄다. 그런데도 우리는 잘만 살아간다. 왜? 진화는 완벽한 디자인이 아니라, 살아남는 구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지한 깨달음 하나. 자연도 MVP 전략으로 움직인다. (Minimum Viable Product) 살아남을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다. 회사에서 누군가 “그거 완벽해?”라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자. “아뇨, 살아남을 수 있게는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 근사해법과 ‘대충 때우기’는 다르다. 근사해법은 ‘치명적인 실패’를 피할 최소한의 필터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커뮤니티에서만 쓰는 민감한 용어나 손 동작을 무심코 사용하는 건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혹은 웃기자고 누군가를 비하했는데, 그게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타를 남긴다든지. 이런 것들을 걸러낼 ‘기본 거름망’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이른바 ‘사전사고(Premortem)’ 기법이다. “이 캠페인이 망했다고 치자. 왜 망했을까?” 이걸 먼저 상상해보면,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아마존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보도자료를 먼저 써본다고 한다. 나 역시 유저가 우리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끝까지의 경험을 미리 시뮬레이션한다. 잘되든 망하든, 먼저 망상해보는 건 똑똑한 습관이다. 그다음은 단순하다. 일단 실행하고, 테스트하고, 반응을 본 뒤 냉정하게 검토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사실 하나. 실패는 행동에서가 아니라, 생각에서 먼저 시작된다. “될 리가 없어…”라고 속으로 되뇌는 순간, 당신의 뇌는 이미 꺼진다. 뇌과학적으로 이때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이 솟구치고, 행동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잠시 휴가를 간다. 반대로 “뭔가 될지도 몰라!”라고 기대하는 순간엔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희망을 품은 사람이 행동도 잘하고, 결과도 낫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 부른다. 회사에서 늘 기대치를 낮게 말하는 리더보다, “그래도 뭐 하나는 되겠지”라고 말하는 팀원이 결과를 낸다. 그 사람, 단순 긍정주의자가 아니다. 뇌를 실행 모드로 바꿔놓은 실행주의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완벽은 없고, 실행만이 답이다. 개인적으로는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자’는 데이터 신봉주의자와도 살짝 거리감이 있는 편이다. 데이터는 대체로 후행적인 결과지표일 때가 많다. 데이터를 보고 새로운 의사결정을 내리면, 이미 늦은 ‘뒷북 전략’이 되기 쉽다. 나는 오히려, 데이터가 제시하는 안전한 정답보다 새로운 지형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신호’에 주목해왔다. 사람들이 ‘이 브랜드가 뭘 하려는지’ 느끼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그 감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완벽을 기다리지 않았다. 근사한 해법을 들고, 실행부터 시작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는 반드시 걸러내자. 그리고 ‘될까?’라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되게 하려면, 뭘 바꿔야 하지?” 그 질문 하나로, 당신은 완벽주의자에서 실행주의자로 진화하게 된다.
신승호 KMJ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