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아파트

색깔 있는 집

by 세리

학교 차창 밖으로 커다란 나무의 초록잎이 햇살에 더욱 반짝였다. 7월 초입이었지만 벌써 더위의 활약은 강렬했다. 더위는 부드러운 듯 분명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봄부터 시작됐던 펜더믹은 더위와는 비할 수 없는 사나운 기세를 곳곳에서 드냈다.


코로나는 민주네 학교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고,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었지만 친구들은 6학년 언니와 3학년 동생 한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격리되어 있다고 말했다. 어제 밤늦게 민지네 아파트에 엠뷸런스가 다녀갔다고도 했다. 소문은 조그마한 아이들의 입을 타고 더위처럼 서서히 퍼져나갔고, 정체모를 불안감과 공포심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민주는 매일 학교를 가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집 안에 꼼짝없이 앉아서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 점점 지겨워졌다. 그래도 올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은 학교에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은 늘 어렵고 부담스러웠지만 다행히 민주는 4학년이 되면서 자신과 맞는 친구를 찾는 안목이 생겼고,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는 용기도 한 움큼 싹텄다.


그렇게 용기를 던져서 친해진 친구가 바로 은유였다. 민주는 은유를 처음 봤을 때 존재감이 없는 조용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줌 수업에서 소그룹 모임을 할 때 자기의 생각을 단호히 말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 함께 <푸른 사자 와니니>를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이나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시간이었는데, 주인공인 와니니가 용기를 낸 것은 친구들 덕분이었는데 와니니 혼자 돋보이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민주도 그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은유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 뒤로 민주는 은유와 친해지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다행히 은유도 민주를 좋아해서 둘은 금세 단짝이 됐다.


민주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학교를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은유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민주가 다니는 청솔 초등학교는 세 개의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만 다니고 있었다. 신설된 지 이제 겨우 5년이 되어가는 초등학교였다. 민주는 은유와 친해지면서 같은 아파트에 살기를 바랐지만 아쉽게도 둘은 서로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래 봤자 길 건너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음에도 이상하게도 주위 친구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무리가 지어지곤 했다.


"앗, 깜짝이야!"

갑자기 은유가 소리를 질렀다. 민주는 은유가 쳐다보고 눈이 동그래진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한 동에서 허공에 사람이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앉아 있었다.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자신의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처럼 간질거렸다.


"어머, 저 사람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지금 저기에 앉아 있는 거 맞지?"

"어어.. 나는 처음에 사람인지 모르고 깜짝 놀랐어. 저분 너네 아파트 색깔 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번에 우리 아파트도 색깔 다 바꿨잖아. 너네도 색칠 다시 하나보다"

그러고 보니 민주는 오늘 아침밥을 먹으면서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으로 안내했던 것이 생각났다. 오늘부터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이 있을 거라고 했다.


은유네 아파트도 원래는 주홍빛이 도는 아파트였는데 몇 달 전에 색을 다시 칠해서 회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옆에 민지네 아파트도 훨씬 전에는 노란빛이 도는 색이었는데 은유네보다 조금 더 진한 회색으로 진작에 바뀌어 있었다. 이제 민주네 아파트 차례가 된 모양이었다. 민주는 가만히 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아저씨를 다시 올려다봤다.


"우리 아파트는 무슨 색깔로 바뀌려나?"

"보나 마나 너네도 회색으로 바뀔걸!!" 은유가 무심한 듯 내뱉었다.

지금 민주네 아파트는 하늘색과 보라색으로 켜켜이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서 차를 타고 집으로 올 때도 민주네 아파트는 다른 회색지대 아파트들 사이에서 또렷하게 두드러졌다. 거기에 '사랑으로'라고 적힌 아파트 이름은 엄마는 촌스럽다고 했지만 민주는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대체 왜 다들 아파트 색을 회색으로 칠하는 거야? 난 알록달록했을 때가 더 예뻤던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뭐라더라, 우리 엄마 말로는 비싼 아파트 색깔을 너도나도 다 따라서 칠하는 거라던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 하나 잘되면 우르르 다 좇아서 똑같이 한다나..."


비싼 아파트라. 민주도 가끔 저녁을 먹을 때 엄마와 아빠가 아파트가 올랐느니 내렸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 말로는 이 동네에서 우리 아파트만 가격이 안 오르고 다 엄청 올랐다고 속상하다고 했다. 민주는 좀처럼 엄마와 아빠가 하는 대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민주가 보기에는 은유가 사는 집이나 그 옆에 민지가 사는 아파트나 다 똑같아 보이는데 왜 어디는 더 비싸고 또 어디는 싸다고 하는 것인지.


"은유야, 너는 나중에 어디에서 살고 싶어?"


"음.. 글쎄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네. 민주 너는 살고 싶은 데가 있어? 마당 있는 집?"


"아, 마당 있는 집도 좋지! 근데 난 그냥 색깔 있는 집에 살고 싶어. 나만의 색깔이 있는 집 말이야.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서 예쁘게 칠하고 싶어."


"좋다!! 그럼 네가 살 집은 절대 회색은 아니겠네? 나도 꼭 초대해줘. 히히히"


"당연하지!!"


둘은 회색지대 아파트 사이를 지나서 함께 걸어갔다.


딸이 그린 그림



덧) 11살 딸아이는 마음이 울적해지면 홀로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 엄마인 제가 스토리를 덧붙여 동화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어설프기 그지없을 동화겠지만 아이가 그린 그림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만들어주고 싶어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아이가 그려줄 그림에 엄마의 상상력을 열심히 보태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