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가 되고 싶은 소녀

by 세리


“엄마! 저기 저거 인어 맞지?”


제주도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온 7살 민주가 처음 인어를 본 순간이었다.


“민주야, 너무 가까이는 가지 마. 맞아. 저게 바로 인어야. 우리 민주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인어 말이야. 인어공주 책에서 봤던 거 기억나지?”


“우와, 예쁘다... 엄마, 나도…. 인어가 되고 싶어”


민주는 한참 동안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수영하는 인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으로 민주에게 간절히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이곳은 바다와 뭍 세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과 인어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바닷가는 점점 인어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평화로운 곳이 아니었다. 바다 온도는 점점 상승하고 있었고, 깊은 바닷속에 사는 인어들마저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협조가 절실했다.


욕심이 많고 변덕이 심한 인간과 균형점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아주 오래전에 바다를 통치하는 왕과 육지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평화협정을 맺어서 두 세계는 구체적인 조약을 체결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조약들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바다를 이용하여 수산자원을 최대한 많이 얻고 싶은 인간들과 그것을 지키려는 인어들 사이에 적절한 균형선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에는 서로가 자유롭게 그 세계를 왕래하며 필요한 것들을 직접 거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물론 인어의 지느러미는 육지로 나가면 오래 있지 않아서 굳어버리는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각각의 바닷가 근처에는 인어와 인간의 교류를 도와주는 교환소가 하나씩 설치됐다. 그 교환소에는 인어 세계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과 인간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형물이 전시되어 있었고, 모형물로 만들어 전시할 수 없는 것은 사진을 찍어 화보집으로 들어 보여줬다.

물론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사진을 보고 주문할 수 있었다. 온라인이 어려운 인어들을 위해 준비된 시장 같은 곳이었다.


교환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사람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인어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양쪽 세계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인어 공주 이야기>를 듣고 자란 민주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바닷가에만 가면 물고기를 보듯 쉽게 인어를 볼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다는 것이 기뻤다. 엄마가 들려주는 <인어 공주>는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그런 전설을 갖고 있는 인어들이 인간들을 도와주며 평화롭게 살기로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인어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에 다시금 슬프기도 했다.


어릴 적 인어를 처음 봐온 순간부터 민주는 늘 인어만을 생각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좀처럼 친해지기 힘들었다. 자신의 꿈을 고백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저 인어들이 나오는 책과 다큐멘터리들이 친구가 돼 줄 뿐이었다. 늘 그 세계를 동경했다.


민주는 인어를 처음 보고 온 그날부터 엄마를 졸라서 수영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동안 끈기 있게 뭔가를 배우는 것을 이어가지 못했던 민주가 그리도 오랫동안 수영을 배울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7살에 시작한 수영을 18살이 된 민주는 여전히 가장 좋아했다. 이제는 땅에서 걷는 것보다 물속에서 수영할 때 더 자유로움을 느꼈다. 공부보다 수영을 더 좋아하는 민주를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수영 선수의 꿈을 키워보곤 하셨지만 민주가 하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 바로 바닷가에 있는 교환소 직원이었다. 주는 어릴 적 바다에서 봤던 그 인어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감에도 더욱 간절히 소원하는 꿈은 오직 하나, 인어가 되는 것뿐이었다. 어가 될 수 없다면 인어들과 가까이 살 수 있는 교환소 직원이 되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교환소 직원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수영 실력은 필수였다. 교환소를 이용하는 인어들은 뭍 근처로 나와서 직원들이 굳이 바다 안으로 들어갈 일은 없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모집 조건에 ‘수영 실력’은 필수였다. 사실 교환소 직원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은 아니었다. 직업 특성상 도시가 아닌 바닷가 근처의 변두리에 살아야 했고, 교환소는 3교대 근무로 24시간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낮과 밤이 바뀌는 근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보통은 바닷가 근처 어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하곤 했다. 그러나 민주는 어릴 때부터 줄곧 교환소에서 일하는 꿈을 꾸었다.

부모님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민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살에 교환소 직원에 선발되어 제주도로 내려왔다. 굳이 제주도까지 멀리 온 것은 자신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제주도에 있는 교환소가 가장 크고, 그 근처 바닷가에 인어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교환소 직원 기숙사는 기대만큼 훌륭하지 않았지만 민주는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녀는 교환소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그저 꿈속을 거니는 것만큼 행복했다. 민주는 제주도에서 많은 인어들을 만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교환소 직원은 인어들의 언어도 필수로 배워야 했다. 오래전에는 인어들과 인간들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지만 민주는 그 또한 어릴 때부터 틈틈이 배워와서 인어 언어 자격증 1급을 미리 따두기도 했다.

민주는 근무 시간에는 사람들과 인어들의 주문을 받아서 각 업체에 전달하고 재고량을 확인한 후 택배 업체에 발송하는 업무를 했다.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손쉽게 인어 세계에 있는 물건들을 주문했다. 그러나 인어 세계에서는 아직 인터넷 망이 깔리지 않아서 매일 주문을 모아서 뭍으로 나오는 인어들이 있었다. 그리고 교환소로 택배가 온 인간들의 물건들을 배달해주는 인어 배달부들도 꽤 많았다. 매일 하루에 세 번씩 택배는 끊임없이 쏟아졌고, 인어 배달부들은 쉴 새 없이 물건들을 바다로 날라야 했다. 결국 인어 세계에서도 택배 업체가 만들어졌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배달 시스템이 갖춰졌다. 인어들은 점점 인간이 만든 물건들을 좋아했고, 그 물건을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편리함에 반해서 더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싶어 했다.

민주는 근무 시간이 끝나면 인어들과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자라온 곳에서 멀리 떠나온 민주는 사람 친구를 사귀려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제 사람보다 인어들과 더 친밀해졌기 때문이다. 인어들은 수영을 잘하고 그들에게 친절한 민주를 무척 좋아했다. 사람들은 굳이 인어들과 깊이 친해지려고 하지 않으려는 듯 적정 선을 유지하곤 했는데, 인어들로서는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민주는 다른 교환소 직원들과 다르게 자신들에게 늘 호감을 보였고, 그들이 사는 세계와 인어들의 세상을 궁금해했다.

그날 민주는 인어들과 자신이 갈 수 있는 한 최대한 깊은 바닷속까지 수영을 하고 온 날이었다. 인어들과 함께 수영을 하면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잊곤 해서 몇 번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다. 호흡이 딸려서 거의 혼수상태까지 가려는 것을 인어들이 도와서 간신히 뭍으로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는 인어들과 바닷속에서 함께 수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민주는 인어들이 사는 바닷속 마을에도 가보고 싶었다. 그 간절함은 점점 더 심해졌다.


“민주야, 우리가 사는 더 깊은 바닷속까지 가보고 싶어?”

민주가 처음으로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로 사귄 인어였다.


“ 응!! 너무 가보고 싶어. 근데 나, 갈 수 있어?”


아, 물론 가볼 수 있는데… 네가 혼자 수영해서 가기는 쉽지 않을 거야. 민주 네가 수영을 잘하긴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데는 너무 오래 걸리니깐.. 네가 인어가 된다면 가능할 텐데.."


"인어가 될 수 있어? 나는 오래전부터 인어가 되고 싶었어. 그것만을 꿈꿔왔는걸.. 방법이 있다면 알려줘.."


"음.. 이건 진짜 큰 비밀인데.. 아주 오래전에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인어가 있었어. 너희 인간 세계에는 그런 동화가 있다고 하던데 그건 우리에게 전설로 존재하는 실제 이야기야. 그 뒤로 우리 조상들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인어가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어. 물론 그 반대의 방법도 말이지.. 네가 진짜 간절히 원한다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야."


"나 정말 간절히 원해... 나의 간절함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나 봐.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길 원했어. 그런 용기도 충분히 있어. 나를 데려가 줘... 부탁이야..."



딸이 그린 그림

덧) 민주의 꿈을 응원하며 딸아이와 글을 지어봤습니다. 누가봐도 불가능한 꿈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열정을 갖고 사는 것은 참 근사한 삶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만의 꿈을 꾸고 멋지게 나아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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