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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y 01. 2024

10. 24/4 독서실적 리뷰 및 프리뷰

악의 외 4권

이번 달 이사때문에 정신이 없었음에도 준수하게 읽었다.

지난 달은 이사의 달이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고, 새로운 가구를 받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새로운 방을 정리한다고 여념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독서모임 2건, 사실 최대한의 노력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1년에 책 1권이라도 읽는다는 성인이 32%인 시대에 한 달에 5권이면 꽤 선방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해본다.


 사실 지금은 책과 다시 친해지는 기간이다. 공군에서 근무하면서 도서관도 멀리에 있었고, 인근에 서점은 아예 없었다. 몸을 쓰는 일이었기에 피로도 심했고, 무엇보다 내가 다시 이 길을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꺾여 책보다는 게임을 가까이하고 살았다.


 달리기를 멈춘 러너가 다시 달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옛 페이스를 무리하게 쫓기보다 지금은 한글자 한글자 눈에 세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지금 나는 다시 인터벌부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는 이 호흡이 더 길어지리라.




1.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역작, 악의. 서평에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렇기에 여기서도 한 번 더 기회를 두고 칭찬하지는 않겠다. 사실 내가 굳이 이 자리에서 악의가 얼마나 뛰어난 소설이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든 이를 매료시킬만한 힘을 가졌는지 떠들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추리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진중하고 무겁다. 누군가 죽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그 침묵이 싫었고,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흔한 이야기들이기도 해서 어린 시절에는 읽지 않았다. 그래도 편독은 안된다고 성인이 된 후에 에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 시리즈를 좀 읽었는데 이번 악의를 계기로 현대 추리소설도 더 자주 찾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2.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임현의 단편집을 읽고 알라딘에서 사 온 책이다. 작가들의 글에 대한 인식, 사명감과 평범한 삶, 한 집안의 가장, 아들과 딸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그 길 옆을 따라 동행하는 글. 작가들의 프로의식에 대해 열변하는 글을 많지만 이 책은 아마 그보다는 이미 프로임에도 더 프로페셔널함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무난하고 재미있다. 현대 작가들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작가를 여럿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 책에 에세이가 실린 작가의 팬이라면 짧은 에세이임에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현대 작가들은 작은 커뮤니티, 혹은 SNS에서만 광고가 되고, 때로는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냐는 평이 나올 정도로 대중들에게 이목을 끌지 못하는 편이다. 작가가 아이돌처럼 하나의 팬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름이 들려야 책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까. 그 어느 정도의 간극을 찾는 것이 도서시장 부흥의 방법 중 하나가 되리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3. 90년대-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


아마존 23년 올해의 책, 그러나 국내에서는 1쇄, 2쇄. 안타깝지만 서고에 묻히기엔 그 명성이 아까운 이 책은 결국 흥행하지 못했다. 내용에 문제는 없었다. 단지 시대가 변했다, 이 정도로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의 지적이 있었다.


"24년 지금, 젊은 세대는 문화적 부흥기를 지나고 있어요. 한국의 문화가 더 이상 해외의 문화에 비해 뒤쳐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일부 부분에서는 선두를 하고 있죠. 그렇기에 한국인들은 더 이상 미국의 역사를 이렇게까지 관심 가질 이유가 없는 거예요. 불과 10년 전에 이 책이 나왔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을 겁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이제 한국인들은 미국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배우더라도 이런 책으로 역사 전체를 아우르기 보다는 필요한 내용만, 그리고 더 나아가면 과거보다는 미래를 봐야하는 시대가 왔다. 실제로 지금 도서시장을 보면 잘 팔리는 책들은 정해져 있다. 소설, 에세이, 경제 경영 분야. 경제 경영 분야 중에서도 제일 잘 팔리는 책은 미래 시장 분석, 동향 분석, 신 기술 분석과 트렌드. 독자들은 이제 미래를 보고 있다. 과거는 이제 배움의 영역이 아니다. 흥미 본위의 영역이다. 배우고 싶은 자들은 배우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미래를 본다. 그게 더 도움이 되니까. 안타깝지만 하루하루가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4.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1871-1900(모네와 마네, 졸라, 에펠, 드뷔시와 친구들)


예술역사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위에서 나온 90년대, 그러니까 일반 역사서와는 사뭇 다른 매력이다. 예술의 트렌드는 느리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 있어서 그럴까, 아니면 순수히 지식으로 향유할 수 있는 역사라 그럴까. 나는 예술사는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밖에 모르지만 예술역사서는 좋아한다. 굶어 죽기 직전까지도 예술을 추구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비장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은 언제나 아름답다.


 1871년은 파리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다. 수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나타났고, 그들이 문화의 트렌드를 바꿔버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화가들이 함께 살아 숨쉬던 시대라니, 상상만해도 낭만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시대는 생각보다 낭만적인 시대가 아니다. 누군가가 흘린 피 위에 위태롭게 세워진 파리와 그 위를 비틀거리며 시민들. 실로 격동의 시기였다.


 예술역사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은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취향만 맞으면 남은 시리즈도 전부. 나는 솔직하게 남은 시리즈까지는 읽을 시간이 없어서 좀 뒤로 미뤄보려고 한다. 언젠가 시간이 남으면 읽겠지. 일단 앞에 놓인 책부터 읽고...


5.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을 200p가량 읽고 생일선물을 사준다는 친구의 말에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운전을 하며 옆자리에 앉은 이에게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해줬다. 그러자 친구가 하는 말 "1840년도에 이런 로맨스판타지 웹소설같은 막장 드라마를 썼다고?".


 솔직히 읽어보지 않고 줄거리만 들으면 폭풍의 언덕은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솔직히 앞에 전세집 구하는 이야기는 필요없으니까 대충 빼고, 흑인 히스클리프가 백인사회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이야기, 그러다 사라졌고 돌아왔는데 완전 잘생긴 남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를 좋아했던 캐서린이 이제는 남편이 있음에도 대놓고 끼를 부리면서 히스클리프와 꽁냥꽁냥하는 이야기(솔직히 이 부분을 듣고 혀를 내두르지 않는 이를 본 적이 없었다). 200p만 요약해도 이정도다. 이렇게 말하니 충분히 막장 드라마같지 않은가?


 웃긴건 때론 이런 설명이 새로운 독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근데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까 읽고 싶어졌는데? 안 그래도 일 시작하기 전에 잠깐 독서 타임이 비었는데, 다음에는 폭풍의 언덕 읽어야겠다."


 고전 소설이라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한 번 이렇게 줄거리를 풀어서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고전 소설은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다. 그런 소설의 예시?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폭풍의 언덕, 그리고 자매품으로 오만과 편견.




 이번 달에도 좋은 책들만 엄선해서 읽은 기분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지난 달 말부터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진짜 노동', 이번에 서평단 신청을 해서 받은 책인데 생각보다 재밌다. 아마 오늘, 내일 중에는 서평이 올라올텐데 읽고 관심이 간다면 찾아 읽기를 바란다.


 이제 5월이다. 이사때문에 바빠서 지난 달은 취업전선에 못 뛰어들었다 이야기하더라도 이번 달부터는 교육도 교육대로 받고 취업전선에 다시 뛰어들어야지. 근로자의 날, 일하는 이들도 쉬는 이들도 모두 힘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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