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당신의 마음

비밀; 사랑할 때 감추고 있는 속마음

by 박철우

좁은 당신의 마음


어려서 나는 문틈에 손을 자주 다치는 아이였다. 덕분에 검지 손톱 위에는 항상 하얀 줄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고, 연필을 쥘 때마다 그 한 줄이 무척 아팠다.


여느 아이들처럼 성격이 급하지 않았고, 주의가 산만하지도 않았다. 가족모임을 지겨워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른들로부터 침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것 말고는 특별히 기억나는 칭찬이 없을 정도로 침착함은 어려서 나의 유일한 기질이었다. 그럼에도 내 손톱은 문틈에 자주 끼어 망가졌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뒷모습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주 조그만 나였을 때, 딱지치기 보다 공기놀이를 더 잘했고, 허공에 총을 쏘는 시간보다 인형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연년생 누나들 틈에서 자란 사내아이의 은밀한 사생활이었다.
엄마로부터 막내 동생을 놀아주라는 임무를 부여 받은 누나들은, 바비인형과 그 친구들의 화장품과 그 친구들의 아담한 집까지 거실로 가지고 나와 어지럽혔다.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거실은 당시 사내아이에게 당혹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공간이었다. 인형의 머리를 빗는 손길은 섬세하지 못했고, 자주 팔을 빠트리기도 했다.


그땐 나만 어렸던 게 아니라 누나들도 어렸으리라. 그녀들의 인내심도 딱 그만큼이었다. 인형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싫증을 느끼면 주섬주섬 정리해서 자기들 방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면 나는 또 심심해서 누나들 뒤를 졸래졸래 쫓아가는데, 뒤따르는 나를 보지 못한 누나가 방문을 세게 닫으면 나는 그 좁은 틈에 손을 끼어 다쳤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손톱 위로 새긴 하얀 줄은 외로움의 증표였던 것이다. 연필을 세게 쥘 때마다 아팠던 건 손톱이 아니라 허한 마음이었을 거고.

세게 닫힌 방문은 커서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쾅 소리가 일으키는 대기의 파장이 실려 실려 내게 전해지면 나는 ‘헙’하고 소리를 낸다. 바퀴벌레 사살에도 능하고, 우글우글 모여 있는 비둘기 떼를 보고서도 겁을 내지 않지만, 유독 좁은 것과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하는 것들을 어려워한다. 예를 들면 축구를 어려워하는데, 그 이유가 어려서부터 갑자기 날라든 공에 이곳저곳 안 맞아본 데가 없어서 그렇다.
수비를 하려고 공을 가진 선수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는 때, 발길질 하는 타이밍에 맞춰 몸을 돌려야 얼굴이나 복부를 강타 당할 일이 없는데, 나는 항상 그 좁은 간격을 놓치고 얼굴로 수비하는 일이 잦았다.


나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지키는 일에 능하다. 그렇다고 지키기만 하면 영 재미가 없질 않은가. 그래서 운동을 한다면 농구를 택했다. 공격수와 수비수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모두에게 공평했고, 지켜야 할 때가 오면 온 몸을 웅크리고 지킬 수 있어 좋았다. 공을 손에 꽉 쥐고 있으면 상실감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곤 했다. 당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 놀이터만 나가면 너나 할 것 없이 박지성과 김남일 선수를 따라 하느라 정신없었지만, 그 시간에도 나는 축구공 대신 농구공을 튕기며 오후시간을 보냈다.

좁은 것과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하는 것, 이 둘의 속성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도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한 사람의 마음 앞에는 타인이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문을 따라서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가기도, 빠져나오기도 한다. 사람과 잘 지내지 않는 사람조차도 문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단지 마음의 주인이 그 문을 얼마만큼 열어 놓았는지에 따라 관계의 농밀함이 결정된다.


당신이 그 문을 활짝 열어주지 않는다면, 급작스럽게 닫힌 문틈에 손이 끼어 나는 자주 다치게 될 것이다. 통증은 오래 지속될 것이며, 후유증이 남아 활짝 열린 문을 보고도 더 이상 다가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 문은 불시에 순간적인 힘이 폭발해 나를 다치게 할지도 모르니까.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오해를 사는 만큼, 나도 누군가를 자주 오해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문 앞에 서 있는다. 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할 때, 활짝 열린 문 앞에 서 당신을 안심시킨다. 이 문은 그리 쉽게 닫히지 않을 거라고. 이길 수 없는 어떤 바람의 힘에 의해 닫히게 되더라도 당신이 통과해 들어오는 때까지 힘으로 버티겠다고. 그러니 안심하고 다가오라고. 이 문을 통과한 당신의 마음이 나의 진심에 와 닿을 때까지 나는 그곳에 서 있으리라.
우리는 달갑지 않은 방문객을 반기러 현관 앞까지 마중 나가지 않는다.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거기 내가 있어 당신이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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