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로즈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2020)
2010년,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예술가와 마주하다'라는 제목으로 75일간 공연을 진행했다.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의자가 있다. 의자 하나는 마리나의 몫이고 나머지 하나는 관객의 몫이다. 마리나는 전시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참여를 원하는 관객은 그녀 앞에 원하는 시간 만큼 앉아 있을 수 있다. 마리나의 공연은 수많은 화제를 모았고, 수십만 명의 사람을 뉴욕 현대 미술관으로 이끌었다.
헤더 로즈의 소설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은 마리나의 행위예술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다. 헤더 로즈는 궁금했다. 무엇이 그들을 마리나의 의자 앞으로 이끌었는지가.
소설의 주인공 아키 레빈은 영화 음악가이자 요양원에 있는 아내 리디아가 접근금지를 신청한 비운의 남자다. 그는 리디아가 왜 자신을 거부하는지를 모른다. 아키는 온몸으로 상실을 견뎌내는 중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리나의 공연을 접한 아키는 자석처럼 마리나의 행위예술에 이끌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이 공연의 뭔가가 중요했지만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소설에는 아키 말고도 저마다의 해결되지 않는 상실과 공허함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 모두 마리나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마리나가 그를 마주 봤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있었다. 그 점이 중요한 듯했다."
마리나의 행위예술은 예술과 인간의 불가사의한 관계의 알레고리다. 인간은 예술을 창조하고, 예술은 인간을 감동시킨다. 영감을 얻은 인간은 또 다른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감동의 영역은 확장된다. 아키는 공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마리나 앞에 앉는다. 그리고 그제야 리디아에게 갈 용기를 얻는다. 왜 리디아가 자신을 밀어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리디아에게 가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예술은 인간을 때로는 멀게, 때로는 가깝게 만든다. 마리나와 마주앉은 그 시간 동안 예술가와 관객이 무엇을 나누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도 모른다. 이를 말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깊은 비밀은 고유하고 외롭기 때문이다. 예술은 이 점에서 우리를 좌절케 한다. 우리는 끝내 서로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할 것임을 알려주기에.
그러나 동시에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응시하고 공감할 수 있다. 잠깐 마리나 앞에 앉아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고 존재의 고양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의 역설이다. 예술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가까이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제 생각엔 용서가 더 많아졌을 것 같아요. … 우리가 이걸 더 많이 했다면요. 아랍 국가에서, 아프리카에서, 심지어는 여기 미국에서도 남자들이 이걸 자기 아내와, 아내들과 매일 했다고 상상해보세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걸.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뉴욕을 여행하던 중 마리나를 만난 제인 밀러의 말이다. 고작 눈을 마주치는 일이 야기할 변화의 크기는 상상만으로도 벅찰만큼 거대하다. 딱딱한 의자에 드레스를 입고 앉은 마리나가 묻는다. 이 화려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냐고. 그것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