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소멸의 시대,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구글 지니 3, 나노바나나 그리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질문

by 신승호


“구글 지니 3(Google Genie 3) 봤어요? 저 이제 뭐 해야 하죠?”

3D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동료가 푸념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안엔 진심 어린 위기감이 묻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직은 테스트 단계라지만, 텍스트 한 줄만 입력하면 실사 수준의 3D 오브젝트가 생성되고, 그 안에서 실제처럼 움직이는 인터랙션이 구현되는 시대. 수년간 툴을 갈고닦아 온 사람일수록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3184_5777_233.png 프롬프트 한줄로 실제 몰입형 세계에 뛰어들어 커서 조작만으로 이동할 수 있다 / 이미지 = 구글 지니3


여기에 더해, 최근 등장한 ‘나노바나나’라는 구글 이미지 생성 AI는 시각디자인, 일러스트, 영상 콘텐츠 영역까지 빠르게 잠식 중이다.


3184_5778_2242.png 사진을 한장 올리고 프롬프트에 맞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 이미지 = 구글 제미나이


전문가라 불리던 이들이 기계보다 느리고, 비싸고, 예측 불가능해지는 시대. 우리는 지금, ‘전문직 소멸의 시대’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3184_5779_2333.png 7살 아이를 위한 그림동화 제작은 프롬프트 한줄로 끝이 난다 / 이미지 = 구글 스토리북


AI의 본질은 민주화다. 한때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었던 고급 기술들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과거엔 포토샵 마스터의 손길이 필요했던 작업이 필터 하나로 끝나고, 복잡한 3D 모델링도 프롬프트 몇 줄이면 완성된다. 기술 자체는 더 이상 진입장벽이 아니다.


물론 이는 위기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툴을 몰라서, 디자인 스킬이 부족해서, 코딩을 못 해서 하고 싶었던 걸 포기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진짜 중요한 질문은 ‘기술을 쓸 수 있느냐’가 아니라,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교육은 오랫동안 ‘직업을 위한 기술’을 가르쳐왔다. 공학계열은 코딩을, 디자인과는 툴 사용법을, 미디어학과는 편집 기술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기술들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과 기획력, 그리고 자기 정체성이다.


문제정의 능력이란,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를 스스로 설정하고 질문하는 힘이다. 기획력은 여러 자원과 기술을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리고 정체성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자기만의 언어, 서사, 관점을 갖는 힘이다.


이것이야말로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사고 방식이다. 그리고 앞으로 인간이 경제적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스킬(skill)이 아니라 씽킹(thinking)이다. 내가 어떤 툴을 쓸 줄 아느냐보다, 그 툴로 무엇을 표현하고 구현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기술자보다 큐레이터가, 제작자보다 기획자가 유리한 게임이 펼쳐진다.


여기서 말하는 ‘기획자’란 단순히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문제를 정의하며, 다양한 도구(AI 포함)를 활용해 솔루션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사람. 말하자면, 자기만의 시선과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다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AI가 많은 직업을 대체할 수는 있어도, ‘자기 브랜드’는 대체하지 못한다. 앞으로의 생존 전략은 자기만의 인사이트, 관점, 언어, 콘텐츠, 즉 자기 IP를 꾸준히 만들어가는 데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미디어이자, 하나의 브랜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툴을 익히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언어를 갖는 훈련, 자기 주제를 탐색하는 경험, 자기 관점을 축적하는 시간이다.


대학은 이제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교육의 방향을 다시 상상해야 한다.


“어떤 기술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제는 이런 질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나는 어떤 문제에 평생 집착할 수 있을까?” 전문직이 사라지는 시대일지라도,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 ‘질문을 품는 능력’ 아닐까?


신승호 KMJ발행인

www.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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