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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好同樂 ④] 무소유`법정스님 책 읽기 모임'1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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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이계진 회장의 자택


지난 2월 25일 이계진 전 아나운서(한국 아나운서 클럽 회장, 이하 회장) 자택이 있는 곤지암으로 향했다. 일찍 서두른 탓에 근처 보리밥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낯선 번호의 문자가 왔다. 오늘 인터뷰하는 이계진 회장이다. 이계진 회장은 오늘 인터뷰 내용 '동호동락 -'법정 스님 책'읽기 모임'의 회장이다. 어디쯤 왔느냐고? 잘 찾아오냐고?


곤지암, 서울에서 많이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도로에서 꽤 비껴난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1990년대 중반, 방송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던 시절에 복잡한 도심을 뒤로하고 이곳에 들어왔다. 여의도 방송국에 출근하기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무슨 마음으로 이곳에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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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 회장의 집에 모인 회원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이 집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법정 스님 책 읽는 모임'을 한다.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다.


이계진 회장은 차를 한 잔 권했다. "차는 나의 일상입니다. 1996년에 여기로 들어왔어요. 전에 살던 수유리에서 여의도 방송국 출근하는 거나 여기서 가는 거나 비슷해요. 왜냐하면 수유리도 엄청 붐비니까. 그런 위안을 하면서 살았죠." 그러다가 법정 스님에게서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을 받고, 나도 빨리 내려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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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 회장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왔다. 그의 집 곳곳에는 법정 스님의 책이 있다.


"법정 스님이 여기도 다녀가셨어요."


"나 혼자 있을 때는 불 안 피우고 그냥 점퍼 입고 여기서 차 마시는데, 서울 분들은 오시면 좀 추워요. 그래서 누가 오시면 불을 피웁니다."


연재 코너의 이름이 '동호동락'이라 법정 스님 책 읽기 모임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2016년부터 시작되어 만 8년이 된 모임입니다. 부모님처럼 모신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시니 마음이 허전했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조금씩 잊혀 가는 것 같아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을 함께 읽을 사람을 알음알음 찾아 처음에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서 전체 회원 35명 중,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에는 늘 20명 정도 참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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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시절, 법정 스님과 함께


법정 스님의 가름침이 뭐길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는 것일까?


"법정 스님의 철학을 한마디로 꼽으라면 소유가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는 겁니다. 내가 스님을 만났을 때 그랬어요. 그때 한참 혈기왕성한 아나운서 때니까···."


"스님 저는 가진 게 너무 많고 욕심이 많아서 무소유는 틀렸습니다."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무소유라고 거지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려 하는데 부자가 돼 갖고 그걸 끌어안고 불행하지 말고 나누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라. 무소유라는 게 과하게 소유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성직자가 아닌 이상 어떻게 하나도 없이 살겠습니까? 물질에 너무 매이지 말라는 거, 과하게 가지려고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이죠. 무소유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나요. 스님이 그런 표현을 했어요.


눈매라도 나누라. 따뜻한 따뜻한 시선, 이 세상에 나눌 수 없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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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며 둘러앉아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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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찍한 야외에 나가서 법정 스님의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 사람들이 그랬어요. 그거 한 번 읽으면 되지, 뭐 계속 읽느냐고 그러는데, 지금 8년 동안 읽는데 여기 있는 사람이 지루해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 책이 그렇게 두꺼운 책도 아닌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겁니다. 어제 우리 애가 말썽을 부린 날, 이걸 읽어보면 또 다르다는 거예요.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이게 보면 또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은 '알기 쉽게 쓴 현대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회원 중에 불교인이 물론 제일 많지만 목사님, 카톨릭 신자도 많아요. 스님의 무소유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모임에는 원칙도 있다. 오는 분들의 신상에 대해 애기하지 않기.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기. 누가 누군지 모르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진실하고 감동이라는 것이다. 책은 여기저기서 둘러 앉아서도 보지만 책 갖고 또 혼자서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책과 자신의 삶을 나누는 이야기를 하는데, 다 들은 다음에 "잘 들었습니다"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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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에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한 후, 법정 스님의 책을 읽는다.


"매월 셋째 주 일요일 11시에 모입니다. 1만 원 회비로 김밥, 과일 준비하고 과자, 차는 우리 집에서 준비합니다. 총무가 읽을 책의 분량을 지정해 줍니다. 안 읽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지만, 같은 부분 읽어야 대화하기 좋으니까 범위를 정해 주죠. 책을 읽다가 2시에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리 아픈 사람은 의자에 앉아 읽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그냥 읽으며 서로 간섭을 안 한다.


그리고 둘러앉아 책과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게 끝이다.


"우리는 그것을 '나누기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읽은 것과 지난 한 달 동안, 또는 집이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과 이렇게 견주어서 얘기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평균 5분쯤 얘기하고, 오늘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요."


모임을 활성화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공간도 안 되고 지금이 딱 좋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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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 켠에 한인현 화백의 작품이 결려 있다.


오늘 온 김에 본지 인기 연재중인 <남기고 싶은 이야기 - 바보 화가 한인현 편>의 한인현 화백과의 만남에 대해 물었다.


"해주미술학교를 나온, 왜정 때 진짜 훌륭한 화가 한인현 선생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얘기 들으니까 막 울화가 치밀어요. 애들이 아파도 병원을 못 간다는 겁니다. 4대 보험인가, 이 제도 되기 전에 가입하려고 하니 전시회를 한 경력이 있어야 되고 화가로서 조건이 있어야 한대요. 자기 돈이 없어서 겨우 밥 먹고 사는데 어떻게 전시회를 하느냐 이겁니다."


이계진 회장이 발벗고 나섰다. 웬만큼은 술수를 부리고 마음만 조금 바꿔 약간 거짓말만 해도 그림 하나 팔아 한 달은 살 텐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되나? 내가 좀 도와주자고 생각한 것이다. 방송국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좀 세상에 알려주자고 하니, 첫마디가 모두 누군지 모르겠다고 해서 장충동에 본사를 둔 여성 대중 월간지를 무조건 찾아갔다. 적어도 1년은 연재 승낙을 받고 한인현의 이야기를 일화 중심으로 써 나갔다.


"내가 그때 엄청 바쁠 때입니다. 그래도 틈을 타서 매월 썼어요. 그 연재물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겁니다. 그걸 무려 2년을 연재했어요. 그걸 단행본으로 낸 것이 <바보 화가 한인현 이야기>입니다. 지금 병상에 계신데 연세가 워낙 많으셔서···. 난 사실 한인현 선생의 개인미술관을 하나 지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계진 회장의 꿈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만한 재력가들이 있겠는가? 한인현 선생에 대한 걱정 어린 이야기가 끝나고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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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령 회원


"저는 참석 3년 차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것에 마음이 설렙니다. 법정 스님 닮아가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성도 하고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도 조금씩 깊어지는 것을 보며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죠. 또 장소가 주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매번 반갑고 기다려지는,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모임입니다. 모여서 나의 모습을 나눠야 하므로 함부로 살 수 없기도 한 것이 큰 매력입니다."(김미령 회원)


"왜 매달 참석할까 생각해 보면 한 달 정리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해요. 왔다 가면 또 한 달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하루를 끝내고 일기를 쓰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미경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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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총무와 어머니


"법정 스님의 사상을 읽고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참 좋습니다. 매번 읽는 책이지만 나의 삶과 비교하니 매번 달라요. 우리 부부는 은퇴하고 나서 왔는데 좀 더 일찍 와서 여러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삶도 정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이명채 부부)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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