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설산 북파 트레킹 01
티베트’라는 세 글자에 늘 마음이 흔들렸다.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의 저서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길 ‘을 처음 접했을 때가 기억난다. 1920년대에 10년동안 총 5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티베트 라싸에 도착했던 그녀. 수천미터의 설산을 넘고 빙하를 지나는 고된 여정을 감내하면서 그 곳까지 가야 했던 까닭이 궁금했던 나는 2009년 베이징에서 라싸까지 가는 칭장열차에 몰래 몸을 실었다.
그후 나는 티베트 바로 아래 지역인 중국 윈난성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이 무모하고 대담한 결정에는 당시의 강렬했던 경험과 인연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13년이 흐르도록 그 곳을 다시 찾을 기회는 없었다. 외국인의 접근이 힘든 지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정부에 여행 계획서를 제출하고 허가증을 받은 후 항공기를 타고 라싸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와 함께 정해진 루트를 다녀올 수는 있지만 이런 방식은 내 마음을 끌어당기지 못했다.
그렇게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던차에 육로로 티베트 땅을 밟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가지 아주 사소한 걱정이 있다면 4박5일 동안 온전히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4천-5천미터대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 매리설산 북쪽 지역이었다.
매리설산(梅里雪山, 6,740m)은 티베트인들의 8대 성산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약 10일 정도 소요되는 코라(kora, 转山)는 매리설산 전체를 한바퀴 도는 코스로 티베트인이라면 한번은 꼭 걸어야 하는 순례의 길이다. 신폭(神瀑, 신의 폭포)에서는 한겨울에도 성스러운 물을 온몸으로 맞기 위해 찾아오는 티베트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일반 트레킹 코스부터 외선 코라까지 셀 수 없이 여러 번 다녀온 매리설산이지만 ‘북파(北坡)’ 는 현지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온라인상에서 중국팀이 다녀온 정보는 발견했으나 갈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가장 아날로그적인 정통 방식, 그러니까 ‘발품’으로 찾기로 했다.
차로 이틀을 달려 풍문으로 들은 북파 출발지 ‘야공촌(亚贡村)’이라는 마을 근처까지 도달했으나 지도 앱을 아무리 두 손가락으로 넓혀봐도 차가 갈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아날로그적인 정통 방식, 지나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여기 어떻게 가나요?’ 를 수차례 시도한 끝에 간신히 길을 찾았다.
차마고도(茶马古道)의 지역 답게 차 한 대가 간신히 오를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길을 힘겹게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입산 금지 시즌인데다가 마을분들은 모두 약초를 캐러 산에 들어간 것. 다행히 마을 촌위원회를 통해 관련되는 분의 연락처는 받아올 수 있었다. 그것이 작은 성과라면 성과.
이 곳은 고도가 높고 적설량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겨울 시즌에는 마을까지 접근조차 불가능하고, 도시에서는 바람 냄새가 따뜻해지고 꽃망울이 올라오는 시기라 하더라도 산에는 눈이 많아서 위험하다고 한다. '내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일단 작전상 후퇴.
현지 상황을 계속 물으며 기다리다가 입산금지가 풀리면서 누구보다 먼저 야공촌으로 달려갔다. 이번에 함께 한 멤버는 고산 경험이 많은 '더하이커스' 님. 이곳 야공촌 해발은 3,000m, 4박5일간의 이번 트레킹 최고 고도는 5,233m이다. 촌위원회에서는 우리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파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을에 현대식 숙소는 없기 때문에 한 티베트 가정에서 하루 밤을 묶고 출발하기로 했다. 긴장한 탓에 잠이 오지 않아서 밖에 나와보니 날은 매우 추운데 달빛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성산의 봉우리들을 향해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것뿐.
트레킹 첫날, 오늘의 목적지는 주린 야영지(竹林营地, 3,550m) 약 11km를 걸어야 한다. 마을길을 걷는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짜시델레, 짜시델레 (당신의 행복과 행운을 빕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라는 뜻의 티베트어 인사)”
겨울철 야공촌 사람들은 외부와의 연결이 끊기면 집집마다 모여 함께 담소도 나누고 기도도 드리며 겨울을 난다고 한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다소 폐쇄적인 문화일듯도 싶은데 외부인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다. 이미 간밤에 한국 사람 둘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소문이 난듯싶다. 첫 방문 당시 한 아이가 우리 길을 가로막았었다. ‘이곳은 성산(圣山)을 섬기는 성스러운 마을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 고 제법 어른스럽게 으름장을 놓았는데 이제 두번째 만나니 친근한 웃음을 건넨다.
산허리를 따라 걸으며 이제 온전히 산 안으로 들어간다. 빨리 빙하와 설산을 만나고 싶어서 발걸음이 바쁘지만 설산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게다가 내리던 비는 싸라기눈으로 바뀌면서 얼굴을 때리는 데다가 시야를 계속 막고 있다. 두견화가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계곡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을 핑계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걷다 보니 움막이 나타났다.
매리설산 곳곳에는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나무 움막이 있다. 송이버섯, 동충하초, 홍경천 등의 약재를 캐고 야크를 방목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이 숙박시설.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움막일 뿐이지만 사실 나는 이후에 사용하는 외부인(트레커)를 위한 숙소보다 이 곳이 훨씬 더 좋았다. 안에서 나무를 때어 온기를 만들고 모닥불로 계속 더운 물을 공급할 수 있다. 이번 여정을 함께하는 마부 겸 셀파 스눠원디와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첫날의 정취에 젖어들었다. 챙겨온 바이주(白酒, 백주) 덕분에 한층 더 촉촉히 젖어들었다.
둘째날,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에 눈을 뜨니 스눠원디가 벌써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다. 옆에 계곡이 있으니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어서 감사했고 마부와 같은 움막을 쓰니 따뜻한 물을 나눠마실 수 있어서 감사했다. 다음날부터는 야크 똥맛(?) 물을 스스로 끓여서 먹을 수밖에 없었기에 이 날의 물 맛이 너무 그리웠다.
오늘은 야크 목장을 지나 포쥔야영지(坡均营地, 4,150m)까지 간다. 이 곳은 나이르어딩카봉(奶日顶卡峰, 6,379m), 망쾅라카봉 (芒框腊卡峰, 6,040m), 스즈쭈오쉐산 (狮子座雪山, 매리설산2봉, 6,509m)을 바로 눈 앞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봉우리 뿐 아니라 장엄한 빙하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나이르어딩카 빙천(奶日顶卡冰川)은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6대 빙천에도 선정되었던 비경을 지닌 곳이다.
제임스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리라’ 그 ‘푸른빛의 골짜기’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다. 먼저 지명을 샹그리라로 바꿔서 명칭을 선점해버린 쫑띠엔 (中甸), 그리고 탐험가 조셉락(Joseph Rock)의 글들을 근거로 따오청 야딩(稻城亚丁)을 꼽기도 하지만 샹그리라는 바로 이 곳 매리설산 북파 포쥔 지역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둘째날이 되니 걸음이 가볍다. 너무 가벼운 나머지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야영지에 도착해버렸다. 이제 이 긴긴밤 아니 긴긴낮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걱정이다. 시간이 너무 이르니 우리는 오늘 야코우(垭口, 산능선)를 넘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위험하다며 우리를 말리다가 답답했던 셀파 스눠원디는 결국 움막에 있는 다른분들까지 모셔와서 우리를 뜯어말렸다. 결국 포쥔 움막에서 하루를 묶어가기로 했고 이후 급변하는 날씨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는 그 생명의 은인들께 감사해야했다.
초록빛 평원 뒤에 장엄하게 솟은 설산을 기대했지만 눈구름에 쌓인 성산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그 장관은 오히려 숨이 막힐듯한 감동을 선사했다. 움막에서 나오면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으나 바람이 세질수록 성산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상황. 침낭 속에서 뜨거운 뜨거운 물을 담은 날진병을 끌어안고 잠시 몸을 녹이다가 밖으로 나와 성산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움막으로 들어가기를 해가 지고 달이 뜨기까지 반복했다.
이 곳에 있는 야크, 말, 양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이한 복장에 속세의 냄새까지 묻혀온 우리가 궁금했던지 가까이 다가와서 냄새를 맡으며 말을 걸기도 했다. 그렇게 친구들이 많으니 시간 보낼 걱정은 기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매리설산 북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