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항로

푸른하늘이 죽고난 뒤에 오는것

by 박제언 Curator Jenny

박사 첫 학기가 끝나고 방학에 접어들었다. 13년간 전시기획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오랜만에 읽는 텍스트들은 공부를 위한 머리로 나를 재 편성하는 한학기의 시간에 다름아니었다.


마지막 소논문 발제를 마치고, 무엇을 하고 휴식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어린시절부터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거의 유일한?-취미였던 만화를 보자 라는 생각에 무엇을 읽을지 찾아보았다.


웹툰을 즐겨보고있지만, 출판만화가 보고싶었던 나는 30권정도의 길이의 작품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린시절 아주 좋아했던 [삼국지]를 조조의 입장에서 다시 서술한 [청천항로]가 제격이었다.


art_1389109854.jpg 창천항로. 조조와 하후 돈


[창천항로]는 재일교포인 이학인작가가 스토리를, 일본인 킹곤타(王欣太)작가가 작화를 맡아 연재한 일본만화로, 이학인 작가가 타계하기 전인 1부와 이후인 2부로 성격이 많이 바뀐다. 삼국지연의의 정사와 야사를 번갈아 참조하며 조조의 입장에서 서술한 만큼, 오나라와 촉의 이야기보다는 위나라의 전개에 집중하며 조조의 군사와 장군들에 대해 더 세밀하게 다룬다. 사실 조조에 집중해서 그를 주인공으로 삼다보니 조조의 유명한 악행이 마치 대의를 위한 것인양 서술되거나, 구한말 마지막 황제인 황제 유협조차 조조에게 아버지 또는 스승과 같은 감정을 느낀 것처럼 묘사되는등의 부분은 비판을 받지만(심지어 서주 대학살 같은 도저히 쉴드 불가능한 참극까지도 옹호하는 양 묘사한다), 유비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은 삼국지에서 조명되지 않는 여러가지 부분이 눈에띄었다. 그 중 조조가 한나라 400년의 흥망을 주도한 유학에대한 태도를 묘사한 부분은 흥미로웠다.


한나라는 상징하는 창천(푸른하늘)이 막을 내리고 황천(누런하늘)이 다시 세상을 밝히리하는 황건적의 노래처럼 창천이 상징하는 것은 한조 400년을 지탱하고 동시에 병들게한 유학사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내적모순을 통해 발전한다고 하였는데, 그럼 조조가 유학의 모순을 짚으며 대안으로 여긴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학자가 그에게 도가사상을 언급하지만 유교에 대한 변증법적 후예로서 조조는 도교가 올 수없다고 언급하며 대신 유학사상에 의해 상대적으로 배제되었던 의술이나 사학(유학이 아닌 사상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인재를 등용한다. 즉 한가지 가치로 대변되었던 세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것은 이러한 맥락이 현재 유행하고있는 포스트모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서구의 이성주의.합리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발전을 거듭하고 세계의 논리처럼 우뚝 선지 오래다. 모더니즘이 강화한 이성주의가 가져온 여러 오류들은 눈부신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에 의해 가려지고 묵살되어왔다. 가려진 그 언저리에는 대문자인간(알파인간)이외의 여러 주체들 여성, 제3세계 국가, 유색인종, 그리고 인간이외의 존재들이 자리한다.


창천항로에서 이러한 변증법적 반전은 구한말의 여러 폐단과 함께 등장했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이를 무엇보다 강력하게 가져온 흐름은 의외로 자연의 반격이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은 팬더믹 상황에서 인간이 느낀 자연(비인간)에 대한 무력감은 모더니즘과 자유주의 휴머니즘으로 설명되는 이성주의.합리주의 가치관에 경종을 울리며 세계는 인간이외의 것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려는 노력을 다시 시작했다.


재미있는것은 구한말의 위기에서 조조에게 유학의 대안으로 여러 학자들이 도가를 제안한 것과,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에서 현대인류가 찾은 대안이 인류세라는 점이 겹쳐보인다는 것이다.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을 창시한 프랑스의 과학기술학 연구자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를 필두로 유행했던 이 바람은, 인간 이외의 비인간존재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서구 모더니즘적 세계관을 해체하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비 인간 존재들의 연결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서구 모더니즘 세계관에서 남성/여성 이성/감성 인간/자연 정신/육체와 같은 이분법적 구조는 창천항로에서 조조가 짚어냈던 유학사상의 모순과 일치한다. 공자의 후손으로 유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공융을 참살하는 장면에서 조조는 그를 유교의 상징으로 여겨 참형에 처한다고 묘사되는데, 창천항로에서는 그것이 유학사상 그 자체에 대한 모순을 척결하고 다원화된 가치를 수용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묘사된다.(실제로는 구한말의 한왕조를 지탱하고 황제 유협응 옹호하는 세력인 유학자들에 대한 견제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쨌든 공자의 후손 공융이 참살당함으로서 유교를 참수하는 장면은 재미있다. 현재의 모더니즘을 해체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모더니즘 사상가들의 이론을 끌어와 부관참시하는 모양과 유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가지 재미있던 부분은 조조가 그의 아들 조식의 첫 출전에서 한 대사이다. 조식의 첫 출전에서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온 그에게 조조는 사람을 죽여본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 조식이 별로 특병할것 없다는 식으로 답변하자 조조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인 사람 수만큼의 여자를 안아라."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고 영토를 넓히는 것을 발전적 가치-이성적 가치-전술적 가치라고 한다면 성교는 욕망-감정-본능에 의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조조의 대사를 단순히 살인이라는 일을 한 충격을 여자를 도구삼아 욕정을 풀어서 해소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 수 있지만, 여성인 나에게 그것은 마치 이성과 욕망의 변증법적 해소를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읽혔다. 이성이라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면 언제나 감성과 욕망같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배제된다. 두가지 이항 중 어느것이 모자라도 인간은 스스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항대립적인 가치에서 변증법적으로 태어나는 그 다음의 가치가 무엇인기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현대이다. 신자유주의사회에서 인간은 급속도로 소외되고 있고, 기술발전 안에서 그 다음 인간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시대가 왔다. 포스트-휴먼의 모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대문자 인간이 아닌 다양한 가치를 수렴한 대안적 모델을 주장한다. 탈중앙적 세계관에서 이후의 가치는 어떤모습을 가져야 할 것인가? 그것이 도교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여러 사학을 중용했던 조조처럼 우리는 여러 가치관들을 베스킨라빈스 가듯이 찍어먹어보고 있을 따름이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어느곳에 중심을 두어야 할 지 알지 못한체, 해체와 부관참시를 반복하며 공융을 처형하고 있는 우리들이, 푸를하늘 다음에 대안으로 이끌 하늘이 어떤모습이 될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지만, 불안한 마음을 접어두고 오늘도 모더니즘을 해체하는 다양한 이론가들의 책을 읽는다.



끗.





Bruno LatourBruno LatourBruno LatourBruno La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