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왜 우리는 다시 '숲'을 심어야 하는가

by KWMG 김영락

다층구조 생태정원학: 원리와 실제 (Multilayer Ecological Gardening & Arboriculture: Principles and Practice)

부제: 생태계 설계, 수목 치료, 그리고 지속가능한 시스템 공학


0.1. 위기의 시대, 왜 우리는 다시 '숲'을 심어야 하는가


1. 녹색 사막(Green Desert)의 환상


흙과 나무에 오래도록 손을 담가온 사람으로서, 저는 이 완벽하게 재단된 풍경 앞에서 종종 걸음을 멈춥니다.


너무나 가지런히 정돈되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허전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완벽하게 놓여 있는데, 왜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생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완벽한 관리'를 대신 채워 넣은 것은 아닐까요.


흙의 숨결 대신 잘린 풀의 비린내가, 벌의 날갯짓 대신 기계의 소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이 풍경은, 어쩌면 스스로는 숨 쉴 수 없는 거대한 유리병 속의 꽃꽂이와 닮아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장치에 의존해 겨우 그 '녹색'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시는 그 어느 때보다 푸릅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재단된 듯 정돈된 잔디가 깔려 있고, 가로수는 오차 없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는 철쭉이 붉은 벽을 이루고, 신도시 공원에는 이름 모를 수입 수종들이 화려하게 이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경일을 하는 나에게는 이 완벽한 풍경에 기이한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벌은 사라졌고, 나비는 드뭅니다. 새들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이곳은 숲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녹색으로 도색된 사막에 가깝습니다.


흙과 나무를 만지며 깨달은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소비하는 현대의 조경은 사실 거대한 '생명 유지 장치(Life Support System)'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화학 비료라는 링거를 꽂지 않으면 굶어 죽는 땅.

살충제라는 항생제를 주기적으로 투여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나무.

그리고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화석 연료와 인간의 노동력.


이것은 살아있는 생태계가 아닙니다. 외부 에너지를 끊임없이 쏟아부어야만 간신히 현상 유지가 되는 '고투입 저효율(High-Input, Low-Efficiency)'의 인공 구조물일 뿐입니다.


미국의 농부이자 생태학자 마크 셰퍼드(Mark Shepard)는 그의 저서 《회복 농업(Restoration Agriculture)》에서 이를 두고 "자연의 천이(遷移 Succession)를 거스르는 소모적인 전쟁"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우리는 숲이 되려는 땅의 본능을 억누르고, 억지로 파헤쳐 단일 경작지나 잔디밭으로 묶어두기 위해 자연과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우리는 명백히 패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녹색의 환상을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겉보기에만 화려한 '전시용 정원'이 아닌, 스스로 숨 쉬고 순환하는 진짜 생명의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2. 기후 위기, '통제(Control)'의 종말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발 딛고 선 환경이 급변했다는 점입니다.


2023년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6.8도를 기록했고(강릉, 경주, 대구는 39도 이상 기록됨), 2024년 봄 제주도에는 하루 만에 3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겨울은 짧아졌고, 봄과 가을의 경계는 무너졌습니다. 전례 없는 폭염, 예측 불가능한 국지성 호우, 그리고 겨울철의 이상 고온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통제 중심(Control-based)' 관리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병해충이 발생하면 더 강력한 농약을 살포했고, 가뭄이 오면 관수 시설을 증설했습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의 시대에 이러한 '증상 완화(Symptomatic Treatment)'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약해진 나무는 더 쉽게 병들고, 메말라버린 토양은 빗물을 머금지 못해 도시 홍수를 유발하며, 균형이 무너진 생태계는 해충의 천국이 됩니다. 우리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더 참담한 결과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증언은 더욱 처절합니다. 수십 년 된 소나무가 이유 없이 고사하고, 정원수들이 한여름 폭염에 집단으로 말라죽으며, 겨울잠을 자야 할 해충들이 깨어나 활개를 칩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기술로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지금의 위기를 자초했음을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상 유지를 위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넘어선 회복(Restoration)입니다.


이미 망가진 토양을 되살리고, 대기 중의 탄소를 땅속에 격리하며(Carbon Sequestration), 붕괴된 생물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복원하는 재생적(Regenerative) 접근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3. 지속 가능성을 넘어 '회복'으로


지금부터의 글들은 한국의 척박한 조경 현실과 산림 환경에 대한 생태적 처방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방은 좁은 의미의 나무 치료나 방제 기술이 아닙니다.


나무 한 그루를 고치는 것을 넘어, 그 나무가 뿌리 내린 토양을 살리는 일이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해도 스스로 작동하는 생태 엔진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 비료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비옥해지는 땅.
* 농약을 치지 않아도 천적과 익충이 균형을 이루어 해충을 억제하는 정원.
* 별도의 관수 없이도 빗물을 스펀지처럼 머금어 가뭄을 견디는 토양.
*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풍요로운 먹거리까지 제공하는 공간.


이것은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은 태곳적부터 이미 그렇게 작동해 왔습니다.


숲은 쟁기질하지 않아도 해마다 흙을 더 깊고 검게 만듭니다. 《식용 숲 정원(Edible Forest Gardens)》의 저자 데이브 잭(Dave Jacke)이 주창한 *생태적 비전(Ecological Vision)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단순한 관리자(Manager)에서 생태계를 조율하는 설계자(Designer)'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노동(Labor)을 협력(Cooperation)으로,
투입(Input)을 순환(Cycle)으로,
단순 방제(Pest Control)를 생태계 균형(Ecological Balance)으로 전환하십시오.


4. 한국형 생태정원(Korean Ecological Garden)의 표준을 향하여


고백컨대, 저 역시 처음에는 서구의 이론을 맹신했습니다.


퍼머컬처(Permaculture)의 원칙들, 데이브 잭의 다층 구조 설계, 마크 셰퍼드의 회복 농업은 훌륭했지만, 한국의 땅에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서양의 너도밤나무는 한국의 습한 여름을 견디지 못했고, 교과서적인 길드(Guild) 조합은 우리 기후에서 오작동했습니다.


조경 현장에서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에게는 한국형 모델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국제적으로 검증된 생태학적 원리에, 한국의 사계절, 화강암 기반의 토양 특성, 자생 식물의 생리, 그리고 현재의 기후 위기 상황을 결합하여 완성한 실전 가이드입니다.


이것은 척박한 땅을 비옥한 먹거리숲(Food Forest)으로 바꾸고, 기후 재난에 맞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갖춘 공간을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숲을 심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나무를 식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무너진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생태적 자산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작은 정원에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서 시작하는 1평짜리 생태계. 그 위대한 회복의 여정에 앞으로의 내용들이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