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쟁력의 원천과 사람
오늘 글은 아마도 99%의 직장인이 최소 한번은 품었을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까 합니다.
성격 좋고 멋지고 능력있는 상사만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만, 불행히도 우리들 대부분은 ‘저런 인간이 어떻게 부장이 된거야?’ 같은 생각과 함께 ‘윗사람들이 다 저 모양인데 회사가 안 망하는게 신기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문 기사 등을 보면 매일매일 업체를 상태 안좋거나 폐업한다는 뉴스인데, 희한하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안망합니다. 상사들이 그렇게 엉망진창인데 말이죠.
기업은 경쟁하는 집단입니다. 매일매일 소비자나 구매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해 마음을 졸이고, 불안해하면서 이를 위해 노력을 하는 집단이지요. 때문에 고객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사결정권자들이라면 망할 확률이 올라가는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기업마다 경쟁의 무기가 다르고, 그 무기에 따라서는 사람 한 두명의 의사결정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작은 기업의 경우,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원체 적기 때문에 윗사람이 의사 결정 하나만 잘못해도 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면 구성원 개인이 아니라 그 회사가 보유한 역량 전체에 의해 회사의 경쟁력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그 '역량'이란 무엇일까요? 기업의 역량이란 크게 보면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형 자산 : 공장, 생산시설, 건물, 부동산 등
무형 자산 : 특허, 브랜드 평판, 고객관계 등
하지만 이런 요소들 외에도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유무형 자산을 운영하는 사람의 노동입니다.
먼저, 비즈니스 경쟁력을 오로지 사람의 노동에 의존해야 하는 기업을 생각해봅시다. 예를 들자면 프리랜서 디자이너나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사업, 의사 한명이 운영하는 동네 병원, 각종 경영 컨설팅 업체, 작은 금융서비스 업체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업체는 개개인의 역량과 태도가 사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계속해서 엉망인 디자인을 고객사에 전달하거나 혹은 고객사 여러 곳과 갈등과 싸움을 했다면 이 디자이너는 조만간 사업을 접어야 합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동네 병원 역시 마찬가지죠. 주민들 사이에서 저 의사 치료 못한다 혹은 저 유튜버 재미없다는 소문이 나면 손님이 끊길테니까요. 규모가 좀 커진 집단인 경영 컨설팅이나 금융 서비스 업체라고 해도 고객과의 관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수익을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즉시 회사가 휘청거리게 됩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에게는 못되게 굴거나 짜증이 많은 인간일 수는 있지만, 회사가 경쟁력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부분, 즉 고객과의 관계를 만들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못된 인간일 수는 있지만, 무능한 인간이면 안되는거죠.
만약에 상사 대부분이 무능하다면 정말 오래지 않아 회사가 망하거나 휘청거려야 합니다. 물론 대표이사 같은 사람이 슈퍼 능력자인 경우라면 어느 정도 버텨낼 수는 있겠지만, 아주 오래 유지되기는 쉽지 않겠죠. 개인기가 통하는 산업이라고 해도 조직적으로 덤비는 경쟁사를 이길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대체로 이런 회사에는 스펙이 높은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회사는 이들에게 급여와 보상을 빵빵하게 지급합니다. 당연합니다. 구성원 개인의 능력이 곧 기업의 실적이고 경쟁력이 되니까요.
두번째로는 사람의 능력과 유무형자산이 좀 섞여있는 사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상물제작업체나 개발외주업체, 광고제작사 등의 업종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근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런 유형의 기업들은 대체로 사람을 갈아넣는 업체들입니다. 여기에 대체 무슨 유무형 자산이 있다는 것일까요? 그냥 유형 1)처럼 사람의 노동력이 곧 경쟁력인 기업들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아주 작은 업체라면 그냥 사람에만 의존하는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기업 규모가 커지면 두 종류의 유무형 자산이 생깁니다.
하나는 장비죠. 영상 촬영이나 편집용 장비들의 경우 제법 고가이고, 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 하나에서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이건 사실 매우 큰 자산은 아닙니다. 렌탈 등으로 얻을 수도 있고 사실 그렇게 큰 규모의 투자도 아니니까요.
두번째 자산이 정말 중요한 변수입니다. 바로 ‘레퍼런스/명성’과 ‘영업력/관계’라고 하는 무형자산이죠.
우선 레퍼런스는 그 기업체가 어디 프로젝트 했었다더라, 혹은 ‘어디 프로젝트를 해줬는데 제법 잘했더라’ 같은 것들이죠. 레퍼런스가 충분히 쌓이면 그 자체만으로 입소문이 나서 장사가 어느 정도 됩니다. 담당 상사와 직원이 정말 아주 큰 사고를 치거나 엄청 무능력하지 않는 한 사업은 그런대로 굴러가게 됩니다. 심지어 몇 명의 상사가 닭 머리 수준이라고 해도 이런 레퍼런스를 만드는데 기여를 많이 한 능력자가 계속 남아 있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이런 레퍼런스를 보고 참여하게 된 경력자가 능력자라면 충분히 굴러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의 경쟁력, 즉 노동의 부가가치 생산성이 조금 낮더라도 레퍼런스와 명성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이를 보완해줘서 사업이 굴러가게 된다는 거죠. 물론 대부분의 상사가 무능하거나 무능력 상사가 많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기업이 망할테지만 충분한 명성을 쌓은 회사는 내부에 숫자가 많지 않더라도 능력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이 사람이 몇 명의 몫을 해서 기업이 굴러가게 되는 거죠.
그리고 다른 능력은 부족하지만 고객에 대한 영업력이나 관계 형성 능력 만큼은 탁월해서 기업이 살아남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회사 상사들 대부분이 멍청하고 무능력하고 자기욕심만 차리는데도 영업 능력이 좋은 상사 몇 명이 있거나 대표가 슈퍼 능력자이면 또 회사는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습니다.
물론 무능력자 밑에서 일하는 여러분은 미치고 펄쩍 뛰면서 왜 안망하는지 궁금하실테지만, 회사가 그 상사 몇 명만 가지고 경쟁하는게 아니라면 안망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유무형자산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높은 사업입니다. 작게는 동네 편의점이나 PC방, 크게는 대규모의 설비 투자를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통신이나 반도체같은 대규모 제조 업체들이 이에 해당이 되겠죠. 혹은 온라인으로 운영되는 엄청난 명성을 가진 플랫폼 같은 곳들도 아주 큰 무형 자산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이에 해당됩니다. 유명한 성공 게임을 가진 게임 업체도 당연히 이 부류입니다. (전체 비용에서 자본 투자 항목 비용이 높은 경우)
이런 사업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노동이 기계 장치나 자산의 활동을 아예 말아먹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업체는 유지되고 경쟁이 됩니다. 좀 험한 비유지만 목 좋은 곳에 위치한 편의점이라면 사장이 역대급 병크를 터떠리지 않는 한 장사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산수 계산도 못할 정도로 멍청하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보통 사람의 지능과 능력이 있다면 무능해도 편의점 장사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이 편의점의 장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장의 개인적 역량이 아니라 위치 좋은 곳에 편의점을 낼 수 있는 임대보증금( = 투하 자본)과 편의점 본사의 운영 시스템이니까요. 물론 월세를 너무 많이 계약한 경우라면 매출이 웬만큼 늘어나도 망할테지만, 그 정도를 분별할 능력은 있어야 하겠죠.
많은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사업 운영 방식도 비슷합니다. 초기 레시피 및 운영 노하우 축적에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고, 이 투하 자본은 회사의 특허나 매뉴얼, 각종 시스템 등의 이름으로 회사의 유무형 자산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자산이 갖춰진 프랜차이즈가 마케팅까지 어느 정도 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개별적인 상사들 몇 명이 좀 멍청하다고 해도 사업이 굴러가게 됩니다. 직원들은 자기 주변의 몇 명의 상사를 보면서 우리 회사는 왜 안망하는거지 궁금해하게 되지만 사실 회사는 그 멍청한 상사 몇 명의 삽질과 상관없이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양상은 투하 자본의 규모가 인건비 대비 엄청나게 큰 대부분의 산업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주파수와 통신 장비에 몇 조원의 돈을 투자하는 통신사들은 일단 서비스가 안착되기만 하면 그 다음은 그저 유지보수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통신사의 각 사업부들은 매우 바쁘고 많은 일을 하겠지만, 대규모의 투자 결정 및 핵심 통신망 운영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영업 마케팅 분야에서 좀 실패하거나 실수하거나, 잘못한다고 해도 기투자된 자본이 원체 크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거죠. (직원 한 두명이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공장 설비 전체를 날려버리거나 회사의 명성에 말도 안되는 먹칠을 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죠. 때문에 큰 회사들은 이런 일이 안생기도록 수많은 추가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드라마나 영화라면 몰라도 이런 황당한 상황은 정말 발생 빈도가 낮습니다.)
국내 게임업체들이 콘텐츠는 뒷전이고 맨날 캐쉬템이나 가챠만 팔아도 망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존에 깔아놓은, IP를 가진 게임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크기 때문입니다 .즉, 상사들이 무능해도 당장 몇 년 돈 버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기업이 경쟁하는 요소는 투하자본과 사람,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기술과 노하우입니다. 물론 이런 기술과 노하우는 결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이 기술과 노하우가 기업의 높은 사람들 전체에 균질하게 분포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기업이 커지면서 시스템화가 되면 개인의 영향력이 별로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상사가 닭이 아니라 아메바 수준이라고 해도 기업체는 굴러갑니다. 심지어 대부분은 멍청한데 한 두명의 슈퍼스타급 경영자가 있다면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우울한 의문이 듭니다. 이런 거대한 구조 속에서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대규모의 자원이 투자되고 시스템화가 이루어지면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의미한 것일까요?
제 글을 잘 읽어보시면 꼭 전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즉, 사람이 인간적으로는 별로일지라도 업무. 특히 고객 가치를 만들어내는 업무를 잘해내는 상사들이 많던지, 아니면 대부분 멍청하지만 한 두명은 슈퍼스타급이어야 한다고 말이죠.
자본과 기술은 그 자체로 고정 자산입니다. 기업의 명성이나 레퍼런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 고정 자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 어떻게 차별화하고 우리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즉, 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그러니 너무 절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기업이 커질수록,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투하 자본이 대규모일수록 이렇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람은 점점 소수가 되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들 직장인에게는 '윗사람들이 다 저 모양인데 회사가 안 망하는게 신기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 일전에 브런치 프로젝트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해드리면서 곧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 드디어 나왔습니다!
브런치, 매거진 <B>, 유유출판사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일의 기본기 :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교보문고에서 보기/ 영풍문고에서 보기/ 인터파크에서 보기/ 반디앤루니스에서 보기/ 알라딘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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