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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시절

아노라, 빛나라

환상이 떠난 자리에 내리는 새하얀 눈처럼

by 이소

'이 사랑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

이 카피가 과연 온당한가. 그들이 한 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녀가 기필코 붙잡으려고 했던 결혼이라는 형식은 사랑을 위해 의미 있는 것이라기보다 이전의 삶에서 빠져나와 신데렐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속물적이라고 맹렬히 비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망상이다. 그녀의 악다구니는 그녀를 꿋꿋이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함성이다. 끝까지 이반의 개망나니 짓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닌 제대로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벌은 사람의 고귀함을 그렇게 맘대로 내팽개칠 수 있는 계급이라는 것을 우린 사실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영화나 텍스트를 통해 아름다운 이야기로 돈 가진 자를 포장하는 환상세계를 생산해왔다.


시끄러운 열차가 지나쳐가는 남루한 집에 돌아가는 그녀는 성노동자로서 종사하고 있다. 남성들의 욕망은 언제나 들끓고 그녀는 회사원이 성실하게 서류정리하듯 그것을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 그러던 그녀에게 거대부호의 아들이 나타나 그의 화려한 삶에 편입시킨다. 그녀가 현혹되고 정신을 못차리는 것을, 그녀가 어두운 바에서 끄집어내줄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그 손을 덥썩 잡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돈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수많은 말도 안되는 확률의 프리티우먼 이야기들이 만에 하나라는 기대를 모든 이의 가슴속에 한조각씩 넣어두었으니.


라스베가스에서 충동적으로 한 이반과 애니의 결혼이 들통나게 되자 러시아 이반의 부모들은 분노한다. 이반의 치닥꺼리를 맡아 하는 남자들 세명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오고 부모들이 내일 러시아에서 올 것이라고 하자 이반은 도망치고 그를 찾아 떠나며 우당탕탕 벌어지는 소동극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결국 고용된 그들과 그녀는 같은 처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약자다. 단지 그들이 부자라는 이유로 그녀는 멸시와 조롱속에 이반에게조차 내쳐진다. 그런 그녀를 소중히 생각하고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었던 하수인 중 한명인 이고르는 진심어린 위안을 하고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끝난다. 그녀는 빛난다는 뜻의 아노라라는 이름을 부담스럽게 여겼을 만큼 자신조차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이름 자체로 부른 이고르를 통해 하얗게 빛난다.


기생충이든 슬픔의 삼각형이든. 계급적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과 부의 힘을 가진자들의 민낯은 자본주의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는 지금 집중할 만한 지점임은 분명하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도련님 만나 인생 역전하는 이야기 따위는 이젠 시대착오적.

개망나니 재벌집 도련님만큼 사람을 함부로 대하던 부잣집 남자 아이 두명을 본 적이 있다. 돈은 어떻게 사람을 당당하게 만들고 그들을 또 망가뜨리는가. 그들이 부럽지 않다고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던 아노라가 하얗게 빛나기를 바라는 것은 재벌보다는 그녀를 응원하는 나는 그녀의 얼굴을 더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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