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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문화재단 Jan 10. 2022

vol.18  원하는 바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산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 랩 


vol.18 원하는 바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산문화재단의 2021년 <창의예술교육랩 지원사업>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문화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콘텐츠 모델을 연구‧개발‧실행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작년 AI(인공지능) 기반의 과학기술과 지역문화예술인 부산농악을 접목하여 빚어내어 <AI 농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면 올해는 이를 교육 현장에 접목, 확산시킬 것입니다. 이에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하여 모였습니다. 브런치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에듀테크(edutech)를 구현하는 지난한 과정이 어떻게 나아가고 기록되는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부산문화재단은 시민 여러분의 새로운 사고를 일깨우고 행복을 제공하는 데 보탬이 되겠습니다.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동시에 수상한 토니 모리슨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유명한 한 마디입니다. 토니 모리슨은 모국인 미국 현실의 본질적인 면을 읽어내려 애쓴 선구자입니다. 주로 흑인 하층민의 삶을 다루는 그녀의 문학적 성취는, 당대 쏟아져나오는 이런저런 영미문학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빛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녀 마음에 쏙 들 만큼 현실을 관통하는 작품이 없었기에 직접 집필한 것입니다.      


  문화나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문학 영역만 놓고 봐도 그 갈래가 수만 가지로 갈라지지만, 교육자나 학습자가 바라는 형태가 준비되어 있다고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학습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교육자라면, 현재 즐비한 교육 체계에 저항심이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답은 직접 교육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보편화되지 못한 교육 모델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 보다 핍진한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요.      



  부산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 랩(이하 창의랩) 또한, 활용하고 싶지만 아직 도래하지 않은 교육 모델을 체계화하기 위해 오늘도 <AI 농악> 회의에 임합니다.     


김태희    지난 미팅 이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콘텐츠를 구축하는 한편 확산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제작해야 할 텐데요. 이론적 배경이 뒷받침되는 동시에 이 프로그램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무엇을 교육하기 위한 것인가어떻게 교육이 되는가, 이 세 가지를 놓고 연구원 선생님들과 함께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연구진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태희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을 창안하는 모델링 사고 능력을 뜻하는 월드 모델링을 얘기해볼까요. 모델링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정리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야만 코딩이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코딩은 이러한 사고 능력과 밀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코딩에 깊이 들어가면 추상화라는 말을 반드시 접하게 됩니다. 예컨대 로봇에게 ‘오른발을 든다’ 명령과 ‘왼발을 든다’ 명령을 번갈아 내리면, ‘걷는다’가 되는 것이지요. 다시 ‘걷는다’를 쪼개면 ‘오른발을 든다’, ‘왼발을 든다’의 명령으로 나뉘게 될 텐데 이처럼 각각의 기능을 조합하는 것을 추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현실 또한 추상화와 관련 있습니다. 추상화와 가상현실을 엮어서 이야기할 수도 있겠고요.      


이지훈    사실 추상화는 예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할 수 있는데요. 지금 저희 콘텐츠 과정에는 예술적인 이야기가 다소 모자라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3자가 만약 우리의 보고서를 읽는다면 농악 교육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예술 이야기도 보충하면 어떨까요?     


김태희    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이지훈    한 가지 더 보충한다면, 코딩이 기존 프레임 안에서만 논의되고 있다면 프레임 외부를 생각해보는 발상을 길러줄 순 없을까요? 사실 이것이 예술의 힘이기도 하고요. 창의성, 융합이라는 단어를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최소한 연구 과제로는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김태희    이해했습니다. 분명 보완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보고서 작성할 때 이처럼 비어있는 지점들을 놓고 각자 역할을 분담해야겠습니다. 


            프레임을 얘기하셨으니 첨언하자면, 업계도 그렇고 흔히들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요. AI와 로봇의 차이점이 바디(몸통)이라는 점입니다. AI는 보통 컴퓨터에만 들어가 있지요. 반면 로봇은 연산 작업을 하는 두뇌가 있고 그것을 실행하는 바디가 있습니다. 여기서 창의성의 기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컴퓨팅이라고 하면 그냥 계산으로 번역되는데요. 사실 이 계산이 무엇인가 따져보면 끝이 없습니다. 컴퓨터를 최초 만든 사람이 왜 컴퓨터를 만들었을까요?     


연구진    계산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김태희    네. 무언가를 계산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코딩 교육을 한다고 하면, 아무리 몇 달을 공부해도 책 범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계산하려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사실 교육입니다.      


남서아    로봇과 연관지어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태희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적을 분명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룰 오조봇을 예로 들어볼까요? 센서 두 개가 로봇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센서는 각각 하양과 검정색을 인식하고, 다시 컴퓨터에 데이터를 전송합니다. 그에 따라 이 로봇이 움직이는 겁니다. 아까 ‘걷는다’처럼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두 가지 센서의 기능이 동시에 작동할 수는 없거든요. 두 센서는 독립적인 컨트롤러 시스템이 맞물려서 ‘구른다’라는 추상화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데요. 두 가지 각각의 기능을 엮어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과정이 바로 코딩입니다. 추상화된 결과물을 만들어냄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걷는다’, ‘구른다’를 각각의 세밀한 기능으로 쪼개고, 다시 그것들이 모이면 하나의 형태가 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런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바퀴와 같이, 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그런 태도가 기능 및 커뮤니케이션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할 수 있겠습니다. 바퀴의 노선이나 구조에서 계산과 접목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 끄집어내는 것이지요. 제가 저번주에 얘기한 바 있듯, 기능은 폼으로부터 나옵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설명드렸는데 사실 예술하고 접목될 만한 접점이기도 합니다.      


남서아    프로그램 방향성이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런데 사실 저희가 이미 콘텐츠는 레벨을 구분하는 등 교안을 제법 짠 상태인데...     


김태희    아, 물론 이미 진행한 틀을 바꾸자는 뜻은 아닙니다. 의미를 부여할 때 활용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웃음)      


이지훈    조건문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과학적 사유에서 핵심적 사고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예술에서는 저 조건문을 벗어나려는 욕망이 무척 강력하거든요. ‘이러면 이럴 것이다’라는 규칙을 벗어나는 것이 예술의 욕망이지요. 물론 기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틀을 자세히 파악해야겠지요.     



  콘텐츠를 만들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지만 연구진은 예술적 의의와 기치의 중요성을 거듭 상기합니다. 그리하여 교육 모델에 그러한 의미를 끊임없이 부여하고자 합니다. 지난 1년차 <AI 농악>이 성공적이었다고 하나, 아쉬운 면이 없었던 것이 아니므로 연구진은 매번 회의 때마다 철학적 키워드를 열거하고 서로 의견을 나눔으로써 부족한 지점을 빈틈없이 메우려는 것입니다. 간단히 쉬는 시간을 가진 연구진은 본격적으로 교육 모델을 확산하고 보급할 교안을 논합니다.         

        


최윤정 연구원이 PPT로 발표한 교안 초고



최윤정    교안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그 전에 저희가 모동중에서 이 콘텐츠를 시범 삼아 한번 수업해볼 예정입니다. 대략 6회를 예상하고 있고요. 이에 맞춰서 오조봇과 햄스터 로봇에 관한 콘텐츠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안도 필요할 테고요. 그 다음 농악이라든지 진법에 따라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할 텐데요. 오늘 제가 대략적인 교안을 작성해보았습니다. 형태 잡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이론적인 부분은 오늘 이후 보충될 것이라 감안하고, 실질적인 부분만 넣어봤습니다.


            먼저 한국 농악의 역사 변천사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런 교육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알려주어도 될 듯합니다. 예술과 인공지능의 연관성도 이 지점에서 연결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아직은 구상 단계입니다.


            그리고 공연자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학년에게 어느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 일러주고요. 캐릭터를 제작하는 과정을 영상화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 앞부분인 1차시는 부산농악에 좀 더 초점을 맞춰 농악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고요. 2차시는 농악 진법을 살펴보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3차시에 들어가면 농악기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동시에 오조봇을 가지고 놀게 되고요. 4차시에 들어가면 엔트리를 활용해 부산 농악을 이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려고 합니다.     


남서아    선생님 혼자 이 많은 것을 다 진행하시는 건지요?     


최윤정    교안은 연구진 한 분만 더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웃음) 레벨이 올라가면 갈수록 인공지능 지식이 필요할 테니 힘들 듯하지만요. 연구일지를 공유할 테니 한 번 살펴봐주시고 피드백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태희    최윤정 연구원이 모의로 수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벤치마킹해야 할 듯합니다. 학생들의 성향이나 나이에 따른 수준, 이런 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아직 불투명한 느낌이 있습니다.      


정만영    부산농악에 관한 수업을 앞부분에서 다루기로 한 것이지요?     


최윤정    네. 그래서 레벨 1을 인공지능 콘텐츠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레벨 2에서는 인공지능의 원리라 할 수 있는 프로그레싱, 반복과 인지와 같은 개념이 접목되긴 합니다.      


김태희    네.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을 통해 인공지능을 배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덕희 연구원이 PPT로 발표한 교안 초고-1



김덕희    지난번 회의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AI 농악> 레벨 3에서는 피지컬 로봇을 활용합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오조봇의 라인 트레이싱으로 진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컬러코드를 적절히 사용해 오조봇이 일자진을 돌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김덕희 연구원이 PPT로 발표한 교안 초고-2


     

김덕희    그리고 햄스터 로봇을 활용하여 악기채를 획득하는 게임입니다. 처음에는 코드를 짜는 수업을 진행할까 했는데 그러면 너무 단순해서 예술적인 활동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라 판단됐습니다. 그래서 코딩보다는 놀이, 게임 위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스토리를 가미했고요. 오리 팀과 가뭄의 신 팀이 나뉘어서 악기채를 획득하는 게임입니다. 오리 팀은 가뭄의 신 팀보다 먼저 악기채를 들고와 미로를 탈출해야 합니다. 여기 보시면 경로 타일과 힌트 타일이 준비돼 있습니다. 경로는 직선과 곡선으로 이뤄져있고요. 힌트 타일은 경로 타일의 종류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타일을 활용해 최단거리를 만드는 게 관건입니다.      


정만영    학생 누군가는 가뭄의 신이라는 나쁜 역할을 맡아야 할 텐데요.     


최윤정    아이들은 신을 좋아합니다. (웃음)    

 

김덕희    가뭄의 신 팀은 오리가 최대한 멀리 돌아가게끔 방해해야 합니다. 즉 가뭄의 신이 이길 수도 있는데요. 스토리상 그래도 되는 것인지 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이지훈    굉장히 재밌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장애물은 따로 없는가요?     


김덕희    최초 장애물이 거론됐지만, 현재로는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아 삭제했습니다.    


     

김덕희 연구원이 PPT로 발표한 교안 초고-3



김태희    여기서 최단거리라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운드를 예로 들어보자면요. 인공지능이 소리를 인식할 때 각각의 차원을 구획합니다. 북 소리는 이쪽, 꽹과리 소리는 저쪽. 그래서 소리 데이터가 계속 입력될 때마다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각각 소리를 구분하는 최적의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인터넷 검색 엔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치, 검색도 거리의 문제입니다. 찾고자 하는 단어를 최단거리로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지요. 그러한 알고리즘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실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할 텐데요. 예산을 살펴보고 진행해봅시다.     


남서아    네. 필요한 재료가 있다면 지금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만드는 키트는 교안에도 명시되었으면 합니다.      


김태희    그리고 올해도 작년처럼 강정훈 작가를 연구보조원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현재 연구원만으로는 일손이 모자라, 작년 <AI 농악>에서 활약했던 강정훈 작가가 수혈되었습니다. 강정훈 작가의 인터뷰는 위에 링크한 브런치 글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자, 이제는 <AI 농악> 레벨 1부터 4까지 필요한 교육 키트를 차근차근 만들어볼 차례입니다. 각각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가 어떻게 구현될지 다음 브런치도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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