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입가에 쓴웃음이 번진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에 얽힌 이야기다. 장난기 넘치고 제법 반항기마저 다분했던 친구는 부모님께 자주 매를 맞았다. 그런데 곱게 맞지 않았다. 몇 대 맞으면 집 밖으로 도망쳤다. ‘이리 오지 못해’라는 부모님의 외침에 친구가 뒤돌아서서 더 큰 소리로 질러댄 말이 있었다.
“풀만 먹여서 키워놓고 왜 때려~”
친구의 돌발행동 뒤 끝에 나온 그 '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부터 인간과 그 ‘풀’에 담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친구의 엉뚱한 항변 속에 담긴 그 말은, 인간이 얼마나 ‘풀’이라는 존재를 하찮게 여겼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저 '풀'이라 부르며 무심히 지나쳐온 것들 뒤편에는, 인간의 아우성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자신을 준비해 온 깊은 침묵의 시간이 있다.
어둠이 덮었다. 이 적막이 언제 걷힐지 모른다. 땅속에서 그는 아주 작은 점으로 존재한다. 사방은 단단한 벽으로 막혀 있다. 그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려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움츠린 몸을 풀고 무거운 어둠을 스스로 밀어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의 본능을 넘어, 그 안에 설계된 거대한 우주를 세상 밖으로 내놓겠다는 열망이다.
그렇게 그는 가장 깊은 침묵 속에 숨어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숨을 고르고, 몸을 다독이는 일이 속에서 쉼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씨앗’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세한 진동과 함께 시원한 습기가 감쌌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내려온 온기가 흙의 입자를 타고 껍질을 덮는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이제 나가도 되겠구나. 나의 시대가 왔다.”
씨앗은 비좁은 껍질을 찢고 ‘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다. 어둠이라는 고독을 견뎌낸 존재가 지구 에너지의 모체인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숭고한 과정이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기능이 작동하면서 씨앗이 품고 있던 첫 번째 철학이 시작되었다.
“땅의 생명은 결실을 위하여 위로, 지탱하기 위해서 아래로 자란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싹은 시간이 흐르며 마침내 인간에게 유용한 여러 가지 먹거리로 변신한다. 배추는 겹겹의 잎을 포개며 몸을 키우고, 고추는 햇볕의 기운을 받아 붉은 열매를 맺는다. 시금치는 손바닥처럼 부드러운 초록을 펼쳤다. 어떤 것은 달콤하고 어떤 건 매콤하며 쌉싸름한 맛을 지닌다. 모양도 맛도 서로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길을 걸어간다. 어둠 속 씨앗에서 시작해 빛을 받고 자라 결국 식탁까지.
사람들은 그들을 묶어 ‘채소’라 부른다. 식탁에 조용히 놓여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채소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흙과 계절이 빚어낸 이야기이며,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 살아온 역사다.
어떤 채소는 우리 밭에서 함께 살아왔고, 어떤 채소는 먼 나라에서 건너와 식탁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름에도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했는지, 인간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더구나 속담에서, 또는 의미와 재미가 있는 옛이야기 속에서도 슬며시 이름을 올린다.
그래서 나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흙 속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혹시 채소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채소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어떤 채소는 아이들의 미움을 사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묵묵히 자라 기어이 우리 곁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모습에서 또 하나의 장면을 떠올렸다. 식탁 위에 놓인 채소들. 그들은 자신의 맛으로도 이야기를 건넨다. 단맛으로 위로를 주고, 쓴맛은 인생의 깊이가 되며, 매운맛은 삶의 열정이 된다. 그 순간 깨달았다. 채소는 식탁 위의 철학자들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옛 친구의 생각을 바꿀 의견을 전할 수 있다. 친구가 먹은 건 지긋지긋한 ‘풀’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깊은 생각을 품고 있는 철학자였다고 말이다.
지금부터 이어질 글 ‘채소는 생각이 깊다’는 호기심 많은 작가의 시선으로 채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이다. 흙 속 씨앗에서 시작해 싹틈과 성장, 그리고 마침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와 함께한 기억을 나누려 한다.
아마도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밥상 위의 채소가 더 이상 평범한 반찬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둠을 견디고 올라온 철학자로, 그리고 그가 조용히 건네는 말이 들릴지도 모른다.
“채소는 흙 속에서 오래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그 생각을 펼치려고 우리의 식탁 위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