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브랜딩] W코리아 유방암 행사를 통해 보는 ESG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설계와 거버넌스가 만드는 진짜 ESG

by 신승호

2025년 10월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W코리아의 ‘Love Your W 20주년 자선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유방암 인식 향상을 위한 사회공헌 캠페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후 남은 것은 칭찬이 아니라 거센 비판이었다. 술이 오가는 파티, 선정적인 음악, 명품 브랜드 중심의 협찬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방암 환우는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모든 담론의 중심에 섰다. 유방암 환자 커뮤니티에서는 “우리의 고통이 누군가의 콘셉트가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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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코리아 홈페이지에 이번 행사에 대한 사과문이 게재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행사 실수’가 아니라 ESG 브랜딩이 얼마나 쉽게 퇴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많은 브랜드가 사회적 의제를 차용해 홍보를 시도하지만, ESG의 핵심은 선의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인데 왜 욕을 먹지?”라는 말은 오늘날 브랜딩의 세계에선 변명이 되지 않는다.


W코리아의 문제는 ‘기획’이 아니라 ‘설계’에 있었다.

유방암 인식 향상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다면, 그 안에는 환우, 의료 전문가, 수혜 단체가 주체로 포함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그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연예인과 패션 브랜드 중심으로 꾸려졌다. 목적의 주인공이 사라진 자리엔 화려한 무대와 카메라 플래시가 대신했다. ESG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누가, 무엇을, 왜 하는지 명확히 드러나야 진정성이 생긴다.


행사의 상징적 요소도 엇나갔다.

전 세계 유방암 캠페인의 상징색인 ‘핑크’와 ‘리본’은 사라지고, 대신 노출이 강조된 파티룩과 명품 로고가 자리를 채웠다. 유방암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존중’과 ‘회복’인데, 그 메시지를 시각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ESG 캠페인에서 상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디자인, 언어, 음악, 공간의 분위기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문장처럼 읽혀야 한다. 메시지의 일관성이 무너지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도 브랜드의 신뢰는 단숨에 무너진다.


기부금 문제는 신뢰에 결정타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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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등 SNS에 올라왔던 행사콘텐츠를 삭제했다

W코리아는 “누적 11억 원을 기부했다”고 홍보했지만, 국회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유방건강재단에 전달된 금액은 약 3억 원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참여 기업이 직접 기부한 금액을 포함했다”는 모호한 해명으로 넘어갔다. ESG에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돈이 어디서 들어와, 누구를 거쳐, 어떻게 쓰였는지 그 경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ESG는 결국 회계의 언어로 신뢰를 쌓는 일이다.


행사의 수익 구조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브랜드당 약 3천만 원의 협찬비를 받고, 30여 개 브랜드가 참여했으니 단순 계산으로 10억 원 이상이 오갔다. 겉으로는 ‘자선행사’였지만 실제 구조는 ‘B2B 스폰서십 행사’였다. 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수익과 기부를 명확히 분리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ESG는 ‘착한 포장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상업적 구조를 숨긴 채 선의를 강조하면, 그건 브랜딩이 아니라 연출이다.


그렇다면 연예인들은 왜 돈을 받지 않고 이런 행사에 참여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W코리아는 패션 매체로서 상징적 영향력을 갖고 있고,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 네트워크 중심에 있다. 한 번의 등장만으로도 화보, 협찬, 이미지 관리 등 수많은 비금전적 이익이 따른다. 그러나 이런 구조일수록 주최 측의 윤리적 책임은 더 크다. 화려한 셀럽이 참여하는 무대에서, 사회적 취지를 지키지 못하면 비판의 화살은 더욱 정조준된다.


결국 이번 사건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ESG는 ‘좋은 의도’가 아니라 ‘좋은 시스템’에서 완성된다. 좋은 시스템이란 세 가지를 갖춘 구조다.

첫째,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지 수치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프로세스가 투명해야 한다. 협찬, 모금, 기부, 콘텐츠의 흐름이 구분되어 공개되어야 한다.
셋째, 거버넌스가 독립적이어야 한다. 수혜 단체와 주최 측, 후원 기업 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면 캠페인은 홍보를 넘어 브랜드 자산이 된다. 스타트업이나 신생 브랜드가 ESG 캠페인을 기획할 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좋은 일’과 ‘좋아 보이는 일’을 혼동하는 것이다. 규모가 작아도, 주제와 시스템이 일관되면 신뢰는 쌓인다. 반대로, 규모가 커도 설계가 엉망이면 그건 위기관리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W코리아가 처음 이 캠페인을 기획했던 ‘초심’을 기억한다.

2000년대 초반, W코리아는 국내 매거진 중 가장 먼저 유방암 인식 개선을 공론화한 매체였다. ‘Love Your W’라는 이름처럼, 여성의 자기 돌봄과 건강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알파벳 W가 여성성을 상징하는 심볼로서 캠페인 이름과 잡지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맞물렸고, 그 시각적·상징적 연결성 덕분에 20년 가까이 이 행사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이번 논란이 그 초심을 되찾고, 다시 한 번 패션과 미디어가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https://www.kmjournal.net/news/articleView.html?idxno=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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