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란 내려놓음을 배우는 과정

내려놓았다 생각하면 또 내려놓을 게 있다

by 일본사는 투칸

육아인으로 살아온 지난 3년간 배운 것은 많지만, 그중 가장 뼈저리게 배운 것은 ‘내려놓음’이었다.




또BTI라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으나, 현대인의 사주팔자라는 MBTI를 들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의 MBTI는 INTJ로, 이른바 통제형 타입이다.


사실 통제형 인간이라고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실천하는 유형이라 생각되기 마련인데, 의외로 나는 무계획을 사랑한다. 여행 갈 때도 그냥 큼직한 그림, 꼭 가고픈 곳 한두 군데만 정해놓고 되는대로 움직이는 스타일이고, 학창 시절에도 스터디 플래너를 쓰고 실천하는 걸 힘들어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나 자신이 통제형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육아를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통제형 인간이었다.


나는 내가 무계획과 즉흥성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무계획과 즉흥성은 내가 예측가능한 범위 안에서 벌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즉, 나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플랜 A부터 플랜 Z까지 머릿속에 그려두고 있었고, 내가 미리 설정한 플랜 A에서 플랜 Z를 벗어난 영역에서 벌어지는 즉흥적인 사건은 즐거움이 아니라 극심한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플랜을 세워도 모두 빗나가버리는 예측 불가의 연속인 작업이 바로 육아다.


내 새끼는 절대 내 맘대로 안된다는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이때쯤 먹어주면 좋겠다, 이때쯤 잠을 자주면 좋겠다, 하는 플랜은 그저 나의 희망사항일 뿐, 결국에 최고 의사결정 담당자는 내가 아니라 아기님이다. 나는 그 의사결정에 따라야만 하는 을도 병도 정도 아닌 무나 기 정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의 욕심을 내려놓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아직도 완전 내려놓지 못해 매일 인내하며 수행 중인 상태이다)




문제는 오로지 내 아이에 대한 것을 내려놓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집안꼴이 개판인데 청소를 할 수가 없을 때, 빨래를 좀 더 깔끔하고 예쁘게 개고 싶지만 소파와 침대 위에 쌓여만 갈 때, 좀 더 잘 챙겨 먹고 싶지만 밀키트와 인스턴트로 연명해야 할 때, 흐린 눈으로 지나쳐야만 하는 것들이 도무지 흐려지지 않을 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그러나 부모의 몸은 하나이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엔 한계가 있다. 너무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하면 몸도 마음도 견디지 못한다. 꼭 육아도 가사도 일도 100점인 슈퍼 엄마여야만 하나? 70점도 그냥저냥 훌륭하다. 말이야 쉽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만 1년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곧 육아경력 만 3년을 맞이하는 지금, 본격적으로 훈육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여 또 다른 내려놓음의 경지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이 필요한 시기가 오면 다른 경지의 내려놓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육아란 정말이지 끝없는 내려놓기의 굴레임을, 그래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임을 매일같이 배우고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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