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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퀴어의 서로 다른 표정

영화 〈너에게 가는 길〉 리뷰

by rewr


퀴어 혹은 LGBT는 성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이름에 그치는 건 아니다. 이름은 대상을 향한 우리의 관점과 태도, 정치적 지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퀴어는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며 언제나 재형성 중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용어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영어 앞 글자를 딴 LGBT는 그 순서를 어떻게 나열할지(LGBT인지 GLBT인지), 뒤에 Q(Queer, 퀴어), A(Asexual, 무성애자), I(Intersex, 간성)를 붙일지 말지에 관한 첨예한 논쟁이 뒤따르는 용어다.


퀴어, LGBT 등의 용어를 둘러싼 논쟁에는 성소수자로 통칭되는 존재들의 차이를 주목하게 한다. 성소수자는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등으로 차별받는 존재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기에 모든 개별 성소수자의 경험과 맥락,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인터섹스의 경험과 레즈비언의 경험은 다르며, 같은 인터섹스와 레즈비언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계급, 국적, 인종, 성격 등에 따라 다른 경험의 궤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비와 비비안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나비와 비비안,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한결과 예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나비는 34년 차 소방공무원이자 FTM 트랜스젠더 한결의 엄마다. 비비안은 27년 차 항공 승무원이자 게이인 예준의 엄마다. 나비와 비비안은 자녀의 커밍아웃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녀와 관계 맺는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켜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의 고통‧슬픔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치적 에너지로 변환시켰다. 이들은 한결‧예준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품으면서 엄마와 자녀의 관계를 협소한 가족주의를 넘어 더 넓은 사회적 관계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자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소수자를 위한 사회적‧정치적 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예준과 그의 애인


그러나 내 마음이 더 쓰인 건 트랜스젠더인 한결과 게이인 예준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차이였다. 영화가 재현하는 서사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예준의 삶은 한결의 삶보다 낫다. 예준의 집은 형편이 넉넉한 편이라 그를 성소수자 친화적인 캐나다로 유학 보낼 수 있었다. 예준은 서로 사랑하는 애인도 있고, 양가 부모님으로부터도 응원‧지지‧승인을 받는다. 요컨대, 예준의 서사는 ‘다른 건 파트너의 성별뿐 모든 것이 이성애자와 같다’는 식으로 재현된다. “쿨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비비안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예준의 주위에는 ‘세련된 태도’로 예준과 그의 파트너를 대해 주는 사람이 있다. 비비안이 기자회견에서 눈물 흘리며 말하는 것처럼, 예준이 결여한 건 그가 파트너와 맺는 관계에 대한 법적인 지위뿐이다.


반면 트랜스젠더인 한결이 마주한 세상은 조금 더 차갑고 험하다. 가슴 제거 수술을 비롯한 외과수술을 했음에도 남성의 성기 외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별 정정 신청이 거부될 때, 성별 정정을 위해 나비와 이혼한 후 남남처럼 지내 아버지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남자에게 부모 동의서를 부탁해야 할 때, 우울증 약을 먹는 한결을 보며 정말 죽고 싶거든 자살하지 말고 존엄사를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나비의 인터뷰를 볼 때 우리는 깊은 슬픔과 분노, 좌절을 느끼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한결이 성별 정정을 완료하고 ‘온전한 남자’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지를 질문한다. 한결이 행복해지려면, 예준과 달리 법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한결의 상처가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는 점이다.


나비와 한결


내내 해맑은 영화 속 예준의 얼굴과 불안‧우울이 깃든 한결의 얼굴, 그리고 둘 사이의 대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둘 사이의 ‘격차’는 우리 사회에서 성적 지향의 문제가 성별 정체성보다 더 수월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수도, 예준과 한결이 자리한 사회‧문화‧경제적 차이가 영향을 준 결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영화 속 예준의 서사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그려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준과 비비안을 담은 카메라의 시선이 다소 안이했다는 느낌이다. 법적인 지원만 있으면 이성애자와 ‘똑같을’ 수 있다는 식의 재현은 동성애자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수치심의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성애규범적인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결핍의 감정은 결코 주변의 태도나 법률상 평등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문제다. 이성애규범으로 직조된 사회는 매 순간 동성애자에게 슬픔을 안겨 준다. 차별금지법, 동성혼 법제화는 매우 중요한 이슈지만, 이것만으로 동성애자의 삶이 이성애자와 똑같아지진 않는다. 적어도 게이 서사에서만큼은, 〈너에게 가는 길〉은 너무 게을렀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두 엄마의 변화 이야기는 슬프도록 감동적이었지만, 예준으로 대표되는 게이 서사는 게이가 비교적 ‘편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게이의 규범성을 비판하는 게 영화의 초점이 아니었기에, 이는 분명 영화가 어떤 부분에서는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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