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슬작가 작품평론 <하이퍼 커넥션>(2023)
신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여성 인간이 안무하듯 손을 앞으로 뻗는다. 모아진 양손으로 그녀는 유영하듯 공중을 젓고, 작은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든다. 화면이 전환되고, 거대한 나무와 용암, 그리고 바닷속처럼 보이는 세계로 계속해서 관객은 인도된다. 신에게 바치는 것 같은 춤사위 사이로 용처럼 보이는 존재가 그들을 감싸고, 마침내 미시세계로 들어갔을 때 이데아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헤엄치는 여성형 인간들은 미시세계의 바다에서 거대한 사슴과 조우한다.
작가 김보슬의 2022년 작 <하이브리드 네이처(Hybrid Nature)>의 장면들이다. 첫 시작에서 등장하는 초월적 존재는 여성형의 윤곽을 하고 있다. 안무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그녀는 일종의 거대한 여신과 같은 모습이다.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여성형 초월 존재는 그것이 실제 여성이 아닌 상상 속 이미지에 머무름으로써,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과 상상 속 여성을 괴리시키고 오로지 메타포로서 기능하는 여성형 상징-즉 타자로서의 여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거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군중을 끄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등장하는 강력한 여성의 이미지가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기능하는-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주지한-타자로서의 여성(Woman-as-Other)이라면, 김보슬의 가이아는 동양적 여신의 모습을 갖춘 동시에 작가 자신의 또 다른 페르소나의 집약처럼 보인다.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하며 종합적 작품을 만드는 데에 익숙합니다. 여러 장르를 융합하는 과정에서 나의 강력한 색이 여러 요소들과 합쳐지고, 그것을 종합적으로 통솔하여 이끄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어쩌면 거대한 에너지체가 나 자신과 닮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 인터뷰 중-
산수적 결합과 수직적 통합이 중앙, 이성, 언어,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진다고 가정할 때, 김보슬의 통합은-그것이 현실에서의 디렉터로서 그의 리더십이건, 작품 속 가이아로서 현신한 인도함이건- 탈중앙, 감성, 비언어, 여성적 특징을 보이며 관객을 안내한다.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이 민중을 정확한 어느 목적으로 인도하고 있다면, 김보슬의 가이아는 세계 속에서 존재들을 유영시킨다. 작품 속 가이아는 관객에게 언어기반의 소통으로 구체적인 정언명령을 내리기보다는 안무-움직임이라는 비언어적 소통을 사용하여 관객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움직임이란, 일종의 표현 언어와도 같은데 이는 한국무용 안무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비언어적 소통의 에너지를 유년기부터 자연스레 익힌 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정확한 목적을 전달함으로써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신체로 하는 이야기는 은유성을 극대화하며 또 다른 확장성을 열어낸다.
김보슬의 초기 작품 <새도우 마이 새도우(SHADOW, MY SHADOW)>(2009)는 그가 움직임을 사용하여 또 다른 자아와 비언어적 소통을 실험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원에서부터 시작된 무용수의 움직임은, 흑백으로 감도는 미디어와 결합하며 혼돈-원-흐름-그리고 다시 원으로 되돌아간다. 여기서 그림자는 움직이는 무용수의 일종의 파트너처럼 보이는데, 이는 작가가 생각하는 또 다른 자아이자 흑과 백이 융합하는 동양의 태극과 흐름을 같이하는 환원의 의미를 지닌다.
동양적 사상은 그의 작품을 읽는 나침반과 같다. <마이크로 마이크로 루프(MICRO MACRO LOOP)>(2021)에서 그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미시세계를 탐구하는데, 가장 작은 것에서 거대한 우주를 발견하고, 생명의 근원을 동양의 오행과 비유하여 세계와 인간, 그리고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구의 정통적 가치관이 인간을 자연의 관리자로, 미시세계를 사용하고 연구하는 존재로 여기며 비인간을 대상화하고 있다고 했을 때 김보슬의 작품 속 미시세계는 인간과 동위적으로 세계에 포함되는, 심지어는 더욱 거대한 우주를 지닌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미시세계의 표현은 2020년작 <바이탈 사인, 마이크로-코스모스(VITAL SIGNS, MICRO-COSMOS)>에서도 볼 수 있으며, <플루이드 라이프(FLUID LIFE)>(2023) NFT 연작에서도 이어진다.
이번에 발표한 신작 <하이퍼 커넥션(HYPER CONNECTION)>(2023)[작품보기 : https://youtu.be/jVtR7Dlm87A ]은 이러한 김보슬의 작품세계의 집약이다. 서두에 언급한 <하이브리드 네이처>에서의 여정이 물의 공간에서 끝났다면, 이번 여행은 물에서 시작된다. 작가에게 물이란 일종의 치유와 정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노아의 홍수 또는 기후 위기로 인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범람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다만 성경 속 홍수가 유일신에 의해 선택된 존재들이 살아남는 수직적 재창조였다면, 김보슬의 작품 속 물은 보다 중심적이고 느리게 변화하는 생명체들의 다음 세계에 가깝다. 생성형 AI를 사용하여 제작된 작품 속 캡슐과도 같은 생명체들은, DNA 정보를 저장한 일종의 방주 속 동물들이다. 관객은 해양 속을 탐험하며 AI의 방대한 데이터로 만들어진 근미래의 생명들을 목격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중성적 신체가 인상적인데, 작가는 이번에는 여신이 아닌 중성 존재를 신으로 묘사하였다. 인간과 자연, 여성과 남성, 언어와 비언어 같은 이중 법적 구분에서 떠나, 중립적 젠더, 존재하지 않는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보슬의 작품 속 이야기는 여러 스펙트럼으로 사실은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에 대한 비언어적, 통합적, 수평적 이해가 그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더믹 위기와 함께 유행처럼 번졌던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인간-비인간(Human-non Human) 개념에서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재설정하고자 하는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었다. 작가의 시선은 이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러나 동양의 뿌리 깊은 도가사상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김보슬은 작품 속 가이아의 손짓처럼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온화하게, 그렇지만 유의미하게 우리에게 방향을 열어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디지털 도원향에서 관객이 도가적 대체 현실을 경험하고 삶 속에서 자신의 빛나는 사슴 한 마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